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개척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외국을 여행하는 것과는 차이가 많다는 것을 태국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알 수가 있었다. 의식주라는 기본적인 것에서 시작하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였다. 최소한 일 년 이상을 살아야 할 집을 신중히 선택해야 하며, 병원에서 진료를 보거나 약을 타먹는 문제, 낯선 환경에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며 사람을 잘 만나고 사귀어야 하는 점 등의 여러 가지가 있었다.

당시 나는 일 년 계약을 맺고 방콕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업무성과 등에 따라 이후 기간은 재계약을 통하여 파견기간이 연장될 가능성도 있었다. 그래서 방콕에서 얼마나 거주할지가 불확실한 조건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데 애를 먹었다. 하지만 호텔 생활을 계속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퇴근 이후 시간에는 방콕 시내 거주 지역을 돌아다니며 최소 일 년은 살아야 할 집을 찾아보고 다녔다.


"요즘 많이 바쁘지? 그래 집은 정해 놓았어? 회사에 있는 태국 직원들의 눈도 있으니까 집은 괜찮은 곳으로 잡는 게 좋을 거야. 허름한 곳에 산다고 소문나면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업신여길 수도 있어. 그리고 한국사람 위상도 있고 말이야. 혼자 살기에 괜찮은 곳으로 내가 어디 알아봤으니까, 오늘 오후에는 나하고 집구경 하러 같이 가보자고."


어느 날 오전 미팅을 마치고 난 후, 김 부장이 나를 보며 느긋하게 말을 걸어왔다.


오후 늦게 보러 간 집은 외국인 거주지역에 위치하고 전망이 좋은 삼층 빌라의 이층 모퉁이에 있는 스튜디오형 원룸으로 세련된 집이었다. 수영장과 피트니스 체육관도 있고 집안에는 가구와 주방기기, 전자제품 등이 구비되어 있어 지금이라도 바로 이사를 들어와서 살아도 되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비용이었다. 대기업 소속인 김 부장과는 달리 내가 속한 회사의 해외 주재비용은 형편이 없는 편이었다. 외교관 가족들과 대기업 해외 주재원 가족들이 주로 거주하는 고급 거주 지역에 살며 자식들도 일류 국제학교를 보내고 집에 하녀까지 두며 방콕에서 살고 있는 김 부장으로서는 나의 열악한 해외체류 조건을 이해할 턱이 없었다. 그러나 김 부장의 호의를 무시하기도 쉽지가 않기 때문에 나중에 그 스튜디오형 원룸을 일 년 동안 사용하는 것으로 빌라주인인 인도인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나머지 비용을 줄이면서 아껴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멋진 곳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집을 구하러 다니는 수고와 시간을 덜게 되었습니다. 오늘 저녁은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부장님."라고 나는 대답했다.


방콕의 거리는 늘 외국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아마도 지금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방콕은 아직 내가 모르는 매력이 있나 보구나.'라고 생각하며 혼자서 대도시의 구석구석을 다녀 보고 싶었고 가까운 파타야에도 관광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한가하게 방콕의 시내와 파타야 등의 관광지를 관광하고 다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와 강박관념은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의 나에게도 여전히 남아 있지만, 태국에서 근무를 시작했던 당시 삼십 대의 나는 새로운 조직과 환경에서 무엇인가 가시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아이디어를 짜내고, 계획을 작성하여 그것을 준비하고 추진하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기울였던 때였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서 내가 제출한 사업 계획은 사내 회의에서 여러 번 거부를 당하였다. 현실성과 수익성이 고려되었겠지만, 이미 방콕 사무소에 자리 잡고 있는 다국적 직원들의 이해관계가 새로운 프로젝트의 결정에 더 많이 관여하고 있었다. 자기들의 사업에 장차 위협이 될 수 있는 사업 제안이면 흠집을 내기가 일쑤였다.


