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 두 번째 이야기
4. 은희의 성장통, 따스한 손길
은희의 성장통은 귀밑에 만져지는 혹으로 드러난다. 지금까지 몰랐던 혹이 점점 커지며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성장기 청소년에게 발생하는 통증. 성장통은 말 그대로 아픔이고 그 상처는 깊다. 특히 은희의 혹은 작은 병원에서도 치료하지 못하고 큰 병원에 가야만 했고, 안면이 마비도 될 수 있는 큰 상처였다. 그런데 그녀는 그 통증을 치료할 때 치료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혼자였다. 엄마가 소개해준 병원에 혼자 가서 치료받고 치료 과정에서 엄마의 동의가 필요할 때도 전화로 해결한다. 큰 병원으로 옮기며 엄마, 아빠가 다녀가고, 은희를 좋아하는 동생도, 영지 선생님도 찾아오기는 했지만 수술을 받을 때, 퇴원할 때 혼자였던 은희, 결국 그 아픔을 오롯이 견뎌내야 하는 사람은 온전히 은희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성장통은 그 어느 아픔보다 크다. 누구나 겪는 아픔일지 모르나 각자가 경험하는 그 아픔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다. 그나마 서서히 아물어 가는 모습을 보며 성장통도 사라지겠지만 그 상처의 흔적은 남는 것이다. 은희 아빠의 말처럼 수희(은희의 언니)에게 있는 상처가 은희에게도 남아 있는 것이다. 수많은 벌새들이 오늘도 성장통으로 힘들어할 때 누구나 성장통은 겪는 것이라고 지나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픔의 순간을 오롯이 혼자 느껴야 한다면 그 또한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아픔을 공감하고 이겨 나갈 수 있는 따스한 존재들이 옆에 있어 주면 좋겠다. 은희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실에서 은희를 따스하게 대해 주었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병실에 함께 있었던 환자들과 가족들은 은희를 귀여워하고, 먹을 것도 나눠주고 퇴원할 때 빨리 나으라면서 걱정해 주고 위로한다. 어쩌면 그러기에 병원에 혼자 있으면서도 그나마 은희가 견딜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은희를 격려해 주던 따스한 손길처럼 아플 때 위로하는 누군가 있다면 그 아픔을 빨리 아물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디딤돌이 되지 않을까 싶다.
5. 알다가도 모를 가족- 갈등, 어긋남, 바라봄 – 우리는 식구
영화 시작 심부름을 다녀온 은희가 엄마에게 문을 열어 달라며 애타게 소리친다. 거의 울부짖는 소리가 되어갈 때쯤 보이는 902호, 은희는 다른 집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층 올라가 1002호에서 문을 두드리니 엄마가 나온다. 영화 속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 어디 있겠는가 싶지만 첫 장면이라면 그만큼 중요할 텐데 왜 이 장면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불안한 사춘기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가족들의 엇갈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거리에서 엄마를 찾아 은희가 애타게 부르짖지만 하늘을 바라보는지 아니면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는지 엄마는 은희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가족 간의 엇갈린 모습과 갈등은 특히 은희 아버지와 오빠에게서 더욱 두드려지게 드러난다. 중3인 아들이 대원외고, 서울대 들어갈 때까지 온 가족이 신경을 쓰라는 아버지, 학원에 가지 않는 딸, 강남에서 공부를 못해 강북으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부끄럽다며 혼내는 아버지, 은희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폭력을 행사하는 오빠, 그런 오빠가 자신을 때린다고 가족들에게 말하지만 서로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뿐, 결국 오빠의 폭력에 맞서 싸우라는 영지 선생님 말처럼 오빠에게 저항해 보지만 오빠의 폭력으로 고막이 찢어지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가족인데 어쩌면 이렇게 아픔을 줄 수 있을까? 가족이라면 더 감싸 안고 행복해야 하는데 우리 집은 콩가루 집안이라는 은희의 말처럼 콩가루 집안이다. 아니 은희의 집만이 아니라 은희 친구 지숙도 오빠에게 맞고 아빠와 엄마가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말처럼 지숙의 집도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진정 가족이 아닌 원수처럼 서로 간에 상처를 주는 존재들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가족은 그냥 서로 싸우는 존재만은 아니다. 서로 싸우다가도 같이 식사를 하는 식구이고 싸우다가도 다시 웃는 존재들이다. 알다가도 모를 가족, 그 가족들이 은희는 낯설기도 하지만 그 가족들의 보살핌을 조금씩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들만을 바라보며 사는 아버지이지만 은희가 귀밑의 상처로 인해 큰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안면이 마비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버지는 엉엉 소리 내어 운다. 