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의 만남

마이뻰라이

by 김주영

스완나폼 국제공항에 차가 정차하자 나는 운전기사에게 삼십 분정도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하고 급히 내려 김 부장과 그의 가족들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운전기사는 차 트렁크에서 김 부장 가족들의 짐을 내려 주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항공권을 티켓팅하고 김 부장과 가족들이 출국 심사대로 올라가기 전에 나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부장님. 그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태국생활에 무난히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귀국하시더라도 가족 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김 부장님도 앞으로 승승장구하시길 바라겠습니다."라고 나는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고, 사모님과 애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였다.


"장서혁 씨도 여기 태국에서 몸 건강히 잘 지내세요. 외국에서 남자 혼자 지내시느라 많이 힘드실 것 같아요."라고 사모님이 말했다.


"뭐가 고생이야? 남자 혼자 있으니 자유롭지 않아? 재밌게 지내게. 난 자네가 부러워."라고 김 부장은 말하며 재빨리 윙크를 해 주었다.


나는 갑자기 당황해지며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며 주춤거렸다.


"하하! 이 사람은 나이에 비해 너무 순진한 것 같아. 아무튼 여기서 잘 지내게. 한국 오면 연락을 꼭 해줘. 방콕시절을 생각하며 한잔 해야지."라고 그는 다소 시원섭섭한 듯 한 마음이 어린 표정으로 웃으며 가족들과 출국심사장 계단 위로 사라졌다.



사실상 갑을 관계였던 김 부장과의 사이를 생각하면 그동안 항상 조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일 년 사이 정이 많이 들었던 터여서 그와 헤어진 얼마 후에는 나도 모르게 길게 한숨이 쉬어지며 마음이 허전해져 왔다. 공항건물 밖을 나와서 차가 올 방향인 건물의 끝 편으로 가서 밤하늘을 바라보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길게 한 모금을 공중으로 뿜으니 연기는 열대지방의 공기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고 검은 도화지 같은 방콕의 밤하늘 위로 비행기들이 부지런히 올라가서 날개등을 깜빡이며 서서히 각자의 목적지 방향으로 천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시간을 맞추어 운전기사는 나를 찾아내어 정확하게 내 앞에 차를 멈추었고 나는 그와 함께 다시 방콕시내로 향했다.


김 부장이 귀국하고 한 달 후에 나는 이사를 하였다. 일 년 동안 월세가 너무 부담스러웠고 이제는 방콕의 지리도 익숙해져서 시설이 좋지는 않지만 훨씬 저렴한 곳을 직접 찾아서 집을 옮겼다. 그리고 골프를 그만두고 태국의 전통무예인 무에타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스리랑카 등의 해외출장이 잦아지면서 비행기를 많이 타고 출장지에서 자동차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허리가 아파 오기 시작하였고, 척추 부위 근육을 강화시킬 수 있는 운동으로 선택한 것이 무에타이였다. 강습비가 태국 물가에 비하면 싼 편이 아니었지만 월회비로 일정액을 계산하지 않고, 쿠폰을 구입하여 실제로 체육관에 운동하러 가는 날만 계산이 이루어졌으므로 바쁜 나에게는 오히려 좋은 점이 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태국생활의 제2막이 시작되고 있었다.


새로 이사한 지역은 외국인들이 밀집되어 거주하는 곳과는 멀지는 않았지만 약간 떨어져 있어서 전에 살던 지역보다는 태국인들과의 접촉이 많아지게 되었다. 내가 사는 건물 내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면서도 태국인 이웃들과 자주 보게 되었고, 세탁을 하기 위해 동전세탁기가 있는 가게를 이용하면서도 태국인들과 대화를 하는 경우가 늘게 되었다. 옷수선 할 일이 있으면 수선 가게에 가서 기다리는 동안 가게 주인과 얘기를 나누기도 하였다.


이렇게 태국인들과 접촉이 많아지니 태국어가 조금씩 이해되는 듯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자꾸 듣게 되는 말들은 그때마다의 상황으로 직감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파악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실험적으로 내가 따라 한 말들이 그들과의 대화 속으로 자연히 녹아들어 가게 되면 그 표현은 완전히 나의 것으로 소화가 되었다. 낯선 땅에 처음 도착한 이방인은 아마 이렇게 그 땅의 언어를 배웠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시 살았던 동네의 입구에는 일본인이 혼자서 운영하는 조그만 일본식 선술집이 있었다. 삼십 대 초반의 남자였는데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런저런 일을 하다 몇 년 전에 방콕으로 와서 지금은 이 동네에서 일본인들을 주로 상대하여 선술집을 하며 간단한 일본음식과 술을 팔고 있었다. 대학시절 일본어에 관심을 가지고 한때 꽤 열심히 어학공부를 한 적이 있었으므로 가게 주인과 말이 통하였다. 퇴근 후나 주말에 그의 가게에 들러 저녁식사나 술을 마시게 되는 횟수가 쌓여 갔고,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서 어느새 제법 친해지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타나카였고 나에게 이런저런 유익한 방콕에 대한 정보를 전해 주었다.


"서현. 오늘 금요일인데 왜 여기 혼자 와서 술 마셔?"


