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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린남 Nov 18. 2020

친구의 안 입는 옷을 중고로 구입했다.

슬기로운 중고거래와 미니멀 라이프

지난 3월, 오랫동안 입은 겨울 코트 두 개를 옷장에서 비웠다. 네이비와 카멜색의 코트였다. 매년 겨울마다 맹활약을 했던 탓에 두 개의 코트는 많이 해져버렸고, 볼품없이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이제 코트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됐다. 한 해 더 버텨 보려 했으나, 입지 않을 것이 훤해서 결국에는 둘 다 떠나보냈다. (그동안 수고했고, 고마웠다! 코트들아!)


부피가 큰 옷 두 개가 사라지니 옷장이 허전해졌다. 한 편으로 개운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긴 시간 함께했던 겨울 코트의 빈자리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도 잠시, 떠나보낸 코트를 향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겨울이 돌아오면 오래도록 입을 코트 하나를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무조건 검은색 코트를 사겠다는 마음 한 쪽에 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8월이 되었다.


8월에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나를 포함한 친구 4명이 모였다. 친구부부가 준비해준 식사를 맛있게 하고, 디저트를 먹으면서 두런두런 수다를 떨었다. 각자 다른 지역에서 살다보니 이렇게 모두 모이기가 힘들다. 오랫만에 만난만큼 밀린 이야기가 많다. 그동안 밀린 서로의 근황을 나누며 쉴새없이 떠들었다. 언제나 그랬듯 각자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정신없이 이야기하다보면 어느세 주제는 바뀌어 있고, 둘씩 둘씩 분산되어 대화를 하기도 하면서 그때 그때 생각나는 말을 했다. 이 글의 시초가 되준 이야기도 갑작스럽게 튀어나왔다. 


집주인인 친구는 갑자기 갖고 싶은 코트를 발견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에게 너무도 잘 어울렸지만 가격이 비싸서 살까 말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아웃렛 가격으로 87만 원쯤 하는 비싼 코트였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내가 더 꽂힌 쪽은 다른 부분이었다.


"너 겨울 코트 많지 않아?" 


친구는 겨울 코트를 좋아했다. 게다가 참 잘 어울렸다. 어릴 때도 어른스러운 코트가 찰떡 같이 잘 어울렸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겨울 코트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내 질문에 멋쩍은 미소를 담고 대답했다. 많긴 하지만 안 입는 것도 그만큼 많다고 했다. 그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미니멀리스트의 본능이 튀어나왔다. 좋아하는 옷이 많은 것과 안 입는 옷이 많은 것은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안 입는 코트들을 중고로 팔고 그 돈을 모아 새 코트를 사면 되겠다며 혼자 계획을 짜고 친구에게 말했다.(87만 원이나 하는 코트를 사려면 꽤 많은 옷을 팔아야겠지만..) 그리고는 곧바로 내게,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친구의 안 입는 코트를 내가 사면 어떨까? 어차피 겨울 코트 하나 살 생각이었으니까!' 


친구에게 혹시 안 입는 코트 중에 내가 입을만한 코트가 있냐고 물었다. 괜찮으면 중고로 사겠다고 덧붙였다. 그랬더니 친구는 옷장이 있는 방으로 가서 코트 하나를 가지고 왔다. 친구 손에는 아주 밝은 회색과 하늘색이 섞인 체크무늬 코트가 들려있었다. 사이즈가 크게 나와서 몇 번 입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별 기대 없이 친구가 가져온 코트를 입었다. 코트는 친구보다 커다란 나에게 적당히 잘 맞는 사이즈였다. 내가 원했던 넉넉한 품과 길이였다. 게다가 코트 색깔이 참 마음에 들었다. 눈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막상 입어보니 밝은 톤의 코트가 나에게 잘 어울렸다.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의 반응도 좋았다. "뭐지 이거 내 건가?"



친구네 집에서 잘 놀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 친구와 친구 남편에게 추워지면 사러 올 테니, 그때까지 코트를 보관해달라고 부탁했다. 혹시라도 팔려고 했던 마음이 바뀌면 말하라고 하면서 친구의 집을 나섰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초겨울이 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마음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니 지난번에 그 코트 내가 사도 되겠냐고 물었다. 친구는 흔쾌히 오케이 했다. 며칠 뒤 친구를 만났고, 친구와 첫 중고거래를 했다. 그렇게 나에게 새로운 겨울 코트가 생겼다. 


처음 친구네 집에서 코트를 입었을 때, 코트는 분명 예뻤지만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겨울 코트에 패턴이 있으면 쉽게 질릴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조건 새로운 코트는 검은색을 사겠다고 다짐했던 때이기도 했고, 이제까지 밝은 색의 코트는 사서 입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기에 조금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와 잘 어울리는 색이 들어간 옷의 장점을 잘 안다. 셀 수 없이 많은 양의 옷을 비우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점 중 하나는 아무리 예쁘고 좋은 옷이라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색이라면 손이 가지 않는다는 거다. 얼굴이 누렇게 보인다던가, 낯빛이 어두워 보이는 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색은 그저 옷을 구입할 때 고려해야 할 옵션 중 하나일 뿐이지만, 어울리는 색의 옷을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낮고, 만족도도 높다. 그래서 고민 끝에 그 코트를 선택했다. 물론 코트가 가진 다른 부분들도 내가 바라던 것과 잘 맞기도 했고.


친구네 옷장에 나와 잘 어울리는 코트가 있어서 다행이다. 사야 하는 옷을 고르느라 시간을 뺏기지 않아 좋았고, 중고가로 좋은 상태의 옷을 사게 돼서 좋았다. 게다가 친구는 안 입는 코트를 처리했다. 모두의 해피엔딩이다!(친구야 너도 행복한 거 맞지...?)


에필로그

친구 코트를 구입하던 날, 코트 판 돈을 합쳐 갖고 싶은 코트를 사면 되겠다고 친구에게 말했다(*훨씬 많은 돈이 더 필요하다).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지금은 정신을 차렸다(?)고 말하면서, 예쁘지만 비싼 코트 대신 따뜻하고 가성비 좋은 경량 패딩을 사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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