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데미안

이혼 후, 자아 성찰과 치유적 글쓰기

by 봄나무
본래 우연이란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필요로 했던 사람이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의 소망과 필연이 그것을 가져온 것이다


21년도 상반기는 내게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누군가 삶의 두 중심축이라고 했던가, '일과 사랑, 사랑과 일'이 모두 삐그덕 거렸기 때문이다.

짧은 결혼생활은 별거기간을 거쳐 끝을 향해 가고 있었고,

회사에선 인정받는 부서지만 업무량이 많기로 유명한 곳에 급작스레 발령이 나 내게 슬퍼할 틈 조차 주지 않았다.

몰아치는 업무 시즌을 간신히 견디고 나니 참아왔던 서러움이 몰려왔다.

무엇보다 앞으로 어떤 희망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나 라는 혼란스러움을 참기 힘들었다.

영 갈피를 못 잡는 내게 그 누구라도 확실한 디렉션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연차를 내고 핸드백 하나 챙겨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 내려갔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결혼, 굳이 안 하셔도 됩니다. 직장도 관운이 약한 편이에요. 본인은 재주와 능력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남자는.. 누구와 같이 살아도 힘들어요. 상대가 숨만 쉬어도 남의 감정 다 느끼고 힘들어합니다. 정 다시 결혼하고 싶으시다면 주말부부 하시고요."


원래 주제도 모르는 게 눈만 높다고 했던가. 이상하게도 나 좋다는 사람은 늘 있었고 젊음을 무기로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다. 다만 결혼은 첫눈에 이 사람이다 싶을 정도가 아니라면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에, 이상이 높으면 부지런하기라도 하자는 주의였다. 무수한 소개팅과 맞선 끝에 이 정도면 내 인생 맡겨도 되겠다 싶은 능력 괜찮고 씩씩한 연하남을 만났다.

'어려서부터 척척 지 앞가림 잘 해내더니 신랑도 잘 데려왔어~' 이번에도 나는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나이 서른셋. 내가 생각한 결혼 적령기의 끝이었다.

만남부터 결혼식까지 6개월 속성 코스였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다. '너무 급한 결정 아니야?' 혹은 '너.. 혹시.. 임신했니?'

하지만 난 잘 살아갈 자신이 있었고 이번에도 내가 옳았음을 당당히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지금에서야 알았다
인간에게 자아를 향해 나아가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는 것을


오만했다. 살아오며 부모님의 무한한 믿음과 자유방임 하에 좋든 싫든 선택과 책임은 늘 나의 몫이었고, 그 일련의 과정을 오롯이 홀로 감내하며 누구보다 내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허나 이성적 텐션 혹은 데이트가 주가 되는 연애와 생활 공동체인 결혼은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누군가와 살 부대끼며 같은 시간에 일어나 잠들고,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일, 나는 이토록 아주 기본적인 공동체적 삶의 루틴 조차 너무도 버거운, 극도로 예민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낯섦과 불안에 적응하지 못하고 초반부터 관계에 크고 작은 상처를 내었다. 또한 내가 살면서 익힌 즉각적이고 정공법적인 문제 해결 방식은 긴 호흡이 필요한 이 영역에선 효과적이지 않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아직 우리는 그 험난한 성숙의 과정을 함께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더 늦기 전에 각자의 길, 완벽한 타인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짧은 기간의 결혼 생활을 통해 나는 생각보다도 더, 호두처럼 단단한 껍질과 자기만의 세계를 지닌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원하는 것은 가져야 직성이 풀리고 삶은 꿈꾸는 자의 전유물이라는 신념을 무기 삼아 야생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다.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아파도 아파할 시간조차 낭비라 여기며 나를 다그쳤다. 외로움은 평생을 줄곧 나와 함께한 가장 익숙한 감정이기에 내겐 오히려 가장 편안한 벗이다.


결혼을 하나의 중요한 사회 제도, 인간 발달을 위한 주요 과업 단계로 생각했던 나는, 실패 이후 스스로가 지닌 한계와 결핍을 처절히 마주하게 됐다.

누군가와 내면 깊은 곳을 공유하고 일상의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 자연스레 스며드는 것이 나에게도 가능한 일일까?

나를 잃는 것이 두렵진 않을까?


대부분의 돌싱들은 결혼과 이혼의 경험을 통해 나와 맞는 사람, 즉 좋은 반려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에 대한 풀리지 않는 숙제만이 가득하다.


단단한 껍질 안에 누구보다 큰 사랑과 정이 있다고 믿고 있다.

기존의 내 습관과 가치관을 깰 수 있는 힘,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힘은 오직 내 안에만 존재할 것이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내 하이얀 속마음을 내보일 수 있는, 나를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다. 단단한 껍질이 아닌 농익은 유연함으로 타인으로부터의 물듦을 허락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란 단 한 가지,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면에서 견고해져서
그 길이 어디에 닿아 있건 간에
조심스럽게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가는 일이다


"저는 앞으로 어떤 희망으로 살아야 하는 거죠?"

"음.. 취미 생활에서 꿈을 찾는 게 가장 좋아요. 글 한번 써보시는 게 어떨까요. 아주 잘하실 겁니다"


용하다는 부산의 점집에서 내게 준 인생의 솔루션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남자를 만나거나 직장에 매진하기보다는 취미에 매진할 것이며, 꾸준히 글을 한 번 써보라는 것.


사실, 지금 남들이 보기에 규모있고 안정적인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베테랑 직장인이지만,

기억도 안 나던 꼬마 시절부터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줄곧 기자 또는 소설가라고 답했던 것 같다.

막연히 글 쓰는 것이 좋아 대학 입학하자마자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이 대학 학보사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경험을 통해 애증이라는 모순된 단어의 의미를 깨달았고, 열렬히 좋아하던 것이기에 극도로 싫어질 수 있음을 경험했다.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던 다짐이 무색하게, 오랜 시간 먼 길을 돌고 돌아 생의 한 고비에서 내가 다시 찾게 된 것은 글쓰기다.


글쓰기가 주는 카타르시스와 치유의 힘을 알고 있다.

결혼과 이혼이라는 경험을 통해 깨달은 나의 부족함 그리고 내면의 결핍을 채워 나가는 과정은 아마도 짧지 않은 시간이 될 것이다.


30대의 아직도 미성숙한 나는, 소설 데미안의 한 구절과 같이 간에게 부여된 의무로서 자아의 완성을 위해 죽기 직전까지 그저 노력할 뿐이며 여전히 나의 길을 더듬어 가 보고자 한다. 스스로에 대한 성찰과 글쓰기를 통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