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이게 하는 100개의 단어: 믿음
차곡차곡 쌓아 올린 삶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삶은 작은 균열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예감했다. 내 삶은 불완전하고 엉성하게 만들어졌다. 내키는 대로, 원하는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살다 보니 내 삶은 대충, 불안하게 쌓아 올린 모습이다. 이런 삶은 당연하게도 불어오는 바람에 잘도 휘청인다. 내내 흔들리면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이런 삶을 살게 될 것을 진즉에 알았던 것처럼 위험을 감지하는 특출 난 감각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으므로 나는 내가 갖고 태어난 감각을 활용해 모든 순간 주의를 특히 더 살펴야만 했다. 나를 힘들게 만들거나 위험에 빠뜨릴 것 같은 수상한 사람들, 안전하지 않은 상황들과 멀어지려 자주 도망쳤다. 좋은 것을 가지는 것보다 나쁜 것을 걸러내는 걸 선택했다. 그 노력으로 망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나름대로 사는 방식을 터득했다. 무사히 내 삶은 내가 만들어둔 안전구역에서 흔들리는 채로 잘 버티고 있다.
위험에서 멀어지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무언가를 사랑하고 믿는 대신에 먼저 의심부터 하는 사람이 됐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믿음으로써 불쾌한 상황들을 겪었고, 곤란해지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원치 않는 상황들이 더 잦아졌다. 그만큼 내 삶은 더 흔들렸다. 믿음에는 좋지 않은 결과가 따랐다. 믿는 마음이 아까워서 화가 났다. 그래서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의심했다. 내 삶을 지키기 위해 의심하는 데에 많은 힘을 썼다. 의심은 안전한 방패로서 큰 역할을 했다. 의심을 남발하다가 스스로를 의심하는 문제가 생겼다. 믿는 데에만 할애해도 부족한 온 시간을 쪼개 나를 의심했다.
사실 알고 있다. 첫걸음을 내딛을 때, 보조바퀴 없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던 날, 빈 종이 앞에서 고민하던 때, 운전면허시험을 보던 날, 첫 출근을 하던 날에 겁 먹고 있던 나를 나아가게 한 것은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 마음 덕분이었다. 심지어 내가 나를 의심하는 순간에도 나를 믿어주는 말들에 조금 더 힘을 냈다. 나는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서 믿음을 애써 피해왔다. 나아가는 것보다, 넘어지는 것이 더 무서워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세상의 해가 또 한 번 저무는 시점에 나는 나를 지켜왔던 게 정말 의심이었을까? 하고 의심했다. 위험과 멀어지려고 사용했던 방패가 정말 나를 지켜온 건지 의심했다. 이렇게도 얄팍한 마음이라니. 나는 그저 내가 해 온 노력들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나를 지키려 애썼던 마음과 힘을 생각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불완전한 삶 위에서 흔들리던 시간들을 버티던 그 힘은 어디에서 온 걸까? 나는 왜 내일을 기대했을까? 내 앞에 이어질 무수한 내일들이 시련을 주더라도 어쨌든 힘을 낼 거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 아닐까? 엉성하게 쌓아 올린 이런 삶이더라도 내 삶이기에 잘 살아갈 거라는 걸 나 스스로 믿었던 것은 아닐까?
답을 알 수 없는 물음들이 이어졌다. 아직 넘어지는 게 무섭지만 나아가고 싶어졌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버티고 서 있는 나를 이제 그만 의심하고 믿고 싶어졌다. 사실 나는 믿고 싶었다. 나를, 내가 의심해 온 모든 것들을. 오랫동안 침묵하던 믿고 싶은 마음이 이제야 큰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