가게 안의 일본인 손님들이 사케와 맥주를 마시며 시끄럽게 떠드는 가운데서 타나카는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 번 주도 일에 바빠서 정신이 없었고 오늘 밤은 너무 피곤해서 여기 와서 한잔하고 집에 들어가 바로 잘 생각이야."라고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대답을 했지만, 타나카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어디 가서 혼자서라도 좀 즐겨! 내가 지도를 그려 줄 테니 거기로 한번 가봐! 오늘 같은 금요일 밤은 좀 즐기라고!"


그가 준 쪽지를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맥주를 다 비운 후 집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혼자 우두커니 천장을 올려다보니 아주 조그만 도마뱀 한 마리가 벽면을 움직이다 멈추어 섰다. 이사를 온 이후로 이런 작은 도마뱀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참 동안 그 녀석을 구경하다가 문득 내가 몹시 외로움을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점점 그 외로움이 내 마음을 잠식해 들어갔다. 아까 타나카가 준 쪽지가 생각이 나서 바지 호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으니 종이가 느껴졌다. 그 후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그리고는 옷을 걸쳐 입고 방문을 닫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타나카가 알려 준 장소는 쏘이 카우보이라고 불리는 지역으로 성인들을 위한 클럽이나 빠가 밀집된 거리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 종업원에게 술을 사주며 같이 얘기하거나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여자들을 보며 혼자서 술을 마셔도 되는 곳이었다. 그 거리를 처음 가게 된 그 밤은 그런 분위기가 신기하고 흥분되어서 몇 시간을 보내다 돌아왔다. 방콕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고 그곳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들은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다가왔다. 그 이후 여러 번 그 거리를 다니며 한동안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자 그 거리의 사람들과의 접촉은 형식적인 것이었고 언제나 돈을 목적으로 하는 거래의 또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그런 재미가 식상해지기 시작했고 허전한 마음은 오히려 더해만 가고 있었다.


낮 동안의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남아 있던 어느 날 저녁에 나는 퇴근하여 무에타이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친 후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무에타이는 격렬한 운동이었으므로 몸의 구석구석이 뻐근함을 느꼈고, 시간이 날 때 근육의 피로를 풀어 주기 위해서 마사지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컴컴한 도로를 비추는 가로등 옆에 한 채의 육중한 건물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형광색이 어우러져 있는 네온사인 간판은 태국어로 적혀 있어 의미를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여기가 마사지를 하는 곳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고 피곤한 몸을 잠시나마 쉬어 가고 싶은 마음에 낯선 환경이었지만 용기를 내어 안으로 걸음을 옮겨 보았다.


입구를 들어가자 주치장이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운전자가 자리를 비운 자동차들이 절반 정도 주차되어 있었다. 로비로 들어가는 현관 주위는 태국적인 면을 느끼게 해주는 문양들과 불상이 놓여 있었다. 로비로 들어오자 바로 옆에 큰 수족관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커다란 열대어들이 멈추어 있는 듯 아주 느리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로비 한가운데로부터 중년의 남자 매니저가 다가왔다. 외국인인 나를 봐도 그는 주저하지 않는 것을 보면 현지인 남자뿐만 아니라 외국 남자들도 가끔 찾아오는 마사지 가게인 것 같았지만 내가 방문한 그 시간에는 로비에 손님이 오직 나 혼자였다. 매니저는 나에게 태국어로 뭐라고 말하며 안내를 하였는데, 분위기상 마사지 이용시간대별 가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의 설명을 듣는 척하다가 적당한 때를 찾아서 가게에서 나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덩그러니 큰 홀에 손님이 나 혼자여서 편하지가 않았고 낯선 가게에 무작정 들어온 터라서 분위기만 보고 나가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매니저의 말이 끝나자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뒤돌아 섰다. 그러자 프런트의 계산대에 서 있던 여자 사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태국어로 매니저에게 뭐라고 말을 해서 지시를 내리는 것 같았는데, 그로부터 일분 후에 젊은 여자 두 명이 커튼 뒤에서 모습을 나타내었다. 아마 내가 그냥 나가 버리게 될 것 같아서 주인이 건물 안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는 마사지사들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두 명의 젊은 여자들이 나왔고 그들은 나의 시선을 사로잡아 버릴 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나가려던 발걸음을 본능적으로 멈추었고 그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카운터에 서있던 여자 사장은 이렇게 확 바뀐 나의 태도와 표정을 보면서 재밌다는 듯이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한 아가씨는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 깔끔하게 아름다운 얼굴이었으나 성격은 꼼꼼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나머지 아가씨는 처음부터 웃음을 지으며 친근한 느낌을 주어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활기찬 성격으로 빼어난 미모가 나중에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기는 그렇지만 마사지 가게에서 일하기에는 좀 아깝다는 느낌이 순간 들었다. 하이힐을 신고 있어서 키가 커 보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분명히 보통 태국여자들보다는 훨씬 컸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두 명의 아가씨 중에서 상대적으로 활기차 보이는 아가씨가 앞으로 나오며 나에게 영어로 유창하게 말했다.


"태국어 할 줄 모르세요? 영어로 말하셔도 돼요. 저희들은 영어 할 줄 알아요. 편하게 마사지받으시거나 대화가 필요하시면 저희들과 이야기하시다가 가셔도 돼요. 편히 쉬고 가세요."


나는 두 명 중에서 나에게 말을 건 그녀에게 마사지를 받기로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