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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 Key Aug 22. 2023

나는 언제
안다고 말을 할 수 있을까? (3/3)

<누구한테 뭐래, 나부터 잘해야지> 시리즈 (5)


오늘 세번째 시간에는 지난 두번의 페이지에 걸쳐서 내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판단할 수 있는 나만의 기준과 새로운 것을 아는 수준이 이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익숙해지는 단계까지 반복적으로 연습을 하면 알게 된다는 방법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아는 수준”에 이르는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의 반복 연습을 방해하는 것일까? 물론 방해 요소는 많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시간을 통해 이야기해 보고자 하는 것은 지극히 내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열심히 공부를 좀 하라고 타이르는 내용일 수 있음을 미리 이야기를 하고, 시작해보려고 한다. 



이만하면 됐다


업무로서 사람들 앞에서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했던 나의 경험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일 먼저는 회사의 업무 시스템의 사용 방법과 업무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경험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교육이라는 업무로 전환하고 나서 본격적인 강의를 시작했던 첫 강의가 있었다. 두 가지 경험의 공통점은 누군가에게 내가 아는 것을 알려주는 상황이라는 것인데, 차이점은 두 번째 경험은 폭망했다는 것이다.

 

첫번째는 강의라고 하기에는 내가 하는 업무를 설명하는 것에 가까웠다. 강의를 하기에 앞서 난 그 일을 반년동안 하고 있었고, 내 업무의 특성 상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첫번째 강의를 위해 필요한 자료도 내가 직접 만들었다. 그러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가 내 머리 속에 분명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강의에서도 잘 설명을 했었다. 그러니 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두번째의 경험은 상황이 달랐다. 우선 내가 만든 자료가 아니었고, 강의에서 해야 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그리고 강의 내용을 알려준 사람도 없었다. 홀로 준비를 해야 했었는데, 다행히 이전에 강의를 녹화해둔 동영상 자료가 있었다. 나에게는 1주일이란 시간이 있었고 나름 강의를 준비한다고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망했다. 왜 그랬을까? 간단하다, 내가 해야 하는 이야기를 완전하게 숙지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나름의 방법으로 준비를 했었지만 강의 중간에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했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고, 그 질문으로 인해 내가 연습한대로 진행되지 않았기에 준비한 이야기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조차도 알지 못했던 부끄럽고 처절한 경험이다.




#1. 아예 모르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게 되면 자기 만족이라는 첫번째 유혹이 시작된다. 


모든 사고가 그렇듯 일이 벌어지고 나서 돌이켜 보니 이는 예정된 사고였다.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았던 상태로 강의를 했으니 망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시간을 되돌려 강의를 준비하던 시점으로 돌아가보자. 


첫번째 강의에서 내가 한 말들은 매일 업무를 하면서 입밖으로 소리내서 설명하던 것들이었다. 건드리면 바로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두번째 강의는 생소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배짱이었는지 소리내서 연습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할지 메모를 하고 눈으로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해야 하는 말을 소설을 쓰듯 모두 타이핑을 하고서 눈으로 혹은 중얼거리며 준비하기를 수차례, 이젠 슬라이드만 봐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가 대충 떠오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말을 했다. 

“이만하면 됐다” 


강의할 때 사용하는 PPT 슬라이드를 보니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떠오르는 것 같고, 메모를 슬쩍 보니 그 내용이 맞는 것 같은 수준이 되면 안다는 착각이 시작되면서 이정도면 충분하다는 자기 위로와 만족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반복 연습을 중단하게 하는 원인이고, 이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면 대충 아는 수준에서 멈추게 된다. 그리고 그 내용은 점차 잊혀지게 되고, 시간이 흐른 뒤, ‘어? 이거 내가 아는 건데. 아, 뭐였더라?’ 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내가 <Surveillance>란 단어를 듣고 알지 못하지만 안다고 착각하는 그런 상태 말이다. 우리는 이 스스로 만족하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2. 안다고 착각을 하니, 계속 연습하는 것은 지겹고 시간낭비로 보이기 시작한다. 

