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딸보가 떠난 자리, 다시 찾아온 인연

by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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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중순, 10년을 함께한 강아지 딸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빈집 앞에서 “딸보야!” 하고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딸보가 쓰던 작은 집은 그대로였지만, 그 집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속 빈자리는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제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말자.

여행을 갈 때마다 혼자 두고 가야 했던 미안함, 아플 때마다 마음을 쏟아야 했던 책임감은 때론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이제는 나만의 시간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집 앞 언덕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조심스레 오르내렸다. 처음엔 스쳐 지나가는 길고양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매일 같은 자리에서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딸보의 빈집 근처에서 새끼 두 마리가 어미를 따라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세 마리는 모두 말라 있었고, 어미의 털은 거칠게 뒤엉켜 있었다. 눈빛에는 지친 기운이 가득했다. 밥을 내어놓았지만 어미는 그림자만 스쳐도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차갑게 식어갔다.


며칠 뒤, 두 새끼가 마당까지 내려왔다. 어미와 한 마리는 순식간에 숨어버렸지만 한 마리는 움직이지 못했다. 가까이 가보니 작은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상처 틈 사이로 파리와 벌레가 들끓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손을 뻗자 작은 몸은 본능적으로 도망쳤다. 그날은 놓쳤지만 다음 날 보니 상처가 더 심해져 있었다. 그냥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날, 아들이 세 살배기 손자를 데리고 집에 왔다. 손자가 고양이를 보며 물었다.

“할머니, 고양이 아야 한 거야?”

“응, 많이 아야 해.”

그 말이 마음을 크게 흔들었다. 아이 앞에서 아픈 생명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과 함께 망을 쳤고, 그 안에 음식과 물을 두고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뒤 세 마리 모두 그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가장 아픈 고양이를 잡아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었다. 손자는 작은 손으로 도와주는 흉내를 내며 옆에서 지켜보았다. 너무 어렸지만 그의 진지함은 마음을 울렸다.

며칠 동안 망 안에서 치료를 이어갔다. 상처는 조금씩 아물었고, 고양이는 기운을 되찾았다. 먹는 양도 늘고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어미도 경계를 풀더니 밥시간이 되면 먼저 와서 “야옹” 하고 기다렸다.

처음엔 모른 척하려 했다. 괜히 마음을 주면 책임이 생길까 두려웠다. 하지만 이미 마음은 그들을 향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아파하던 작은 생명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름을 지어주었다.

어미 고양이: 딸보

수놈 새끼: 돌방구리

암놈 새끼: 방글이

이름을 붙이고 나니 마음의 방향이 분명해졌다. 딸보는 내가 있으면 밥을 먹지 않지만, 문을 닫고 들어가 있으면 금세 비운 밥그릇을 보면 묘하게 미소가 지어진다.

평상 위에서 세 마리가 몸을 기대고 잠든 모습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딸보가 떠난 자리 옆으로 작은 온기가 다시 피어났다.


1년이 지나자 방글이의 배가 불러왔다. 잘 먹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곧 새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걸 알았다. 며칠 뒤 방글이는 새끼 네 마리를 낳았고, 정자 근처 아늑한 곳으로 데려왔다.

방글이는 좋은 엄마였다. 새끼들을 감싸고 챙기며 거의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하지만 반복되는 출산은 방글이에게 위험했다. 그래서 중성화를 결정했다.

수술 뒤 방글이는 며칠 동안 예민하고 불안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새끼들은 좋은 사람들에게 분양되었다.

날씨가 추워지자 또 걱정이 생겼다. ‘딸보 가족이 이 겨울을 어떻게 버틸까?’

딸보가 쓰던 개집을 내줬지만 고양이들은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창고 앞에 매트를 깔고 바람막이를 설치했다. 처음엔 머뭇거리더니, 밥그릇을 안에 두자 새끼가 먼저 뛰어들어갔다. 아장아장 달려가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어미도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뒤따랐다. 새벽에 밥을 주러 갔을 때, 소리만 듣고도 동시에 매트 위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아, 이제 잘 버티겠다.”

그 순간 마음이 놓였다.


강아지 딸보가 떠난 빈자리는 아직도 크다. 하지만 고양이 가족을 돌보며 다시 배웠다.

책임이 무겁다고 해서 생명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인연은 우리가 찾지 않아도 어느 날 조용히 다가온다.

딸보와 돌방구리는 이제 우리 집 마당의 일부가 됐다. 아침이면 햇살 아래에서 쉬고, 저녁이면 밥 달라고 울어준다. 아직 경계하는 눈빛은 남아 있지만, 그 거리는 조금씩 좁혀지고 있다.

평상 위에서 나란히 누워 잠든 고양이들을 보면 생각한다.

이것도 참 괜찮다.

빈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그 사이로 새로운 온기가 스며들고 있다. 작은 생명들이 이 집에 다시 따뜻함을 데려왔다. 나에게도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힘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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