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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민 Jun 29. 2021

인권변호사의 개인회생 이야기 4.

배우자 재산의 청산가치 반영. 그건 남편 재산인데...



서울회생법원 실무준칙 제406호 제2조 (배우자 명의 재산의 취급) 제①항 채무자의 배우자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예 : 부동산, 자동차, 임차보증금반환채권 등)은 (법 제614조 제1항 제4호 본문 및 같은 조 제2항 제1호의) “채무자가 파산하는 때에 배당받을 총액”을 산정할 때 고려하여서는 아니 된다.



서울회생법원 실무준칙에 따르면 채무자가 파산하는 때에 배당받을 총액(청산가치)에 배우자의 재산이 포함되면 안 된다. 우리나라 민법은 부부별산제를 기본으로 한다. 혼인 중인 부부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자신의 것이라는 뜻이다. 부부가 서로 열심히 일해서 집을 샀다면, 이 집을 부부 공동재산으로 하고 싶다면 명의를 부부공동명의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부 어느 한쪽 명의로 한다면 그 집은 명의자의 재산이 된다. 서울회생법원 실무준칙은 이와 같은 부부별산제를 확인해 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민법 제830조(특유재산과 귀속불명재산) ①부부의 일방이 혼인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중 자기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재산으로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개인회생 사건에 법원은 관례적으로 배우자 재산 중 50%를 채무자 재산에 포함시키고는 했다. “남편(혹은 부인) 명의라고 해도 부부면 반반 가지는 것 아냐?”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개인회생 사건을 진행할 때 이 부분은 매우 민감하다.


개인회생 신청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얼마(월 변제액)를 얼마 동안(변제 기간) 갚아야 하는가”와 “얼마나 면책받을 수 있는가”다. 즉, 월 변제액, 변제 기간, 면책액이 최대 관심사인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신청인의 재산보다는 많이 갚아야 한다는 ‘청산가치보장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므로 총변제액은 청산가치, 즉 채무자의 재산보다 커야 한다. 그래서 실무상 대부분 총변제액은 청산가치와 같거나 약간 상회하는 수준으로 정해진다. 그리고 총채무에서 총변제액을 차감한 금액이 면책받을 수 있는 채무다. 따라서 “얼마”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재산”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재산이 많을수록 변제액도 많아진다. 반대로 재산이 적을수록 변제액은 적어진다. 그리고 변제액이 줄어들수록 면책받을 수 있는 채무는 커진다. 정리하면 “재산은 변제액과 비례하고 면책액과 반비례한다.” 


                                                 재산 ∝ 변제액

                                                재산 ∝ 1/면책액


개인회생 상담자 중 많은 이들은 최대한 재산을 줄여 적게 갚고 많이 면책받게 해달라고는 한다. 하지만 개인회생은 필연적으로 채권자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회생하는 것은 채권자에게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만큼 법원도 혹여나 채무자가 재산을 숨기지는 않았는지 철저히 확인한다. 재산을 숨길 방법도 없고 설사 부정하게 재산을 숨길 방법이 있다고 해도 변호사 윤리상 그러한 상담은 하지도 않는다.