     두번째 유혹인 타협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내 몸이 기억할 정도로 계속해서 연습을 한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에 아주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이 방법은 엄청난 단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속도이다. 익히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지만,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마음이 조급해지게 된다. 마음이 조급해지다 보면 연습의 과정이 줄어들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이정도면 됐다”라며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는 타협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이 타협하는 순간 나는 그것을 안다고 착각하며 반복 학습을 멈추게 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배움에서 가장 두려운 결과인 “모르지만 아는 것 같은 상황”을 만들게 된다.


영어 문장 하나를 소리내서 읽어보는 연습을 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지만 다섯 번 정도를 하고 나면 이 타협점이 슬슬 찾아오기 시작한다. 뭐 좋다. 열 번을 소리 내 읽었다고 하자. 정확한 횟수는 정해지지 않았으니 충분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소리 내어 읽어야 하는 것이 한 문장이 아니라 10문장, 20문장, 혹은 10페이지에 달하는 양이라면 어떨까? 몸이 기억하도록 반복적으로 연습한다는 것이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정도면 됐다”는 타협점이 더 빨리 찾아오기도 한다.

일상생활이나 다른 상황에서는 모르겠지만, 배우는 것에 대해서는 이러한 타협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꼭 해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갖지 않고서는 익숙해질 정도의 학습은 꿈같은 이야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유혹을 이겨내고 꾸준히 연습한 사람이 높은 수준의 학습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당황하지 않고, 아는 것을 설명할 수 있도록 빈 강의장에서 홀로 연습하다.


처참한 강의를 경험한 후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에 대한 나의 학습 태도에는 변화가 생겼다. 실제 강의를 하는 것처럼 강의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소리 내어서 실제로 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빈 강의장을 찾아가서 실제 사람이 있는 것처럼 미친놈처럼 떠들어댄 것이다. 몇 번을 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사람이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여러 번 말하게 되면, 한결같이 같은 말을 하게 될까? 나의 경우에는 계속해서 조금씩 달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다음에는 다르게 설명하고. 해야 할 말을 글로 적어 놓고 그 내용을 기억해서 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기억이 나지 않으면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반복해서 연습을 하다 보면 내가 전하려고 적어 두었던 대본을 복사하듯 말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의 경우 2시간 분량의 강의였는데 20번 정도 연습을 했던 것 같다. 

* 그렇다고 20번이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도, 20번에서 연습을 멈춘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꼭 똑같은 말이 아니더라도 다른 표현으로 동일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다. 뜻만 통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러나 비슷한 표현으로 말했으니까 충분하다고 연습을 멈추게 되면 실전 상황에서 전달해야 하는 의미와 완전히 동일하지 않은 말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연습을 강조하는 것이다. 당황하게 되면 대충 아는 것들은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그래서 HOT는 자다가도 춤을 추는 연습을 했던 것이다.


유명 강사의 강연을 들어보거나, 유투브의 수많은 강연들을 살펴보면 바로 눈치챌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같은 주제라면 이들은 어느 장소에서 강연을 하던 거의 같은 레퍼토리로 강연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취하는 행동이나 유머까지도 동일하다. 오리지널의 메시지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나 연습을 했기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똑같이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면 그들이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반복적인 연습을 방해하는 유혹은 너무 강력하다. 노력은 항상 힘이 들고 유혹은 항상 달콤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러한 타협을 이겨내기 위한 아주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의외로 방법은 간단하다. 늘 그렇듯 실천은 쉽지는 않다.


“이만하면 됐다”를 이겨내는 방법 : 겸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만큼의 겸손


“지금부터 딱 6개월이야. 니가 여기서 보내게 되는 첫 6개월 동안 배우는 영어가 너의 평생의 영어 실력을 결정할꺼야.”


2002년, 군 제대 후 처음 미국으로 어학 연수를 갔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미국에 도착해서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 미국에서 대학 졸업을 앞둔 형과 주유소에 들른 적이 있었다. 당시 미국의 다양한 자동차에 정신이 팔려 있던 나는 탱크처럼 생긴 캐딜락 SUV를 보며 신기해하고 있을 그런 시절이었다. 그 형은 영어를 얼만큼 잘하고 싶어서 연수를 왔는지 물었다. 

“어우, 형. 그야 자유롭게 대화가 될 정도면 좋지요.”


나의 대답에 형은 진지한 조언을 해주었는데, 난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부터 딱 6개월이야. 니가 여기서 보내게 되는 첫 6개월 동안 배우는 영어가 너의 평생의 영어 실력을 결정할꺼야.”

