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살핌의 정석’ 첫 번째 이야기
이미 제목에서부터 보살핌이라는 주제를 말하고 있는 영화. 누군가를 보살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부모가 자식을, 의사가 환자를, 교사가 학생을, 언니가 동생을 누구도 이 단어에서 예외적인 사람이 없기에 누구라도 관심이 가는 단어지만 수학의 정석, 연애의 정석처럼 ‘보살핌의 정석(?)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 정석이 있기는 한 걸까?
또한 보살핌이라는 말속에 너무나 뻔한 스토리일 것이고, 슬픔이 있을 것이고 등등 보지 않아야 할 이유도 많지만 그래서 매력적인 영화 제목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누군가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기에 그 ‘정석’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1.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영화, 보살핌이란?
영화 시작부터 간병인 교육을 받는 주인공(벤)의 교육 내용 속에 어떻게 간병인을 보살펴야 하는지 나오는데, 사실 이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닐까?
- 알로하: 묻고 듣고 관찰하고 돕고 다시 묻는다.
- 선을 넘지 않되 면밀히 살피라.
- 다른 사람을 돌보기 전에 나 자신을 돌본다.
간병인 교육 속에 이미 주제가 나와서 너무 뻔하지만 그리 뻔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작가이지만 지금은 글쓰기를 그만두고 간병인 교육을 받고 간병인 자격증을 갖게 된 벤. 간병인으로 가장 첫 번째 맞게 되는 그의 환자는 뒤쉔 근디스트로피(근육퇴행위축)라는 유전적 질병을 안고 휠체어를 타고 있는 까칠한 10대 소년 트레버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소년은 입도 거칠고 성적 농담도 거침없이 하고 짓궂게 행동한다. 그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짓궂게 누군가를 대하고 그런 태도 때문에 많은 간병인들도 그를 쉽게 간호하지 못했을 것이다.
간병인 교육을 받고 첫 환자를 보기 위해 트레버 집을 찾은 벤. 은행 지점장으로 있는 엄마로부터 질문을 받고 초조하지만 벤은 조금은 간절하게 답변한다. 그런 벤에게 트레버는 짓궂게 묻는다. “내가 응가를 하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어쩌면 무례한 질문 같지만 당연한 질문을 한다. 그의 대답은 “내가 볼일을 마친 뒤에 닦는 것처럼 묻어 나오는 게 없을 때까지 닦는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나와 너와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그 답변이 트레버는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렇게 그는 트레버의 간병인이 된다.
실은 벤은 지금 간병인으로서 누군가를 돌보기에는 큰 아픔을 겪고 있다. 아내와 별거 중이고 2년 6개월 동안 아내의 이혼서류장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피하고 있다. 또한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상처를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직업을 갖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렇게 선택한 것이 간병인이다. 왜 간병인인지는 모르지만 아들을 잃은 아픔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간병인이 된 벤이 처음에는 서툴고 트레버의 독설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만 그럭저럭 익숙하게 간병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던 중 벤이 “네가 만약 온몸이 정상인이라면 가장 무엇을 하고 싶냐고” 트레버에게 질문한다. 그때 트레버는 “서서 오줌을 싸고 싶다”는 예상치 못한 소원을 얘기한다. 그 소원을 흘려듣지 않은 벤은 이후 소원을 이뤄주기 위한 시도를 한다.
과하지도 소홀하지도 않은 간병인의 생활을 하는 동안 벤은 트레버가 지도에 표시를 하며 그렇게 보고 싶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구덩이를 보러 가자고 권한다. 매일 집에 있으며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산책을 나가는 트레버에게 아마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그 말 이후에 트레버에게 온 편지(트레버를 3살 때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편지로 트레버는 그 편지를 읽지 않는다)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트레버와 벤은 크게 갈등을 겪지만 벤과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는 트레버의 말을 듣고 평소에 트레버가 즐겨 보던 관광 명소(세계에서 가장 깊은 구덩이, 제일 큰 소)를 보러 가기 위해 일주일의 여행을 떠난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 초반에 트레버는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표정이 궁금하다며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한다. 결국 아버지가 있는 솔트레이크시티로 그렇게 떠나게 된다.
여행 도중에 도망치듯 떠나는 한 가출 소녀(도트)와 차 고장으로 인해 임산부(피치스)를 만나 동행을 하게 된다. 짧은 시간이지만 트레버는 도트에게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게 되며 데이트도 하게 된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아버지를 찾아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트레버는 지금까지 아버지에게 받았다고 생각했던 편지가 실은 어머니가 썼다는 것을 알게 되며 크게 실망하게 된다. 그런 그를 다독이며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깊은 구덩이는 봐야 하지 않겠나며 그들은 그곳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임산부는 아이를 낳게 된다. 이때 벤이 돕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아마도 자신의 실수로 인해 아들을 잃게 된 자책감을 이 일을 통해 조금은 위안을 받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곳에서 트레버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구덩이 앞에서 트레버를 환자용 들 것에 매달아 놓고 서게 한 후 오줌을 서서 싸게 한다. 그때 그들의 표정과 뒷모습은 여운을 준다. 여행 이후 벤은 그 일을 그만두고 그 아이와 있었던 일들을 글로 쓰면서 본업의 모습으로 돌아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어쩌면 너무 뻔할 것 같은 이야기지만 대사와 유쾌한 모습과 순간순간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인해 그리 지루하지 않은 영화다. 그리고 부모와 자식, 남자와 여자, 간병인과 환자, 임산부와 아기, 다양한 아버지의 모습 등 우리들의 여러 관계를 돌아보게 되고 또한 벤을 통해서 보살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많은 간병인들이 간병인 교육을 받고 잘 수행했겠지만 트레버는 왜 그리 많은 간병인을 바꿨을까?
그렇다면 벤의 무엇이 특별한 것인가? 그것이 보살핌에 있어서 우리가 한번은 생각해 봐야 하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벤은 간병인 역할을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다. 충실하게 할 뿐이다. 하물며 아이의 말을 무심코 듣는 듯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특별함은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이의 못된 말들에도 여념 하지 않으면서도 그 아이와 함께 극히 어떤 일을 계획하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며 기쁨으로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시도하는 것. 정말 약속한 일을 이루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히는 그 모습이 벤에게 있는 특별함이 아닐까 싶다. 트레버와 가장 큰 소를 보러 갔을 때(진짜 소가 아니라 박제된 소) 그 소가 2층에 있어서 휠체어를 타고 있기에 볼 수 없었던 상황에서도 벤은 그냥 순순히 물러서지 않고 주변 도움의 손길을 통해 2층까지 트레버를 데리고 간 후 소를 보여준다. 그리고 여행의 순간순간 쉽지는 않지만 그 모든 시간을 아이에 함께 하며 아이를 돌본다. 부족해도 긍휼의 마음으로 옆에서 귀를 기울이고 도와주는 것, 진심으로 그의 말에 대꾸하며 그의 말에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기울이는 것. 힘들고 짜증 나는 말일지라도 그대로 반응해 주는 것 그것이 그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자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보살핌이 아닌가 싶다. 트레버를 무조건 배려의 대상으로 아프다고 약하거나 보호해 주지 않고 그냥 사람을 대하듯 하며 보살피는 것 또한 굉장히 인상적이다. 그가 육체적 장애가 있든 어떤 장애가 있든 그것으로 인해 편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동등하게 그를 대하며 그의 필요를 채우는 모습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기에 모든 인간은 연약하고 연약한 인간이기에 보살핌이 필요하고 보살핌에 대한 벤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렇게 누군가를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