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무도 모른다'
이렇게도 잔인할 수가! 영화를 보고 떠올린 단어는 잔인함이다. 그리고 어떻게 감독은 이렇게도 담담히 이 얘기를 전할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고 대단하다. 그 어떤 깜짝 놀랄만한 피도 번잡함도 없지만 2시간 20분의 긴 러닝타임은 인간의 잔인함을 여실 없이 보여주며 왜 제목이 ‘아무도 모른다’인지를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계속되고 있음을 또한 보여준다. 인생은 잔인하지만 계속된다.
아무도 모르는 4인 가족
배다른 4명의 아이들 아키라, 교코, 시게루, 유키 그리고 엄마. 다정하게 보이는 엄마가 어찌 이리 비정할 수 있는지.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아키라에게 학교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하는 엄마. 새로 이사 와서 살게 된 집주인에게 아이는 아키라 한 명뿐이라고 속이며 세 명의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조용히 살게 하는 엄마, 12살 아키라만 믿는다며 크리스마에 돌아온다는 메모와 약간의 돈을 남기고 동생들을 부탁하고 떠나버리는 엄마. 엄마는 이 아이들을 버리고 잘 살 수 있을까? 이 아이들을 나 몰라라 하며 자신도 돈이 없다고 하는 아이들의 아버지는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까?
집세가 밀리고, 수도가 끊기고, 전기 공급이 끊어져도 관련되는 사람들은 한 번 나오고 말뿐 더 이상 왜 그런지 그 이후 나오지 않는다. 마음 착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이 아이들의 먹거리를 챙겨주고 도와줘도 아이들이 어찌 되는지 가보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때까지 오겠다는 엄마는 어느 누구와 살아가며 오지 않는다. 집 안은 온통 쓰레기장이 되어 가고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운 냄새가 나는 그 공간 속에 아이들은 살아가고, 잔인한 어른들은 이 아이들의 존재를 모른 채 그렇게 살아간다. 아무도 이 아이들을 알려하지 않고 관심 두지 않기에 이 아이들을 아무도 모른다. 원래 인간은 잔인하고 누구 하나 돌보는데도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잔인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 아이들의 잔인한 세상을 이 영화는 어린 막내 유키의 죽음을 통해 더욱 극적으로 보여준다. 의자에서 뭔가를 하다 떨어진 유키, 온전히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그의 영혼은 잠들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은 여행 가방(이 집으로 올 때도 여행 가방에 담겨온 유키) 속에 유키를 넣고 유키가 그렇게 좋아하던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보여 주자며 비행장 근처에 가서 유키를 조용히 묻는다.
전철 안에서
하얀 옷과 얼굴에 잔뜩 흙을 묻힌 채 동생을 묻고 돌아오는 아키라와 사키(사키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며 학교를 가지 않으려 하는 그래서 놀이터에 있다가 이 아이들과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던 아키라 또래의 여학생). 전철 안에서 말없이 아키라와 사키가 앉아 있는 그 뒤로 비치는 석양과 그때 잔잔하게 들려오는 노래는 영화 속 가장 슬픈 장면 중 하나이다. 영화 보는 나는 너무나 가슴 아파서 눈물이 나는데 정작 영화 속의 아이들은 엉엉 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유키의 죽음에 매몰되지 않고 다시 살기 위해 유통기한이 다 되어 가는 음식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으로부터 얻고, 공원에서 물을 긷고, 그렇게 다시 살기 위해 집으로 향한다.
유키의 죽음은 그냥 살아가는 삶의 하나이고 어쩌면 시게루, 교코 누군가도 소리 없이 죽어갈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누구에게 얘기하는 순간 그들의 삶은 흩어지고 그것을 그들은 진정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이란
그래서 더욱 슬프고 아프고 괴롭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흘러가는 것이 인생임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세상 속에 갇혀 있지 않아도 우리는 그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유키의 죽음은 그래서 하이라이트라기보다는 이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그냥 받아들여지는 당연한 것 중의 하나이다. 너무나 잔잔하게 슬퍼할 사이도 없이 흘러가는 영화는 그래서 더욱 잔인하고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그냥 생각해 보게 된다. 아키라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은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다가 죽어버리는 것인가. 사회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고 가족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물음을 던져보게 된다.
영화는... 감독은...
많은 물음을 생각하고 스스로 자문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영화는 의미가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싶다. 영화는, 감독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시스템의 부재? 무관심한 사회? 무책임한 부모와 버림받은 아이들?
특히 이 영화는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 일본 도쿄에서 일어난 실제로 있었던 ‘스가모 아동 방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1988년 알려진 이 사건은 정말 충격 그 자체여서 이 사건을 잘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실을 아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격이지만 그 사건을 온전히 그대로 재현한 영화는 아니기에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의 깊은 울림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다른 영화(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태풍이 지나가고, 브로커 등)를 보며 항상 느끼는 것은 그의 가족애는 남다르고 인간을 향한 연민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가 보여준 그간의 영화들을 보면 그가 다루는 가족 구성원은 피로 맺어진 가족도 있지만 피로 맺어진 것보다 더 진한 가족을 보여주며 다양한 형태의 끈끈한 가족애를 보여준다. 가족이란 피로 맺어진 것이 아니라 함께 먹는 식구임을 그래서 함께 할 때 그들은 그 자체로 즐거움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또한 어떤 인간도 이 땅에 태어난 이상 사랑받을 존재가 있음을 그는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애. 인간을 향한 그의 연민 어린 시선이 그가 만든 영화 속에 담겨 있으며 이 영화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모두가 영화 속 비참한 아이들이 왜 그렇게 살아가지? 어른들에게 왜 알리지 않지? 도움을 구하지 않지. 그럴 수도 있지만 이 아이들의 원하는 것은 끈끈한 가족애.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것보다 이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그렇게 살아가며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해 간다는 것이고 그 모습을 감독은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크리스마스에 돌아오겠다는 어머니의 약속의 시간이 지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올 때까지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은 공원의 우물을 먹어가며 버티고 버티며 그렇게 살아갔다. 물론 이 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될지는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커 나갈 것이고 인생은 계속될 것이다. 또한 ‘아무도 모른다’는 제목을 통해 세상을 향한 감독의 강한 외침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모르는 비정한 사회. 아이가 태어났지만 출생 등록도 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부모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살아가는 아이들, 가정이 무너지고 시스템이 붕괴된 이 사회 속에 어른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생은 계단
영화를 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한 말이 있다. ‘주변을 돌아보는 눈을 갖자.’ 아키라 같은 아이들이 많을 텐데 그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가져보자는 것이다. 삶이 풍요롭지 못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면 나 아닌 누군가에게도 시선을 돌리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나눠주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영화 내내 나오는 공간 속에 아이들이 늘 오르고 내린 계단이 인상 깊다. 계단은 아이들의 놀이터도 되지만 또한 인생은 그렇게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과도 같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인생 가운데 가위바위보 게임도 하고 즐겁게 웃기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래도 삶은 조금 더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