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감 한 줄에 다시 이어진 우리 마음

정자 아래에서 천천히 풀린 마음

by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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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는 집 정자에 앉아 곶감을 깎았다. 올해는 아홉 그루 감나무에서 유난히 큰 감이 풍성하게 열려 마당이 가을 햇살로 더욱 따뜻했다. 가족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동생은 감을 깎고, 올케는 손질하고, 조카들은 깔깔대며 줄에 감을 매달았다.

칼이 감을 스치는 소리, 줄에 걸린 감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정자 아래 잔잔하게 울렸다. 그 소리는 우리가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말은 적었지만, 손길은 바빴고, 그 움직임 속에서 우리는 조용하게 마음을 나누었다.

사실 최근 몇 달 동안 동생과 나는 집 문제로 마음이 멀어져 있었다. 말도 거칠어졌고, 명절에 마주쳐도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러나 곶감을 만드는 일은 혼자로는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감을 따고, 깎고, 매달고, 처마에 걸기까지 여러 손길이 있어야 완성된다. 결국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칼을 들었다.

처음엔 어색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감만 바라봤다. 그런데 손이 먼저 움직였다. 내가 깎은 감을 건네자 동생이 조용히 말했다.

“이건 좀 단단하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럼 더 익은 걸 가져올게.”

그 짧은 대화가 굳어 있던 마음을 조금씩 풀어냈다.

감을 깎다 보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마당에서 감을 깎던 할머니 곁에서 동생과 나는 감 껍질을 주워 먹었다. 누가 더 길게 껍질을 깎나 내기하던 그 따뜻한 오후들. 말이 없어도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해가 기울 무렵, 조카들이 감을 달며 외쳤다.

"고모! 이렇게 많이 달면 겨울엔 진짜 맛있겠다!"

그 소리에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고, 아주 짧지만 분명하게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깨달았다. 마음이 멀어졌던 이유도 있었지만, 지금 눈앞의 이 따뜻한 장면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조카들의 웃음, 올케가 건네는 차 한 잔,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주황빛 감들. 이것들이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이었다.

감이 달릴수록 우리의 마음도 조심스럽게 제자리를 찾아갔다.

동생이 먼저 말했다.

“누나, 그때 내가 좀 심했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도 너무 몰아붙였어.”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라 조카의 결혼이야기,가벼운 일상 이야기들. 그 소소한 대화 속에서 우리는 다시 가족이 되어갔다.

해가 완전히 지고 정자에 불을 켜니 처마에는 400개의 곶감이 매달려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감들이 우리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 듯했다.

가족 간의 상처는 말 한마디로 쉽게 풀리지 않는다. “미안해”나 “사랑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함께 손을 움직이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멀어진 마음이 서서히 이어진다. 같은 감을 깎고, 같은 줄에 매달고, 같은 바람을 맞는 동안 우리는 다시 연결되고 있었다.

정자에 매달린 곶감처럼 우리의 정(情)도 서서히 익어갔다. 겨울이 오면 감들은 서리를 맞고 더 달콤해질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더 깊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치유는 거창한 데에 있지 않았다. 함께 깎은 곶감 한 줄, 정자에서 나눈 짧은 대화, 스치듯 이어진 손길. 그 안에서 잃어버린 마음이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오늘의 글은 여기서 멈추지만, 정자를 스치던 바람과 감을 깎으며 나누었던 침묵의 대화는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겨울이 오면 우리는 다시 그 감을 나누며 이 가을을 함께 기억할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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