"미스터 장. 메콩강 유역 발전을 위한 프로젝트는 이미 다른 팀에서 기획하여 시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지원인력도 단기계약으로 충원되고 있고요."라고 셀린은 말하였다.


"셀린! 하지만 저의 계획은 영역이 틀립니다. 그 팀의 사업과는 중복이 되지 않고 이후에 국제기구 등과 사업추진 계약이 성사되면 오히려 기존 프로젝트들과 상승효과가 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나는 대답했다.


"미스터 장. 여기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사업을 쉽게 생각하는 것 같군요. 같은 지역의 사업을 동일한 회사와 계약을 하지 않는 게 일반 관행이에요."라고 벨기에 직원이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자. 회의 분위기가 다소 예민해지는군요! 그동안 우리 회사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지역으로 눈을 돌려 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이 듭니다. 미스터 장에게 이런 시장개척 업무를 맡기면 어떨까요? 스리랑카는 인도에 비해 시장성이 낮아서 그동안 우리의 관심 밖이었지요. 배타적인 면도 있어서 진입장벽도 높았고요. 하지만, 타밀반군과의 내전이 끝나가고 있으니까 스리랑카 정부는 국가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외국과 교류하고 또한 국가 재건사업을 위해 국제적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스리랑카는 삼십 년간의 내전 후에 그동안 정체되었던 국가 발전사업이 앞으로 한창 전개될 거라는 말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신규사업이므로 리스크가 따르고 아세안이나 인도에 비해 시장성은 낮지만 투자가치를 따지면 한번 시도해 볼만한 사업이라고 생각됩니다. 미스터 장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맡고 있지 않으니 신규 사업에 투입될 시간이 있어요. 미스터 장의 젊은 열정과 그동안 구축한 전문분야가 이런 곳에 적임자일 것입니다. 다른 직원분들은 이미 진행 중이거나 준비를 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바쁘실 테니깐요. 저의 제안이 어떠십니까?"라고 김 부장은 경직된 회의 분위기를 바꾸고 있었다.


"미스터 김의 제안이 괜찮을 것 같네요. 그러면 미스터 장은 스리랑카에 대한 시장개척을 진행해 봐요. 또한 저와 다른 팀 직원들이 이미 진행 중인 사업에도 필요하면 지원인력으로 투입이 될 수도 있어요. 미스터 장의 전문적 지식의 지원이 필요해요. 재정분야 추계분석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한데, 미스터 장이 마침 방콕에 잘 오셨어요. 오늘 회의가 길어졌으니 이만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셀린은 말하며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위험성이 따르는 시장개척은 방콕에 근무하는 여기 직원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만 진행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안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스리랑카 사업은 크게 수익이 기대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또한 회사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해 무시하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어중간한 지역의 신규 사업을 위한 시장개척이 방콕사무소와는 얼마 전까지 아무 연관이 없었던 나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그 후 반년이 흘러갔다. 그동안 나는 스리랑카에 대한 일반적 문헌조사를 진행하였고 국제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과 같은 국제개발과 관련된 거대 국제기구들의 거시적인 사업동향, 스리랑카 정부의 국가재건사업 계획 등을 파악하여 국제개발펀드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분야를 찾아 나갔다. 조그만 회사에서 파견된 직원인 나에게 주어질 수 있는 시장개척 준비자금은 거의 전무하였기 때문에 나는 온라인상으로 최대한 문헌조사를 하여 정보를 입수, 분석해야만 했고, 스리랑카의 실제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서 방콕 주재 스리랑카 대사관과 어렵게 접촉을 시도하여 관련 직원과 미팅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국제개발펀드를 쥐고 있는 국제기구의 방콕 사무소 관계자들 및 국제협력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선진국의 방콕 대사관 관계자들을 만나기 시작하였다.


