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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린남 Sep 26. 2020

뭐가 그렇게 사고 싶었을까?

어차피 사라져 버릴 것들인데.

매일매일 사고 싶은 것이 넘쳤다. 지나가다가 눈에 들어온 옷이 사고 싶었고, 생활의 질이 조금 올라갈 것 같은 새 물건이 사고 싶었고, 나를 조금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 같은 물건이 사고 싶었다. 사고 싶어서 구입했던 물건들은 어느새 내게 중요하지 않은 물건이 되었다. 결국에는 간절히 원했던 마음도, 소비의 기쁨도, 구입했던 물건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는 뭐가 그렇게 사고 싶었을까? 그렇게 많은 물건을 사고 난 이후에 남은 거라곤 쉽게 물건을 사지 말자는 교훈뿐인데. 


물건을 사지 않는 것. 어쩌면 가장 쉬우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사지 않으면 되는데 내 지갑은 새 물건 앞에서 쉽게 마음을 열었다. 정신을 차려보면 또 뭔가를 사고 있었다. 그래서 미니멀 라이프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소비욕구를 줄이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100이었던 소비욕구를 반으로 줄이고, 또 줄였다. 그럼에도 소비욕구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길래 소비욕구 줄이는 걸 그만뒀다. 대신에 물건을 사지 않기로 했다. 그랬더니 얼마 후 갖고 싶은 물건도, 사고 싶은 물건도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처음이었다. 어떤 물건에도 관심 갖지 않고 있는 그 순간이 자유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사고 싶은 물건이 없으니까 사지 않게 된다.  


내가 본격적으로 사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다짐했던 일이 있다. 몇 달 전이었다. 갑자기 테이블이 내 소비욕구를 자극했다. 내가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테이블이 거실 크기에 비해 너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입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바꾸고 싶어 병'에 걸렸다. 내 고질병 중 하나인 싫증도 한몫했다.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크기의 테이블을 찾아보고, 갖고 있는 테이블을 중고로 팔면 얼마를 받을 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사지 않는 쪽으로 생각을 고쳤다. 테이블의 크기를 의식하지 않고 평소대로 사용했다. 자연스레 마음이 바뀌었다. 거실에 비해 클지 모르지만 내가 사용하기에 적당했다. 튼튼한 데다가 집안 분위기와도 잘 어울린다. 다시 테이블이 마음에 들었다. 내 마음이 이렇게나 얄팍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사실 테이블 크기는 변명거리에 불과했다. 그냥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사고 싶어 하는 소비욕구가 애꿎은 테이블로 향했던 거였다. 테이블을 바꾸면 또 다른 가구나 새로운 물건을 계속 원했을 거다. 이유를 찾아내서 멀쩡한 물건을 새로운 물건으로 교체했을 거다. 아마 오랫동안 계속 이런 식으로 새 옷을 사고, 새 물건을 구입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들에 질려서, 또는 그저 소비가 하고 싶어서 새로운 물건을 사 들였을 거다. 그래서 멈추기로 했다. 차라리 사지 않는 쪽을 택해 보기로 했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건을 살 때는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걸로 구입한다. 한 가지라도 아쉬울 경우에는 구입을 조금 미룬다. 절대 급하게 구입하지 않는다. 구입을 조금 미룬다 해도 일상을 보내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필요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기도 한다. 이미 가진 물건을 대체하는 물건을 사지 않는다. 사지 않으면 새 물건을 사게 되면서 따라붙는 수고로움과 돈도 아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물건을 사는 것에서 기쁨을 느꼈다. 이제는 사지 않는 기쁨을 누리는 중이다. 물건과 소비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한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가진 물건들에 감사함을 느끼고, 열심히 사용하는 거다.   

유튜브 영상으로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3r-h7ZI6gZs&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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