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우리의 서울은 그때보다 살만 한가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리뷰

by 봄나무

왜 지하철인가?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 서로 흘끔흘끔 쳐다보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속으로는 서로에 대해 이런저런 각자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다. 겉으로는 ‘무관심’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관심’이 있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마주 앉은 사람과 우연히 눈이 마주쳤을 경우 얼른 눈을 피하거나 멍한 시선처리를 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이내 또 눈이 마주치면 왠지 당황스러워진다. 마음속으로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날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때문에 지하철을 탄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곤하지 않아도 눈을 지그시 감거나 스마트폰을 보게 된다.


이렇듯 지하철은 각기 다른 인간군상의 집합소임과 동시에, 타인에 대한 본능적 호기심을 억누른 채 무관심한 척할 수밖에 없는, 관심과 무관심이 혼재된 공간이다.

술 취한 누군가가 토를 하고, 아기가 울고, 허리 굽은 할머니가 앞에 서 계셔도 짐짓 모른 척, 극의 대사처럼 '두 눈 감고 두 귀 막는'곳. 누가 타거나 말거나 나하 곤 별 상관없는데라고 하면서 관심 없는 척 하지만, 마음속 저 편에선 ‘저 여자 엉덩이 한 번 죽인다' 혹은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라고 생각하며 각기 타인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있는 곳. 이렇듯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뒤엉켜 있는 관심과 무관심의 경계를 꼬집은 소재가 바로 지하철일 것이다.

상징과 상징적 상호작용


사회학에선 사회 문제를 해석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능론과 갈등론, 그리고 상징적 상호 작용론인데 이 연극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이 상징적 상호 작용론이다.

상징적 상호 작용론이란, '기능주의 이론과 갈등주의 이론이 사회 현상을 거시적으로 접근하고 분석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관심의 초점을 개인 간의 상호작용과 상호작용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결과'에 두는 이론적 시각이다. 즉, 기능론이나 갈등론이 사회 전반이나 집단에 초점을 맞추는 데 비해, 이 상징적 상호 작용론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맺는 관계에 관심이 있고, 그들의 행동이 갖는 주관적인 의미를 중요시하고 이를 분석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지하철 1호선은 서울의 하층민들을 1990년대의 시대적 배경에 맞춰 그려내고 있다. 별천지, 불야성의 서울과 이 환희에 합류되지 못한 채 여전히 어두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삶이 극명히 대비된다.

이 작품은 빠른 경제 발전 이후 우리 사회에는 인간 소외 현상이 존재하며, 그들에 대한 무관심이 부조리를 낳고 있다고 말한다. 당시 사회 문제를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그려내면서도 문제의 원인은 합의의 부재, 소통과 관심의 부재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외계층에 대한 연대의식과 공감의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극 중 등장 인물들의 노래가사를 통해, 사회적 약자인 '걸레'가 역설적이게도 서민의 발인 지하철에 의해 치여 죽는다는 점 등을 통해 상징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무심히 반복되는 일상


지하철 1호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편견과 멸시의 대상이다. ‘선녀’는 중국에서 온 조선족이며, ‘안경’은 목발을 짚고 다니며 사회 비판적인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전직 운동권 출신이다. ‘걸레’는 사창가의 창녀로 마약 중독자이며, ‘철수’는 사창가에서 일하는 혼혈아다. ‘곰보할매’는 포장마차로 힘들게 살아가며, ‘문디’와 ‘땅쇠’는 거지다. 평소 극 중 표현과 같이 이른바 ‘사람대접 잘 받지 못하는’ 존재들인 것이다.


‘안경’이 자신의 위선을 폭로하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부르는 노래가 있다. '그저 말 뿐인 위로'는 ‘무관심’과 다름 없음을 질책하며 부르는 노래인 것이다. 극 후반부에서는 ‘걸레’가 죽게 되는데, 사람들이 모두 ‘걸레’의 장례를 치르러 떠난 후에도 서울역에는 여느 날과 다름 없이 달이 환하게 다시 뜬다. 그리고 술 취한 회사원이 서울역 계단 위에 쓰러진다. 이 장면은 처음에 ‘선녀’가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장면이다.

결국 이 작품은 소외된 이들의 비극적 삶이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무심히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떤 사회 사건이 터졌을 때 잠시 관심과 동정심을 가졌다가도 이내 곧 자신의 일상에 몰입하며 잊고 마는, ‘반복되는 무관심’ 대한 아쉬움일지 모른다.


실제로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서울역, 청량리는 서울에서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지역들이다. 서울역은 전철과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고, 청량리는 과거 상업적 매춘지역으로 가장 유명했던 곳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모여지는 곳을 배경으로 무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함으로써 작품의 주제의식은 더욱 선명히 전달된다.


2021년 우리의 서울은 전보다 살만한가?


1998년 뮤지컬 초연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역세권에 밀집했던 집창촌도 '매춘과의 전쟁' 선포 후 시행된 성매매 특별법으로 종적을 찾기 힘들고, '안경'과 같은 운동권 지식인은 이미 배 나온 아저씨가 되어 현실을 살기에 급급하며, 일부는 승자의 논리와 자본주의 마인드로 무장한 기득권이 되어있다. 또 '철수'와 같은 혼혈인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다문화라는 단어가 지향하듯 그때보다는 조금이나마 인식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 대해 이 극에서 소리 높여 비판하고 있는 많은 것이 나아졌다. 그러나 '우리의 서울은 전보다 더욱 살만한가?'라는 물음엔 역시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지난 시대의 문제는 조금씩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을 지라도 부동산 문제, 소득 양극화, 청년실업, 젠더갈등, 세대갈등 등 또 다른 문제가 새롭게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양상이 어디로 이동하든 '인간 소외' '무관심의 팽배'에 대한 비판은 우리가 유념해야 할 시대를 초월한 공통적인 목소리이라는 점에서, 기록으로서의 뮤지컬 1호선'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큰 가치를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