세계적인 다국적 컨설팅 회사의 명함이 나의 유일한 무기였었다. 보잘것없는 개인의 힘으로는 그들을 만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미 자기들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을 보며 온종일 사무실에 틀어 박혀 자료정리와 분석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편하지가 않았다는 것이었다. 눈물겨운 시간들이었으며 오늘도 만나주지 않을 듯 보이는 콧대 높은 국제기구와 선진국 대사관 직원들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장을 나가서 그들의 사무실을 기웃거리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한 달마다 파견업무를 국내 본사에 보고하는 문서를 작성하고 있는 나의 손가락은 마치 내 얼굴을 안 쓰러 하며 올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말에는 종종 김 부장과 함께 골프를 치러 갔다. 방콕에서 경제적 여유가 없었던 나는 골프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지만, 김 부장이 나에게 베풀어준 호의와 그가 속한 회사는 내가 속한 회사의 원청관계였으므로 골프를 같이 쳐주는 의전적인 활동도 현실적으로 필요하였다. 김 부장의 골프 상대는 방콕에서 기반을 잡은 한국교포 사업가들이었고 그들로부터 태국에 대한 정보를 많이 들을 수 있었지만, 당시 시장개척에 대한 준비에 온통 골머리를 썩고 있는 나에게는 이런 골프 회동과 이어지는 저녁자리는 솔직히 괴로웠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그런 모임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어느 주말에 방콕 외곽의 고급 골프클럽에서 필드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한 교포사업가가 나에게 말하였다.


"장서혁 씨. 저쪽을 봐! 멋지지?"


그쪽을 돌아보니까 일몰의 장엄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인도차이나의 거대한 땅 아래로 떨어지기 위해 태양은 그 이글거림을 최대한 토해내고 있었다. 필드에 서 있는 우리 모두는 그 장엄함에 넋을 잃고 있었다. 오늘 골프를 마감해 가는 부유한 한국 중년들과 그들을 하루 종일 필드에서 시중들고 있는 가난한 태국의 캐디들, 그리고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나도 신이 만든 자연의 위대함 속에서 모두들 연약한 피조물들의 모습으로 잠시나마 침묵하였고, 그 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하였다.


어느 날 오전에 셀린은 나에게 미팅을 신청하였고 정해진 시간에 셀린의 사무실에 찾아갔다. 그녀의 회의 탁자에 마주 보고 앉자 나에게 말을 시작하였다.


"미스터 장. 오늘 날씨가 화창하네요. 그렇지 않아요? 오늘 내가 미팅을 요청한 것은 두 가지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거예요. 하나는 좋은 소식이고, 나머지는 더 좋은 거예요. 어느 것부터 듣고 싶어요?"


"제가 한국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건가요? 시장개척을 위한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가시적인 결과가 없습니다. 앞으로 일 년계약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도 괜찮습니다. 고향생각도 나기 시작하네요."라고 나는 쓴웃음이 무의식적으로 나오며 대답해 버렸다.


그러자 셀린은 웃음을 터트리며 나를 귀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미스터 장이 제출한 스리랑카 신규 사업 계획서가 본사의 타당성 검토회의에서 통과되었어요. 그리고 더 좋은 소식은 국제개발기금을 갖고 있는 조직의 관리자가 그 계획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향을 어제 나에게 이메일로 알려 줬어요."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콕에 온 이후로 지금까지 보낸 지옥 같은 시간들을 정리하고 몇 달 후에는 귀국할 것이며 그 이후에는 이직을 준비하려고 마음을 최근 들어서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내 경험상으로는 이 정도 진행이 되면 신규 사업 프로젝트는 거의 확실히 계약이 되거든요. 이 프로젝트는 다른 직원에게 맡기는 것보다 그동안 고생하여 준비해 온 미스터장이 계속 맡아 주는 것이 맞지 않겠어요?"라고 셀린은 말했으며 나는 그녀의 제안에 동의를 표시했다.


"오케이! 근무연장 계약서에만 사인하면 내년에도 미스터 장을 계속 볼 수가 있겠군요."라고 말하며 셀린은 미팅을 정리했다. 그녀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