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분
소녀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 우리 엄마.
눈이 휘어지고 찡긋 콧잔등에 주름이 잡히고 작은 입이 찢어지며 개구쟁이처럼 웃는 얼굴.
오빠 많은 집 막내로 태어나 성실히 공부해서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삼성 공채로 들어갔더랬다.
엄마보다 공부로는 조금 뒤지던 친구는 은행에 갔고,
그녀는 지금 은행 지점장이 되었다.
삼성 공채로 들어갔던 똑똑이 엄마는 유독 말썽이던 첫 애 출산과 함께 가정주부가 되었다.
난 우리 엄마만큼 성실한 이를 본 적 없다. 나는 정말 똑똑한 이들과 일함에도 이 생각엔 변함이 없다.
우리 엄마는 서른이 가까우는 장성 셋을 키우며 대학을 나왔고,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책을 많이 읽고 사랑하고, 상담사를 하셨고, 유아보육 자격증을 취득하셨고, 한 번에 공인중개사 합격을 하셨으며, 유명 세탁소 프랜차이즈를 운영하셨고, 지금은 평판 좋은 동네 어린이집 원장님이시다.
엄마가 가난한 다둥이집 막내딸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는 뭐가 되었을까?
늘 자기가 머리가 안 좋아서 남들보다 10번 더 봐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는, 꾀만 부려서 공부하는 나와 아빠가 보기에는 놀라운 사람이었다.
퇴근 후 캔들이나 인센스에 불을 붙이고 조용히 책을 읽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엄마는 빼곡히 온 벽을 책으로 채운 서재를 가진 이보다 더 교양이 있는 사람이다.
국악을 전공한 나보다 국악 듣는 귀가 좋았고, 애디 히긴스의 재즈를 즐겨 듣는다. 본인 스스로는 박치라고 하지만 노래도 잘 불렀다.
유일한 흠이자 매력이라면 옷 입는 센스가 괴상하다는 점이다.
다시 돌아와서, 엄마가 엄마의 딸로 1995년 분당구 서현동에서 태어났다면 엄마는 뭐가 되었을까?
엄마는 적어도 내 엄마는 되지 않았을 거다.
엄마는 아마 교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문학과 책을 좋아하니까 어쩌면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졸업과 동시에 대학진학대신 취업을 한다거나, 첫 아이의 출산과 함께 본인보다 돈 못 버는 남편 대신 일을 그만두지는 않았을 거다. 아니, 어쩌면 아빠와 만나지 못하고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내가 없더라도 엄마는 행복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눈물이 핑 돌다가도, 나를
만나게 된 엄마의 그 여정과 선택들에 가슴이 더 먹먹해진다.
소박한 정원과 작은 집을 사랑하고
봄에 피는 들꽃과 연둣빛 새순을 보며 이들도 제 할 일을 다 하니 얼마나 사랑스럽냐고 말하는 우리 엄마.
꽃과 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작은 정원이 딸린 집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애디 히긴스의 노래를 들으며 살 수 있었을까?
오늘처럼 누군가 엄마를 너무나 속상하게 하고 미워하고 괴로워할 일 없이, 편히 지나가는 밤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