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주름(Pleats of time)

나는 소달구지시대부터 비행택시시대까지 300년을 살았다

by 풍초김해수


시간의 주름(Pleats of time)



인간의 긴 역사 속에서 현재 우리 세대가 가장 긴 수명을 살고 있다.

1940년대부터 2040년까지의 100년이 20만 년 인간역사에서 가장 긴 시간일 것이다.


이렇게 급변하는 세상에 나서 죽을 때까지 긴 시간을 볼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다.

시간에도 주름이 있다 주름이 많을수록 시간이 길어진다. 물리적인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반상대성원리처럼 중력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근데 물리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변화이야기이다


어린애보다 어른의 시간이 빨리 간다 변화를 느끼는 량에 따라 흐르는 시간은 각자가 다 다르다. 1년 동안 많은 사건을 겪은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1년이 길게 느껴질 것이다 이런 것이 시간의 주름이다




해방과 6.25 전쟁 전후해서 태어난 사람들은 엄청난 사회변혁과 시간의 주름을 체감하면서 살고 있다.


6.25 전쟁 직후 내가 태어난 부산 동래에는 시장이나 역 앞에 지게꾼이 줄지어 앉아 있었고, 비포장 된 신작로에는 흙먼지가 날리고 소 달구지가 짐을 싣고 다니면서 떨어뜨린 쇠똥을 아이들이 밟아 신발을 씻어야 하는 일이 상시적인 그런 세상이었다.


나서 크면서 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할 때쯤인 1960년 4.19 혁명 때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신나서 돌멩이가 날아다니고 뿌연 연기가 난무하는 고등학생 형들의 데모행렬을 따라다녔던 기억이 있으며 그다음 해 5.16 혁명 때엔 어른들이 시가행진하는 군인들을 환영하는 장면도 보고 자랐다.


중학교 들어가서는 전국이 새마을운동으로 물결쳤다.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되는 <새마을노래>와 "잘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의무적으로 배워 부르게 한 <잘살아보세> 같은 노래들이 하루 종일 라디오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속에서


우리 동네에도 비포장 골목길을 시멘트 포장 하는 마을공동작업에 각 가정마다 1명씩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했고 내가 우리 집 대표로 처음 삽질을 해본 기억도 생생하다.


이때쯤 부산 제3부두에서는 베트남 파월장병 환송식에 동원되어 태극기를 흔들었던 적도 있다.


고등학교 들어갈 때쯤엔 형편들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트위스트, 고고, 디스코 등의 팝음악이 유행하며 윤형주, 송창식의 트윈폴리오와 통기타 사단이 등장했고 음악감상실이란 게 생겨 입장료를 내면 티켓을 주는데 이것으로 커피 같은 차를 마시며 좋아하는 음악을 신청해 들을 수가 있었으며 나이트클럽도 생겨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박대통령이 1979년 서거했는데 1977년 약속했던 100억 불 수출달성과 국민 1인당 1000불의 국민소득을 달성하여 처음으로 <복부인>이라는 용어가 생기면서 전국이 아파트 붐과 함께 최초로 <투기바람>이 불기도 하였다.


프랑스의 여성지리학자인 발레리 줄레조라는 사람이 <아파트공화국>이란 책을 통해 한국의 아파트문화를 분석했고 그 책 내용을 논문으로 발표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아파트란 주거공간이 한국사회에서 어떤 문화적 사회적 영향을 가지는지 분석하였는데


요약하면 서구에선 저 소득층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한국에서는 고소득층이 거주하는 주거형태이고 아파트가 봉준호감독의 <설국열차>의 칸처럼 계급과 층이 나누어져 어느 아파트에 산다는 것이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것이다. 더 좋은 아파트로 옮겨가는 것이 신분상승의 일환이라는 내용인데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1988년 올림픽은 우리 국민들의 자존심을 맘껏 누리게 만들었고 실제 대한민국을 잘 모르던 외국사람들도 서울은 알게 되는 계기가 됐고, 우리나라 제품에 대한 인식도 높아져 수출에도 큰 기여를 했다.


이때 이후로 태어난 젊은 사람들은 전 세대가 겪은 고난과 배고픔 같은 건 먼 나라 얘기로 혹은 역사 속 얘기로 듣고 자라게 됐다. 보리 고개도 먼 조선시대 얘기가 아니다. 가수 진성이 노래를 설명하면서 자기가 직접 겪었던 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2002년 월드컵 때는 정말 지금 다시 생각해도 어마 어마 했다. 전 국토가 붉은색으로 도배가 되고 대~한민국 연호가 전국을 울렸다.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 밀레니엄세대인 MZ세대이다.


MZ세대는 실용적이고 스마트하며 이전세대와 달리 통일에 대해서도 적극적이지 않고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 같은 건 없고 오히려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런 MZ세대가 오늘날엔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가 되어 한국의 선거지형을 바꾸고 있다.


범세계적으로 보면 <인터넷>이라고 하는 신 문명이 생겨났다. 과학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문화가 접목되어 혁명적인 사회를 만들었다. 연이어 등장한 스마트폰은 단편적인 소통방식에서 이제는 빅데이터와 같은 AI로 구동되는 각종 애플리케이션과 정보, 통신, 교통, 의료, 홈테크까지 유비쿼터스 문명시대가 도래되었으며


<페스트> 같은 전염병으로는 비교도 되지 않는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가 로켓이 화성을 가는 세상에 생겨 전 세계가 몸살을 앓았다. 이제 곧 드론이 택배배송을 하고 자동차는 완전 자율주행차가 5G, 6G 통신과 함께 도로를 질주하고 비행택시도 곧 타게 될 것 같다. 소 달구지시대에서 비행택시시대까지 온 것이다.





똑같은 1년도 1960년대 1년과 2020년도 1년은 시간의 길이가 최소한 3배에서 그 이상 LTE급으로 차이가 난다.


선시대 500년간의 변화와 지금 100년의 변화를 어떻게 견주겠는가. 짧게 잡아도 나는 조선시대로 치면 300년 이상의 시간변화를 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진폭(주름)이 굉장히 커졌고 앞으로는 더 시간은 빨라져서 개인이 사는 세상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겠지만 우리 세대만큼의 진폭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의학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길어지고 시간은 빨라졌다.




나는 지금의 교육도 많이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교육이 사회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다. 나는 학문도 시대학이라고 하는 과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시대가 문화를 만들어 가는 세상이다.


시대학(Period ology)이란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나 사회, 정치, 경제체제가 인간과 융합되고 변화하는 현상을 분석하고 대응하는 학문이다.


조지오웰(George Orwell)이나 앨빈토플러(Alvin Toffler) 같은 석학들이 예측한 새로운 문명이 이미 도래하였으며 유발하라리(Yuval Noah Harari) 같은 역사학자는 <호모데우스>에서 또 다른 미래와 시대를 예측하고 있다.


블록체인 AI 기술이 30년 전 대중화 중앙화 대량화의 문명을 탈대중화 탈중앙화 탈대량화의 세상으로 바꾸고 있으며 자본주의 민주주의도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줄기차게 기존과 다른 정치적 형태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변화들을 읽어내고 예측하는 학문이 시대학문이다.



풍초해마루


작가의 이전글생각의 모양(模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