다만 부정하게 재산을 줄이는 것은 옳지 않지만 정당하게 재산을 줄이는 방법은 변호사로서 적극적으로 찾아 적용해야 한다. 정당하게 재산을 줄이는 대표적인 방법이 배우자의 재산이다. 회생을 신청할 때 배우자에게 부동산이 있다면 법원은 부동산 가액의 50%를 채무자의 재산으로 산입하도록 하고는 한다. 명의와 상관없이 부부공동재산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배우자 재산에 대한 법원의 태도 때문에 변제액이 지나치게 높아지거나 심지어 개인회생이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최근 서울회생법원이 배우자 명의 재산이 청산가치에 반영되지 않도록 실무준칙을 개정하면서 배우자 재산의 50%를 채무자 재산에 반영해온 법원의 오랜 관행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다만 서울회생법원 실무준칙은 서울회생법원 내에서만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다른 법원에서도 배우자 재산을 청산가치에 반영하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국내 유일·최대의 회생전문법원인 서울회생법원의 실무준칙 개정은 다른 법원에 강한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영미씨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피아노를 연주할 때 가장 행복했지만 결혼하면서 더는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았다. 자신의 전부라 생각했을 만큼 소중했던 피아노를 그만두면서까지 했던 결혼이지만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결혼 15년 차가 되었을 때 남편과 재산을 반반으로 나누고 헤어지기로 했다. 하지만 중학생 아들의 정서를 생각해 호적은 정리하지 않았다. 영미씨는 아들과 함께 작은 빌라를 얻어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동네의 조그마한 피아노 학원에 취업도 했다. 그렇게 1년을 살았을 무렵 피아노 학원 원장선생님은 불쑥 영미씨에게 학원을 인수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학생 수가 많은 학원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미씨가 인수해 열심히 하면 금방 규모가 커질 것 같았다. 원장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게다가 피아노 실력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영미씨는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왔고 피아노 실력도 원장선생님보다 월등한 것 같았다. 자신감이 있던 영미씨는 원장선생님의 제안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권리금이 부담되었다. 작은 학원이었지만 설치된 피아노와 학생 수 등을 고려했다며 1억 원의 권리금을 요구했다.


1억 원이라는 권리금은 매우 부담되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고민하던 영미씨에게 원장선생님은 금융권 대출까지 알아봐 주었다. 영미씨는 대출까지 받아 학원을 인수했다. 칙칙했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도배지를 사다 직접 도배도 했다. 대형마트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저렴한 소품들이 구해 소소한 인테리어도 했다. 그런데 학원을 인수한 지 석 달도 되지 않아 코로나 19 팬더믹 사태가 발생했다. 코로나 19는 사교육 시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두 배는 늘어 날 것으로 생각했던 학생 수는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학원을 매물로 내놓았지만 보러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권리금을 내리고 내리다 급기야 인수가의 10%인 1천만 원으로 내렸지만, 소용은 없었다. 결국, 밀린 월세로 보증금을 모두 까먹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영미씨는 말 그대로 완전히 망해버렸다. 마지막 희망으로 개인회생을 통해 빚을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영미씨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영미씨의 재산이 4억 원 가까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영미씨와 헤어지면서 반반씩 나눈 재산에 부모님께 지원받은 돈을 더해 아파트를 샀다. 그런데 그 아파트값이 6억 원대까지 올라있었다. 헤어지기는 했어도 아직 법률상 부부였다. 법원의 관행대로 배우자의 재산 50%를 채무자의 재산에 반영하니 영미씨의 재산이 4억 원 가까이 된 것이다. 변제액은 재산에 비례하므로 재산의 증가는 변제액의 증가를 의미했다. 하지만 4억 원의 재산은 변제액의 증가, 즉 매월 갚아야 하는 돈이 많아지는 문제를 넘어섰다. 총채무가 4억 원보다 훨씬 적었다. 재산이 빚보다 많으니 아예 개인회생 신청 자격 자체가 되지 않았다. 법원의 기준으로 볼 때 충분히 빚을 갚을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개정된 서울회생법원 실무준칙과 민법의 부부별산제를 근거로 영미씨 남편의 재산을 청산가치에 반영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첨부해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내 법원은 남편 재산의 50%를 청산가치에 반영하라는 보정명령을 내렸다. 법도 아닌 서울회생법원 내부 규칙에 해당하는 실무준칙이니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위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3억 원이 넘는 재산이 한 번에 올라 버리면 영미씨는 개인회생 신청 자격조차 되지 않는다. 보정명령은 영미씨의 개인회생신청을 기각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법원의 고민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재산을 은닉하는 채무자들이 많아질 것이고, 이는 곧 개인회생 제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다. 결국, 개인회생 제도 자체가 흔들려 진정 회생을 받아야 하는 이들이 불이익을 받는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남편에게 재산을 은닉했다는 정황도 없는 영미씨 같은 경우까지 배우자 재산을 청산가치에 반영하라는 것은 지나치게 가혹한 기준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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