“네? 6개월이요?”

“아닌거 같지? 6개월이 지난 이후부터는 영어가 절대 늘지 않아. 6개월 동안 진짜 열심히 해야 해.”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었다. 6개월이라니. 앞으로 1년을 계획하고 어학 연수를 온 나에게 6개월이 전부라고 말하니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는 그 말을 흘려버렸고,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려고 노력했었다. 어학원 수업도 열심히 들었고, 미국 대학 입학에 필요한 토플 공부도 했었다. 필요한 점수가 생각보다 일찍 나와서 대학으로 편입도 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고, 어학 연수를 떠나 나는 대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다고 하니, 나의 영어 실력은 수준급이었을까? 미리 말하자면, 아니다. 영어로 전공 수업을 배운다는 것은 영어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두번째 학기가 찾아와도 역시 비슷했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 말도 알아듣기 어려웠고, 학생들과는 더 어려웠다. 학교 수업은 따라가야 하니,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들은 신나게 파티를 즐기는 동안 나는 도서관에서 종일 사전을 찾아가며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들은 수업을 마치면 다양한 여기 활동을 했지만 나는 늘어가기만 하던 단어장에 묻혀서 허덕이고 있었다. 운이 좋게도 좋은 성적은 받을 수 있었지만, 영어 실력은 더 이상 나아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였다. 예전에 나에게 해주었던 그 형의 조언이 새롭게 나를 찾아온 때가.

 

형이 해준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깊게 생각해 봤다. 6개월 동안의 영어 공부는 단순하게 단어나 문법 공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영어를 배우는 나의 태도, 습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새로 배우는 영어를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할 만큼 연습하고 연습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한 공부의 습관을 말했던 것이다. 6개월 동안 무한 반복의 연습 과정을 겪었다면 나의 영어 실력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내 6개월은 어땠을까? 미국에 도착했을 때, 누나가 갑자기 1달러 지폐를 주면서 주차를 해야 하니 25센트 동전으로 바꿔 오라고 했을 때, 나는 한마디도 할 줄 몰랐다. 그러나 6개월 동안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단어, 발음, 문법, 작문, 듣기 등 수업 시간에 배우는 내용도 열심히 공부했고, 푸드 트럭에서 점심을 사먹을 때는 앞에서 주문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따라해 가면서 주문도 하고, 모를 때는 전자영어사전을 이용해서라도 물어보는 등 이런 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운 것 같다. 이런 시간이 쌓이자 처음보다 영어가 들리게 되고 시험도 보았으니 실력이 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동시에 무엇이 함께 늘어났을까?


흔히 말하는 ‘눈치’다. 수개월을 지내면 하루를 보내는 일과가 어느 정도 비슷해진다. 그러니 매일 경험하는 상황에서 어떤 말들이 오고 가는지를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상대가 말하는 단어 하나 하나를 다 듣고, 전체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를 100% 인지하기 보다는 눈치껏 어떤 상황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에 상황에 적합한 반응을 보일 수 있게 된다. 사는데 문제가 없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상황이 익숙해지면 어학 실력이 많이 늘어난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게 되는데 이때를 조심해야 한다. 바로 이 시점이 ‘내가 안다’고 착각하게 되는 시작이기 때문이다. 몰라서 열심히 공부하며 노력하던 태도가 뭔가를 슬슬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괜찮아, 이정도면 됐어’라는 타협 마인드로 변하게 되고 이때부터 영어 실력은 제자리 걸음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6개월 동안 무한 반복의 습관을 만들지 못하면 상당한 손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그러니 다 안다는 건방질 수도 있는 태도를 늘 경계하고, 어느 정도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 내가 진짜로 알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되묻고, 대충 넘어가려는 것은 아닌지 지금 내가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면서 겸손한 마인드를 유지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참 부끄럽지만, 지금 캐나다에서 보내는 기간 동안 나는 겸손하게 무한 반복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타협을 매우 잘하는 모드로 지내는 것 같아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도 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휴우. 무엇을 배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겸손함을 유지할 수 있는 태도가 필수인 듯하다. 


오늘도 무엇인가 배우고 있다면, 집중해서 반복하지 않고 이만하면 아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질문을 해보자. 

“너, 이거 정말 알아? 설명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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