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있으면

영화 '황해' 이야기

by 김승희

벼랑 끝에 있으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그 행동의 근거는 무엇일까? 벼랑 끝에 놓였다는 상황이 물론 문제일 수 있지만 그것이 놓이기까지의 모든 상황들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벼랑 끝에 놓인다면 평소에는 할 수 없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라도 그 선택을 향해 질주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함정이나 더 많은 문제가 있음을 파악할 만큼의 마음의 여유도 지혜도 없다.

그렇다면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며 어떻게 해서든지 이뤄나가고 싶지만 그 어떤 것도 뜻대로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는 불가사의 한 아니 수많은 경우의 수가 놓여 있기에 이룰 수 없는 그 선택에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결국 그 벼랑은 벼랑일 뿐 벼랑 끝에 선 사람에게 희망이 있을까?

영화 황해를 보기 시작하면서 든 생각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보여 준 구남의 모습을 보며 든 생각이 벼랑 끝에 선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까였고 지금까지 본 어떤 영화보다 구남과 일심동체였던 하정우 배우는 정말 구남 그 자체로 가장 영화와 어울리는 최고의 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의 생각은 다르지 않게 흘러가며 쫓고 쫓기는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가 생각나는 추격자 2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쫓고 쫓기는 자의 모습이다.

인생은 어쩌면 추격의 연속이요. 그 어떤 추격의 차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한 벼랑 끝에 선 자가 쫓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영화를 좋아한다면서 그럼 영화를 보자. 일주일에 두 편 정도. 평일에 한 편 주말에 한 편, 두 편은 보자. 평일은 일도 해야 하고 그래서 평일에 5번 나눠 보고, 주말에 한번에 보자고 나름 계획을 세우고 평일에 고른 영화였는데 일단 후회했다. 몇 번에 걸쳐 보기에 30분 후에 끄자고 했는데 도저히 끌 수가 없었다. 단숨에 보고 말 정도로 속도감과 잔인함과 처절함까지 영화 보는 내내 구남의 다양한 먹거리는 그의 벼랑 끝 삶과 어울려 눈물겹다.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허기짐은 면할 수 없으며 그러기에 입에는 뭔가를 달고 있어야 하고 평안히 먹지 못하는 그의 먹거리는 심리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자의 허기짐과 욕구적 허기짐으로 인간의 슬픈 현실을 잘 담아내고 있지 않은가?

나홍진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그 처절한 인간의 몸부림은 무엇을 위함인가, 우리는 난파되어 가는 배 밑바닥에서 구토하며 죽어도 모르는 그런 인간. 밑바닥에서도 우리는 살아가는 존재. 그런 비열한 인생. 비열한 삶을 살지라도 뭔가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임을 말함인가?

인간은 단돈 50만 원에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잔인한 자이고, 자기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라면 누군가를 서슴없이 죽일 수 있는 비열한 자이며 그가 부유함에 있든 부유하지 않든 똑같이 죽고 죽이는 정말 인간은 별로임을 느끼면서도 한 줌의 흙을 가지고 서서히 죽어가는 구남의 모습이 결국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아닌가. 죽음에 이르서야 평안히 잠들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탄탄한 연기자들의 뛰어난 열연이 돋보이는 날 것 같은 장면들까지 그래도 황해 보기를 선택한 것은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이 든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삶의 그 어떤 것이든 어떤 문제를 생각해 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 인간은 모두 벼랑 끝에 서 있는 존재들이다. 다만 그 벼랑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렇게 살아가고 있거나 앞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벼랑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희망의 빛줄기를 부여잡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희미한 빛이 있는 한 희망은 있고 추격자에게도 도착점은 있다. 지금 우리는 끝을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