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 소년' 이야기
훈이는 과연 어떻게 될까?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머릿속으로 드는 생각이다. 일단은 훈이가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헌책방이라는 것이 아주 조금은 안심이 된다. 책이 있는 그곳에서 그는 책과 씨름할 것이며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지 않을까? 즉, 그곳에서의 책 읽기와 글쓰기가 그를 버티게 해 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의 결연한 표정이 그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이것을 만든 감독의 모습이 겹치기도 하면서(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인간은 누구나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견뎌내야만 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그래서 ‘네가 검은 소년이었다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묻는 것 같다.
가족이란 이름의, 부모란 이름의 잔인한 존재들
가족이란 무엇이고, 부모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영화 보는 내내 생각해 보게 된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폭력이 자행되는 그곳은 더 이상 안락한 곳이 아니라 지옥을 방불케 하는 곳이요. 그냥 지옥이다. 폭력이 자행되는 사랑이 사라져 버린 집 안은 그러기에 집 밖보다 더 냉혹하고 어두운 그래서 검은 소년이 살아가는 곳일 뿐이다. 그 어둠의 공간에서 훈이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중학생 때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고등학생이 된 훈이.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를 피해 나간 어머니. 어머니를 피신시키기 위해 애쓰는 훈이. 오직 전화로만 어머니와 연락하며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애절하게 호소하는 훈이.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훈이를 위해서 살아간다고 하지만 과연 그들은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던 훈이가 아버지의 얼굴에 한 번 폭력을 가했을 때 지금까지 훈이에게 본인이 했던 무수한 폭력은 기억하지도 못한 채 훈이를 두고 가버리는 아버지, 또다시 훈이를 두고 떠나버리는 어머니. 과연 그들은 훈이에게 진정한 보호자인가? 훈이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정작 훈이가 원하는 것을 전혀 해주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정말 훈이의 가족인가? 친구의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비록 충분한 양의 밥은 아니었지만 웃음이 있는 그 가족 속에 훈이는 미소를 짓는다. 훈이가 바라던 가족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웃음이 사라진 어두운 공간 속에 훈이는 검은 소년이다.
비상구 없는 소년- 검은 소년
가정에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훈이는 학교에서도 그를 괴롭히는 동급생 때문에 너무나 힘들다. 지속적으로 훈이를 조여 오는 폭력의 가해자 앞에서 훈이는 저항하지만 계속 따라붙는 어두운 폭력의 그림자 동급생은 훈이로 하여금 또 하나의 폭력의 가해자로 폭발하게 만든다.
그나마 문학 동아리라는 공간에서 잠시 삶의 해방구를 맞이하는 듯하지만 결국 그곳에서도 ‘너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유로 훈이는 동아리에 있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훈이에게 비상구는 없다.
비상구 없는 소년이 갈 곳은 옥상뿐. 그곳에서 울던 훈이는 어둠 속에서 더욱 보이지 않는 검은 소년이다. 훈이를 암흑으로 이끌고자 하는 폭력의 가해자가 비록 그를 더욱 어둠 속에 데려가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향할 곳이 없는 소년은 어둠 속에 갇혀 존재하지 않는 검은 소년일 수밖에 없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아무도 훈이가 원하는 것을 묻지 않는 존재를 상실한 훈이는 진정 검은 소년이다.
유일한 탈출구 – 독서와 글쓰기
검은 소년에게 그래도 유일한 탈출구가 있다면 그것은 글쓰기. 아직 독서에 맛을 들인 것 같지는 않지만 그에게 책은, 글쓰기는 그 소년이 살아가는 유일한 탈출구가 아닐까. 험한 세상 속에도 우리에게 희미한 빛은 존재한다. 그 희미한 빛이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각자 다르지만. 그 희미한 빛이 독서와 글쓰기라는 것은 그나마 검은 소년에게는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독서. 삶을 치유해 주는 글쓰기는 그가 표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이자 아픔과 상처를 다독여 주는 좋은 치료제라고 생각한다.
비단 지금의 글쓰기가 소년에게는 돈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혼자 쓸쓸히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임을 익힐 수 있고, 세상에 대한 울분과 세상에 대한 고독을 쏟아낼 수 있는, 사랑하지만 자신을 외롭게 하는 부모들에 대한 대화의 장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기에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갈 검은 소년을 응원한다.
어떤 색깔도 지금은 입지 않았고 비상구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의 삶 속에 빛으로 채색될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배우들과 무채색의 옷, 영화는......
주인공, 아버지, 어머니를 맡은 배우들의 열연. 특히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는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도 강인한 역을 잘 소화해 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소년이 입었던 낡은 옷들과 피 묻은 옷은 그 소년의 현재 상황을 잘 보여주는 듯하고 노란 병아리와 같은 밝은 색의 옷은 잠시 입을 뿐 금세 무채색의 옷으로 갈아입게 되는 상황은 검은 소년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는 이야기의 연결고리들이 아주 촘촘하지 않고 폭력적인 장면도 세밀한 장면도 없어서 조금은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친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한 소년의 외롭고 고독한 싸움과 그런 싸움을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검은 소년들을 보여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후일을 생각하게 하는 열린 결말은 감독이 의도하는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이 땅의 수많은 검은 소년들처럼 살아가는 검은 소년들을 향해 ‘너 어떻게 살 거니’라고 물어보는 영화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지금 ‘검은 소년’일까. 아니면 ‘검은 소년’의 단계를 넘었을까. 아니면 ‘검은 소년’을 만들어내는 존재인가를 자문해 본다.
인간의 삶은 고해이고 모두가 검은 소년과 같은 삶은 아닐지라도 각자 험한 세상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그 고통의 정도와 방법은 다르지만. 그러기에 그 고통스러운 삶 속에 무엇인가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이런 고난의 상황에 주변의 따스한 존재가 있을 법도 한데 이 영화는 불친절하게 따스한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 소년에게 그나마 친구가 되어주는 책과 글쓰기는 또 하나의 삶의 구원자이자 빛이 아닐까 싶다. 각자에게는 구원의 도구가 있다. 그 구원의 도구를 찾는다면 그나마 다행이지 않을까? 외롭고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검은 소년 훈이가 다양한 색채를 입은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