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의 폰과 방콕행 티켓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커피포트의 물이 끓고 있었다. '쉑~'하고 소리를 내며 몸속에서 달군 액체를 밖으로 내뱉고 있는 중이었다. 찻잔에 다소곳이 뜨거운 물을 붓고 홍차 티백을 집어넣었다. 선물 받은 커피 드립이 있지만 커피가루를 붓고 원액이 떨어져서 채워지는 시간을 기다리며 나중에 청소하는 과정들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오래전에 우연히 접한 홍차의 맛에 익숙해진 이후 커피보다 더 선호하게 되었다.


주중의 낮 시간에 집에 있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다. 회사일로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휴가를 내고 집에 있으니 불안한 느낌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엄연히 할 일이 있었다. 이틀 후면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할 예정이었지만 아직 내 짐정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벌써 밖으로 나가고 없는 적막함이 집안 전체를 감싸고 있고, 거실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나른하게 집 안 전체를 채워가고 있었다.


'어느 것부터 시작하지?'라고 생각하며 홍차 한 모금을 입안에서 천천히 돌려 본다. 책장에 진열된 책들 중에서 가져갈 것과 버릴 것으로 나누기 시작하면서 정리를 시작했고, 옷들을 빈 상자에 담다 보니 어느덧 오후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책상 서랍을 정리할 차례가 되었다. 서랍을 열어 보니 나만의 조그만 박물관이 나타났다. 년 도별로 사용한 수첩들이 몇 권 있었고, 그 속에는 전화번호들과 메모들이 적혀 있었다.


'이사를 두 번 다시 가기는 싫지만, 이번 기회에 쳐 박아 두었던 물건들이 많이 정리가 되는구나. 버릴 것은 버려버리고 꼭 필요한 것들만 들고 가야지.'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사는 게으른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으나 좋은 면이 있다면 이렇게 정리를 할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맨 아래 서랍만 정리하면 다 끝나는구나.'라고 신나 하며 나는 그 서랍을 열었다. 커다랗고 오래된 선물 상자가 한아름 가득히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분류하기에 애매한 물건들을 넣어 두던 상자였다. 또한 집안의 공개된 곳에 놓아두기에는 내가 편하지 않은 물건들도 여기에 넣곤 했던 것 같다.


젊었고 체력이 좋았으며 야망이 있던 시절이었던 나의 삼십 대의 어느 시간을 나는 외국에서 보냈으며 그때의 추억들을 일깨워 주는 물건들이 상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모든 것들이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말해 주고 있었다. 사연들이 있는 물건들이 담겨 있는 것들이었다. 당시 쓰던 회사출입증, 하드디스크,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전자기기 전용선들이 엉켜 있었고, 그 속에서 폰 하나가 외롭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그 폰에 눈이 순간 고정되었으며 그 기계는 뭔가를 말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


'지나간 시간들을 모두 잊은 듯 보이는군요. 그동안 당신은 변했을 테고 바쁘게 사셨겠죠? 나를 잊어버리고 심지어 얼굴과 이름조차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버렸겠죠.'


분명히 그 폰 속에는 그녀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우연히 만나게 되어 사랑을 했고 시간이 지나자 이별을 준비해 왔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된 애틋한 추억 속의 여인의 전화번호였다. 귀국한 이후 그녀가 보고 싶을 때는 전화를 걸기 위해 폰을 켰지만 다시 켜지지 않았다. 수리점에 가서 고치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외우지 못한 내가 바보스러웠고 폰 수리를 하는 직원의 무능함에 오히려 화가 났었다.


그러나 만약 폰이 고쳐져서 내가 그녀에게 전화를 걸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도 들었고, 그녀와 다시 옛 시절로 돌아가버리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들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게 하여 그녀의 존재, 함께 보낸 시간들과 기억들, 전화번호는 나의 추억 속에서만 머물 듯 저 전화기 속에서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과거와의 인연들을 끊어버리기 위해 자신의 전화번호를 바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럴 가능성도 높다고 생각되었다. 그녀에게도 가슴 아팠던 시간들은 이미 저 멀리 흘러가 버렸을 것이다. 지금은 그 시간들이 나의 머리와 가슴의 중간정도에 있는 희미하지만 한 번쯤 되뇌고 싶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짐정리를 다 끝내고 아파트 밖 공터로 나와서 황혼에 물든 하늘을 보며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보았다. 그리고 한 모금 연기를 텅 빈 공기 중으로 뿜으며 혼자서 말해 보았다.


"녹.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리고는 지난날 삼십 대 초반의 젊은 시절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나의 머리를 스쳐가기 시작했다.



옆에서 들리는 소근 거리는 소리에 선잠이 깼다. 우리나라 말은 아니었다. 타이 항공의 여승무원들은 기장의 착륙준비 지시 방송이 나온 뒤로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나의 잠을 깨웠던 옆자리의 승객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길인지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알 수 없는 말들로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방콕 스완나폼 국제공항에 가까워 가자 비행기의 창으로 보이는 풍경 속에서 끝없이 펼쳐진 논들과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눈에 들어왔으며 어느덧 패밀리마트의 로고까지 어렴풋이 분간이 되는 높이까지 비행기는 내려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는 바다를 보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낮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태국의 첫 풍경은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되어서 지금까지도 착륙할 때 보았던 태국의 모습은 눈에 선하다.


