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자리에 앉은 내가 더듬거리며 안전벨트를 찾아맸다. 축축이 젖은 우산이 샌들 사이로 삐져나온 내 발가락을 적셨고, 마르지 않을게 분명한 푹 젖은 바지가 살에 닿았다.
법을 지키고자 함이 아닌, 살려고 택시 안전벨트를 매었다. 소심한 목소리로 기사님께 말을 걸었다.
"급하지 않으니 안전하게.. 천천히 가주세요..."
사실 급하게 가고 말고는 기사님이 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차가 무지 막힐뿐더러 상향등을 켰음에도 회색 풍경에 흐린 차의 뒤꽁무니만 슬쩍 보였다.
세상에 불연속적인 직선으로 비 오는 풍경을 그린다면, 수만 번 연필이 스쳐서 세상을 까맣게 가려버린 풍경. 그게 지금이었다. 본능적으로 이러다 죽는다, 하는 싸늘한 경고가 정수리 아래를 쓸고 갔다.
그 경고는 비단 나에게만 온 것은 아닐 것이다.
난 다만, 이 답답하고 느린 차를 몰려 졸음이 쏟아지진 않을까 하는 불안에서 꺼낸 말이었다.
기사님은 아, 예. 하며 껌을 씹었다.
정말 급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30분을 더 넉넉하게 잡고 퇴근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오늘 처음 만나게 될 남자의 혜안이었다.
[조심히 오고 계세요? 비가 많이 오네요. 저는 좀 먼저 도착할 것 같은데 걱정 마시고 천천히 오세요.]
필요한 말, 적당한 선과 부담되지 않는 배려가 묻어났다. 오늘 아침에 비가 오니 약속시간을 미루자는 덕분에 멀리서 출발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벼웠던 마음도 재해 수준의 비를 보고는 이런 날씨에 소개팅 가다가 사고라도 나면 허탈할 것 같은데...
하면서 고민했지만, 이미 뭐 어쩌겠나. 나의 손을 떠난 일에 더 이상 마음 쓰지 않기로 하며 억지로라도 눈을 붙였다. 마스크 속의 습한 입 주변 화장이 신경 쓰였다.
이 상황에서도 나는 드문 드문 잠에 빠졌다. 푹 자버렸으면 오히려 나았을까? 평소 멀미와는 거리가 멀던 나도 이게 멀미구나! 하고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그제야 이 복잡한 속의 원인이 보였다.
답답한 도로 상황에서 까딱까딱 액셀을 밟았다가 떼는 기사님의 발재간 탓이었다.
안 그래도 계속해서 멈춰서는 멀미 나는 상황에 휘발유통을 거꾸로 뒤집어 쏟아내는 저 끔찍한 운전습관은 무엇일까?
저 사람은 어떻게 지금까지 다른 클레임 없이 택시 기사를 하고 있는 걸까?
목 끝까지 그만해 달라는 말이 토기와 함께 올라왔지만 관뒀다. 운전 습관을 내 한마디에 바꿀 수도 없을뿐더러
앞으로 길게 남은 길에 불편한 침묵을 견디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이런 참을성은 앞 좌석 머리를 손으로 꽉 누르며 깨졌다.
“기사님, 너무 멀미가 나서 그러는데 운전 조금만 살살해주세요…….”
“…….”
대답은 없었다. 못 들었나? 해서 다시 기사님을 죽어가며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내 목소리가 빗소리에 쓸렸거나, 기사님의 대답이 쓸려갔을 것이다. 아니면 아무 소리도 없었을 수 있겠지.
난 포기하고 몸을 모서리에 뉘이며 잠을 청했다.
혹시 토하면 바로 문 열고 토할 거야라고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바로 카카오 T 에 남길 최악의 후기를 상상하면서.
기사님은 기분이 나쁘셨을지 도 모른다. 본인에게는 나름의 긴 기간의 프라이드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경력이 얼마나 되셨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화가 단단히 나신 게 분명하다. 정체 구간이 끝나자마자 안개와 비가 짙은 도로를 미친 듯이, 단어 그대로
정말 미친 듯이 질주했다. 깜박이는 켜도 안 보일 정도의 짙은 안개였지만 키지 않고 마구잡이고 도로를 휘저었다.
답답한 도로 상황에 대한 화인지 나에 대한 화인지는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내 토기를 잠재우는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도 엑셀에 리드미컬하게 가하는
까딱거림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순간에 F1차량으로 변한 소나타가 겨우 진정하며 멈추고 아비뉴프랑에 휘청거리며 내렸다. 비가 정말 미친 듯이 쏟아졌다. 이런 비슷한 형용사와 수식어를 남발하고 싶지 않은데 그날의 기사님 운전과 빗줄기는 미쳤다 외에는 적당한 설명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유감이다.
후다닥 건물 안으로 몸을 피했다.
젖은 몸과 머리, 축축한 내 얼굴을 좀 보고 싶어서 건물 화장실을 찾는데 그마저도 힘들었다.
일이 끝나 피곤한 얼굴과 축축이 번들거리는 인중, 곱슬머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 한숨을 푹 쉬다가 큰 도움이 안 되는 쿠션을 팡팡 두들기고 밖으로 나섰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에 너무 마음 쓰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