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시간 속에서 찾은 진짜 나
나는 언제 은퇴한 걸까?
전업주부에게 은퇴란 따로 정해진 기준이 없다. 하지만 나에겐 두 딸이 대학에 들어간 순간이 은퇴의 시작이었다. 아이들이 더 이상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이 생겼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찾아왔다.
자전거를 타다 사고를 당해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 의사 선생님의 한숨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연말이라 수술 일정이 없었고, 의료 파업까지 겹쳐 당장 치료받을 수도 없었다. 절망스러웠다. 다행히 담당 교수님이 제자 병원을 추천해 주었고, 결국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서 활동하던 내가 하루 종일 집 안에만 갇혀 있어야 했다. 마치 강제 감금된 느낌이었다. 10년 넘게 해 오던 수영과 자전거를 못 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물었다. 처음엔 억울했다. 하지만 결국 깨달았다. 이 사고는 나를 위한 멈춤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을 찾았다.
가족.
늘 곁에 있었지만,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주는 여유, 계절마다 가고 싶은 여행지, 깔끔하게 차려입고 쇼핑하는 작은 기쁨, 그리고 나를 지탱해 주는 신앙.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 하나둘 선명해졌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책을 멀리하던 내가 독서 모임을 시작했고, 글쓰기를 가장 싫어하던 내가 작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마음이 정리되었고, 작은 성취감이 쌓이면서 기쁨이 되었다.
이제 남은 반평생,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려 한다.
그동안 미뤄왔던 삶을 이제는 누리며 살고 싶다.
오늘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나는 다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