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것.
어느 날, 퇴근하고 동료 교사들과 회식을 한 후 집에 가는 길에, 전화가 울렸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왜 전화 늦게 받아요? 네? 또 비싼 척, 바쁜 척하지 마시고요. 네? 선생님 아직도 여자친구 없으시죠? 그럴 줄 알았어요. 소개팅 한번 해보실래요? 선생님 생각하는 건 역시 저 밖에 없죠? 그렇죠? 제 친척언니인데 그 언니도 아직 솔로고, 운동하는 거 좋아하고, 경기도에 있는 공기업 다녀요. 그리고...'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스무 살이 되어 서울로 올라간 뒤로는 자주 못 보지만, 초등학교 때 스승과 제자로 만났고,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서도 매년 스승의 날과 저의 생일에 항상 찾아오는 제자였습니다.
혼자 지내는 제가 걱정되는지 항상 안부를 묻고, 고등학교 때는 자기를 가르쳤던 고등학교 선생님도 소개팅해줄 정도로, 저와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내고 서로의 성격도 잘 알고 있는 저의 제자입니다.
저의 첫 발령지의 첫 제자이자, 지금은 최현석셰프의 제자가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한창 재미있는 청춘을 보내고 있을 친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 전 공부에 소질이 없나 봐요.' '선생님, 전 공부랑 안 맞나 봐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그 친구가 저를 보며 한말입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학교 생활하는 걸 오래 지켜봐 왔지만, 공부에 흥미가 없어 보이진 않았고, 그렇다고 성실하지 않는 친구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숙제를 매번 다 해오진 않았지만 자기 입으로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할 정돈 아니었으니까요.
담임이 된 입장으로 그런 말을 들으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조그마한 꼬맹이가 벌써부터 이미 인생 2회차 산 사람처럼 말하니. 어이가 없었기도 했습니다.
부모님 생각은 어떤지 상담해봐도, 자기 딸이 공부를 성실하게 해서 대학에 진학하길 희망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지금 생각해보면 중, 고등학교에 올라가기도 전에 그런 소리를 했던 건 어쩌면 자기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주관이 있어서였던 것 같았습니다.
여러 친구와 같이 잘 어울려 다녔기에, 자기 자신의 성격이나 공부머리에 대한 객관적인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또래에 비해 사회성이 매우 발달된 제자였습니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는 친구와, 운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 그리고 그 반대인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렸으니까요. 다양한 친구, 인맥의 스펙트럼이 넓었고, 그런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며 자기만의 정체성을 찾았고 자신만의 색깔을 칠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고등학교때는 부모님 도움 없이 학교 회장에 뽑혔으니, 사회성이나 사교성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했겠죠. 주변 선생님들한테도 이쁨을 많이 받고 생활을 했을듯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목표가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자기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고 말한 그 친구는, 자기의 색깔과 맞는 진로를 계속 탐색해 나갔고 , 중학교 졸업하면서 요리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진학 시, 요리와 관련된 조리학과로 갔고, 전국 요리대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대상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최현석셰프의 눈에 들었는지, 인연이 되어 그 사람 밑에 들어가 일을 배우게 된 겁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꼬맹이 초등학교 4학년일 때부터 봐왔던 제자, 항상 철없고 장난만 칠 줄 알았던 제자가 ,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어엿한 사회 구성원이 된 게 자랑스럽고 놀라웠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셰프 중에 한 명이 아무나 데리고 같이 일을 하진 않을 테니까요.
2024년 겨울, 스무 살의 사회 초년생이 되어, 초등학교 4학년일 때 같은 반 친구들(다들 성인이 되니 술을 좋아했습니다)과 제가 같이 소주와 닭볶음탕을 먹으며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느꼈습니다. 잘 컸다. 그리고 잘 자랐다. 또 앞으로도 크게 더 잘될 것 같다. 고등학교 재학 때, 대학교 진학을 두고 고민상담을 했던 제자였습니다. 고민끝에 결국 대학을 포기하고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동생한테 용돈 주고, 부모님한테 더 이상 신세 지기 싫다며 주말마다 알바를 했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가 지금은 대학원을 들어갈 거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어느 순간 ,그 친구에게 없던 소질이 스무살이 되어 생긴 것 같습니다.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말한 친구는 공부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주변사람들 중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행운아들은 별로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수행해 나가며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본인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에 흥미가 없는지, 그리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행운아가 되는 것 같습니다.
교육은 이런 게 아닐까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고양시키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게 없다면 왜 안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게 없는 건지, 하고 싶은 걸 찾는 것조차 안 하는 건지, 아이들한테 끊임없이 그런 생각과 기회를 열어줘야 하는 게 교육이 아닐까 합니다. 너무 시험성적이나 평가, 주변 시선에 급급해하지 않고요.
사람도 변하고 세상도 변하니, 항상 스스로 고민하고 탐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게 교육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