"쿵"하고 비행기의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활주로를 빠져나와 주기장에 비행기는 정지했다. 옆 좌석의 태국가족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어 주었고, 어서 빨리 고국 땅을 밟고 싶은 듯이 가방을 들고 객실 복도를 가로지르며 가버렸다. 나는 다른 승객들이 거의 객실을 빠져나간 후 가방을 들고 천천히 비행기 문을 나왔다. 한국과는 확실히 차이가 나게 더운 공기가 맨 처음 나를 환영해 주었다.


입국심사대에 도착한 나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선 인파에 묻혀 한 시간 정도를 조금씩 움직인 후에 겨우 심사대를 통과하여 입국장 밖을 나와 택시가 있을만한 장소까지 이동할 생각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장서혁 씨 아닌가요?"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네. 맞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나는 놀라며 그를 바라다보았다. 무테로 된 안경을 낀 눈은 스마트하게 보였고, 눈빛은 예사롭지 않게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키는 약간 작기는 했지만 전혀 단점으로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야무진 느낌을 더해주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키도 크고 체구도 건장하군요. 하마터면 알아보지 못할 뻔했어요. 나는 김명석이라고 합니다. 한국에 연락해 보니까 굳이 나보고 공항에 나오지 말라고 장서혁 씨가 부탁했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같이 근무하게 될 사람이고 방콕에는 처음 온다고 들어서 내가 공항에 나와 봐야겠더군요."라고 그는 말을 덧붙였다.


"아! 김 부장님이 공항에 직접 나와 주시다니 제가 너무 무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라고 나는 다급히 대답했다.


"아니에요. 방콕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국제도시여서 처음 오면 혼자서 정착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리고 내가 공항에 마중 나온 점을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김명석 부장은 말을 마치고 주차를 해 놓은 곳으로 앞장서서 이동했고, 나는 그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처럼 그림자처럼 옆에 붙어 따라갔다.


공항 밖을 나와서 처음 접한 방콕의 공기는 마치 건식 사우나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숨을 막히게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 해외출장을 갔다 방콕으로 돌아와서 스완나폼 공항을 나설 때마다 느껴지는 이 더위는 마치 나를 고향에 돌아온 듯 한 포근함을 주곤 했었다. 김 부장님의 승용차로 방콕 시내 방향으로 약 오십 분을 달려서 내가 예약해 둔 호텔에 도착하였다.


"피곤할 테니까, 주말에 혼자서 푹 쉬고 월요일 아침 여덟 시에 여기서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라고 그는 호텔 로비를 걸어 나갔다.


나는 따라 나가서 그의 자가용이 사라질 때까지 밖에 있다가 다시 들어와 체크인을 하였다. 비즈니스호텔이었지만 방안은 생각보다 쾌적하고 넓었다. 문득 드는 생각이 방콕에는 호텔이 아주 많아서 가격대별로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었다.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호텔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시 동안 휴식을 취하였다. 그러다 깜박 낮잠이 들어 버렸지만 오래 자지는 못하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어 이메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한국 본사에서 온 메일부터 정리를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방콕에서 같이 일하게 될 프랑스인 여자 상사의 이메일을 발견하였다.


'미스터 장에게.


방콕에 온 것을 환영해요. 나는 셀린이라고 해요.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되어 반가워요. 미스터 장의 한국 본사에서 유능한 직원을 보낸다고 하더군요. 앞으로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줄 거라는 말도 덧붙였어요. 아무튼 여기 생활에 빨리 정착하기를 바라요. 나는 지금 프놈펜에 출장 나와 있어요. 여기서 일주일을 보내다 갈 거예요. 나중에 사무실에서 봐요.


셀린으로부터'


그녀는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공공정책분야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다국적 기업의 방콕 지사장이었다. 당시 방콕사무소는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의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주로 국제기구와 계약을 맺고 공공부문 컨설팅 사업을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김명석 부장이 속한 한국의 컨설팅 회사는 전략적 제휴를 위해 셀린이 일하는 다국적 기업과 계약을 맺었고, 그는 관리자로 방콕에 파견을 나와 있었다. 내가 속한 회사는 그의 컨설팅 회사의 하청업체에 가까운 성격이었다. 내가 여기서 만들 수 있는 사업성과에 따라 회사의 재계약 여부와 또한 내가 얼마나 여기서 일을 하고 갈 것인지도 결정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까닭에 내가 파견 나온 자리는 리스크가 많이 따르는 것이었으므로 무난한 일을 선호하는 한국 본사 직장인들에게는 기피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선득 이 파견 자리에 나오려고 하는 직원이 없었다. 당시 나는 젊은 편이었고 또한 직장생활 몇 년 차에 접어들면서 뭔가 변화를 원했고, 설령 여기에 나와서 별 볼일 없이 가더라도 잃어버릴 것이 얼마나 되겠느냐 하는 객기가 더해져서 나는 방콕행 티켓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다보며 방콕에 오게 된 결정이 과연 잘한 것인지 스스로 질문을 해 보았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다 보니 어느덧 밖이 어두워져 가고 있음을 느꼈다. 침대에 일어나서 베란다 커튼을 젖히니, 황혼 무렵의 방콕 시내 밤거리에 서서히 네온사인이 켜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