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이게 하는 100개의 단어: 시야
아무도 “나이가 많아져서 좋은 점이 있나요?”라고 묻지 않는다.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따가운 눈총을 받다가 피부가 까맣게 타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나이 많은 것에 장점을 찾고 싶었지만 좋은 게 거의 없다. 만약에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내게 하더라도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없다. 이것마저도 괜히 억울하다. 좋은 점이 하나라도 있어야 나이 많은 것에 생색이라도 낼 텐데.
올해 마흔이 됐다(사실은 만 38세). 마흔 정도 되니까 나이가 늘어가는 것에 거부감이 많이 줄었다. 20대 때는 서른이 되는 게 조금 두려웠는데 마흔을 맞이하던 순간에 나는 작은 미동도 없었다. 내가 마흔이 된 것에 대해 나보다는 나를 키운 부모님이 놀라고, 20대 때부터 봐 온 남편이 놀랄 뿐이었다. 마흔에는 불혹이라는 이칭이 붙는다. 불혹은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라고 한다. 그런 마흔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나를 포함한 내 동년배들은 여전히 철없는 중학생처럼 굴고, 오락가락하고,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긴다. 한편으로는 마흔에 그런 이칭이 붙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태어난 지 40년 차 정도 되면 살아온 시간만큼 해왔던 것들이 한가득이라서 세상에 대해 40년 정도만큼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연차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 세상을 알지 못한다. 나는 고작 내가 살아온 만큼의 세상만을 알고, 내 시야에 들어온 만큼의 세상을 말할 수 있다. 내가 겪은 일, 내가 선택한 것, 내가 선택하지 않는 길,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내가 봐 온 모든 것은 내 세상이 됐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내가 살아온 순간과 시간으로 만들어졌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저마다의 시야를 가지고 각자가 아는 세상을 산다.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지에 따라 세상을 다르게 보고 느낀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사실 다른 세상에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지옥 같다고 말한다. 나도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같은 세상인데도 좋았다가 싫었다가 한다. 행복한 세상을 살다가도 불행한 세상을 산다고 말하는 이유다.
오늘도 하루 치의 세상을 더 가질 수 있었다. 그 생각을 하면 나이 드는 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세상이 조금씩 커지고, 내 시야는 더 넓어져왔으니까. 아마 더 멋진 세상을 가지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다만 내가 보는 세상에만 갇혀서 살고 싶지 않다. 내가 아는 세상보다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훨씬 더 많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내가 보는 세상만이 옳다고 우기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드는 것보다 그런 상황을 맞이하는 게 더 두렵다. 그래서 많이 보고, 읽고, 쓰고, 말하고, 들으며 내 세상을 채우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이런 세상을 사는 사람이 여기 있다고, 내가 보는 세상은 이런 모양이라고 떠들고 싶다. 내 세상을 말하는 것은 나를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