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차를 샀어

by 소근

덜컥 차를 샀다.

문득 그를 떠올렸다.

불현듯 오늘이 적금 만기일인 것이 떠올랐다.

어쩌다 결혼을 했다.

눈을 뜨니 병원 천장이 보였다.

결국 이별을 했다.


글과 말은 참 신기하다.

덜컥, 문득, 결코 이런 사소한 말에 무한한 스토리가 휘감겨 있다.


덜컥 차를 산 그 사람은 차를 사고자 하는 강력한 목적 의식 없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쭈볏거리며 친구들의 차를 구경하고, 가끔 신차 가격이나 옵션이 적힌 기사를 보며 머리 속 계산기를 두드리며 어느 옵션으로 살지를 상상하지만 정작 차를 사러 나가지 않는 그런 정도.

막연히 차는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살 수 있고 살 돈은 있지만 사지 않고 모으는 게 낫겠지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느 날이 좋아 밖에 나와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떤 것이다. 친구가 중고차를 산 이야기를 떠든다. 친구는 어플을 추천한다.


남자는 흥미로운 대화주제에 어플을 깔아 요리조리 봤을 거다. 그는 괜찮아 보이는 매물에 별 고민없이 딜러에게 전화를 건다. 마침 중고차 회사가 근처다. 할 일 없는 주말, 친구와 함께 중고차를 보러 떠난다.


현란한 말솜씨의 판매자라면 의심부터 했겠지만 어딘지 어수룩하지만 선한 곰 같은 인상의 남자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팔기 아깝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평소에도 생활력이 강하다 못 해 가끔 속을 긁는 짠돌이 친구도 속닥거리며 이 가격에 주행거리도 옵션도 너무 좋은 것 같다고 한다.


남자는 지난 번 생각했던 신차 옵션 포함 금액을 떠올리며 생각보다 합리적인 중고차 금액에 고민을 시작한다. 그러나 마침 판매자에게 그 중고차 문의가 빗발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생각해보니 최근 중고차를 산 옆 친구가 이거저거 꼼꼼하게 따지고 물어줘서 차에는 영 문외한인 내 수고가 영 덜어졌다. 딜러도 믿을만해 보이고, 금액도 합리적이다. 차라, 언젠가 샀어야 했을거다. 그게 오늘일 뿐.


남자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글을 적었다. 혹은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했다.


“덜컥 차를 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