문구점에서 물건을 훔치고 그 주인에게 은희를 경찰서에 보내도 된다는 말을 했던 그 아버지가 은희 앞에서 엉엉 울었을 때 은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울던 아버지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는 은희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비록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도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수희가 학원에 가지 않는 문제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싸우고 격해지며 급기야는 어머니가 던진 물건으로 아버지의 팔에서 피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며 은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다음 날 너무나 평안하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TV를 보며 웃고 웃는 모습을 은희는 낯설게 바라본다. 성수대교 사건이 있고 저녁 식사를 하는 중 무사히 돌아온 수희에 대해 안도하며 얘기를 할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하게 은희가 오빠가 꺼이꺼이 운다. 전혀 울 것 같지 않던 오빠의 울음은 낯설기도 했지만 수희를 걱정하는 안도감. 아니 모든 슬픔을 겪었을 누군가를 위한 울음처럼 느껴지며 은희에게 폭력적인 오빠만은 아닌 인상을 주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아빠도 폭력적인 오빠도 자신에게 무관심해 보이던 엄마도 그렇게 상처를 주는 존재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서인가 유독 식사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를 보다 보면 ‘가족은 결국 밥을 먹는 식구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존재이지만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를 바라봐 줄 수 있는 존재가 가족이 아닌가 싶다. 영화 속 은희가 부침개를 먹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은희는 젓가락이 아닌 손으로 먹는다. 부침개를 허겁지겁 먹는 은희 어쩌면 좋아하는 부침개를 먹듯 가족의 사랑을 갈구하는 은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두 번째 장면에서 부침개를 먹을 때 처음에는 젓가락으로 먹지만 결국 손으로 먹는다. 그리고 손으로 먹는 은희를 엄마가 지긋이 바라본다. 그렇게 영화 초반 어긋나 있던 엇갈림이 지금 엄마가 은희를 바라보는 그 얼굴 속에 아 이것이 가족이구나 싶다. 서로 바라보는 것. 어쩌면 갈등이란 서로 간의 엇갈린 시선, 소통의 다른 방식에서 오는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갈등은 가족들 사이에서 표출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갈등이 더 큰 갈등으로 머무르지 않도록 서로를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함께 밥을 먹으며 서로를 조금만 바라본다면 조금만 더 보살핀다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진정한 울타리가 되지 않을까?
6. 트램펄린과 손 편지
유독 영화 장면에서 눈에 띄는 장면이 트램펄린과 손 편지가 나오는 장면이다.
지숙과 은희가 트램펄린에서 뛰어오를 때, 갑갑한 세상을 벗어나 뛰어오르고 싶은 중학교 2학년 은희의 마음이 너무나 잘 느껴졌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학교와 가정과 학원에서 느껴지는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그러면서도 끓어오르는 무수한 감정들이 트램펄린 위에서 통통거리며 나도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성장기 아이의 복잡한 욕망이 트램펄린을 통해 선명하게 박히는 인상 깊은 장면이다.
손 편지는 그야말로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은희의 손편지와 영지의 손 편지. 또박또박 쓴 손 편지는 그만큼 정겹고 따스하면서도 강한 울림이 있다. 다른 소통의 방법이 많지만 특히나 손 편지는 더욱 마음을 나누는 도구가 아닐까 싶다 ‘선생님, 저도 언젠가는 제 삶의 빛이 날까요?'라는 은희의 편지글과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로 시작되는 영지의 마지막 편지는 그래서 더욱 가슴을 울린다. 손 편지를 통해 전해져 오는 한 문장 한 문장을 떠올리며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며 되새기게 된다.
14살 은희의 일상의 이야기. 영화는 큰 갈등의 큰 사건이 아닌 매일의 삶을 살았던 은희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어쩌면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하는 수많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에 영화는 은희의 모습을 통해 나를 너를 우리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부분에서 나는 은희이고 영지이며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다. 어느 순간 어떤 장면에서 마치 나의 모습처럼 많은 생각을 갖게 되고 나는 그 시절 어떠했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주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벌새. 꿀을 먹기 위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던 은희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조금은 더 성장한 은희, 어쩌면 지금도 빛을 보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벌새가 아닐까? 희망의 빛을 보기 위해 끊임없이 날갯짓을 하며 노래하는 벌새. 벌새들의 노래가 영원히 울리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