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당했어요. 개인회생 할 수 있을까요?
성미씨(가명)는 중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매일 수백 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중노동에 가까웠다. 급식실은 언제나 수증기에 유증기까지 섞어 사우나를 방불케 했다. 조리복에 모자로 머리를 감싸고 손과 발에는 고무장갑과 고무장화를 착용한다. 여기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두꺼운 고무 앞치마까지 둘러야 했다. 이렇게 온몸을 칭칭 감고 밥, 국, 튀김 등 고온이 필요한 음식을 조리해야 했다. 그야말로 중노동이었다.
조리사들의 중노동으로 만들어진 식사를 학생들이 먹고 나면 설거지와 조리실 청소가 기다린다. 이마저 끝내고 나면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다. 그동안 꺼내 볼 생각조차 못 한 스마트폰을 켜고 부재중 통화와 쌓여있는 메시지들을 확인하고 나면 잠시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여 이런저런 신변잡기식 검색을 한다. 그런데 언제서부터인지 주식투자 관련 뉴스가 포털 사이트 메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주가지수가 연일 최고가를 갱신했다고 떠들었다. 대형 증권사에 근무한다는 전문가들은 앞다투어 지금이 적기라며 투자를 권유했다. 수백억을 벌어 회사를 그만뒀다는 대기업 사원 이야기도 들렸다. 어떤 펀드매니저는 지금을 일컬어 “건국 이래 가장 돈 벌기 쉬운 시기”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성미씨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주식투자를 하고 싶어도 증권사 계좌를 개설하는 방법조차 몰랐다. 안다 해도 투자할 돈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급식실 동료가 솔깃한 이야기를 했다. 친한 언니가 귀신같이 투자를 잘하는데 대출을 받아 투자하면 대출이자에 월 3~6%의 수익률을 얹어 준다고 했다. 월 3%만 잡아도 연 36%의 수익률이었다. 동료는 1억 5천만 원을 투자했다고 했다. 3% 수익이면 년 5천 400만 원이었다. 수익률이 좋아서 6%를 받는다면 년 1억 원이 넘는 수익금을 받을 수 있다. 최저임금을 겨우 넘기는 조리사 급여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수익률이 좋다고 해도 “설마 전문 투자사도 아니고 그렇게 높은 수익률을 주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축은행 대출 금리가 연 20% 가까이 되니 최소 연 40~100%의 수익률을 내야 가능한 투자였다. 선미씨는 귀신같은 투자자 언니 이야기를 그렇게 흘려들었다. 그런데 한두 달이 지나 서너 달이 되어감에도 투자했다는 동료는 꾸준히 매월 수익을 정산받는다고 했다. 다달이 통장에 찍히는 돈만 400~500만 원이라고 했다. 불연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미씨가 관심을 보이자 곧바로 귀신같은 언니 일을 돕는다는 여성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으니 스마트폰을 새로 한 대 맞추고 공인인증서와 은행 어플을 설치해 놓으라고 했다. 그러면 자신들이 알아서 대출을 받아 투자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못내 불안했던 선미씨는 5천만 원 정도만 투자하겠다고 했다. 우선 5천만 원만 하고 수익률이 좋으면 더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한 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 스마트폰을 받으러 오겠다고 연락해왔다. 그 날 선미씨의 학교에서 받아간 스마트폰만 6대였다. 그리고 대출에 필요하다며 신분증도 촬영해 갔다. 그런데 한 달이 넘게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혹시나 해서 통장을 계속 확인해 보았지만, 수익금도 입금되지 않았다. 선미씨와 함께 스마트폰을 넘긴 동료 다섯 명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먼저 투자했던 동료마저 그달 수익금이 입금되지 않았다고 했다.
무언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알아봤다. 선미씨 명의로 6개의 저축은행에서 1억 5천만 원이 넘는 대출이 발생해 있었다. 그리고 대출금은 선미씨 통장에 입금된 즉시 특정한 계좌로 송금되었다. 귀신같은 투자자라는 언니도, 그 언니를 돕는다는 여자도 연락되지 않았다. 부랴부랴 경찰에 신고했다. 그런데 경찰에서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미씨와 같은 고소장이 이미 13건이나 접수되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관련 피해자가 100명 가까이 되었고 이르고 피해액 또한 100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관련기사 https://newsis.com/view/?id=NISX20201028_0001214030).
변호사를 찾은 선미씨는 “그 돈 한번 만져보지도 못했어요. 아니 저는 은행이랑 전화통화 한번 안 했는데, 제 명의로 수억 원의 돈을 대출해 주는 게 말이되요?”라며 억울해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공인증서를 통한 전자서명은 전화통화와 같은 추가 본인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유효한 것으로 본다는 입장이었다.
“전자문서에 의한 거래에서 공인인증기관이 발급한 공인인증서에 의하여 본인임이 확인된 자에 의하여 송신된 전자문서는, 설령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작성·송신되었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자문서법 제7조 제2항 제2호에 규정된 ‘수신된 전자문서가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과의 관계에 의하여 수신자가 그것이 작성자 또는 그 대리인의 의사에 기한 것이라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는 자에 의하여 송신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전자문서의 수신자는 전화 통화나 면담 등의 추가적인 본인확인절차 없이도 전자문서에 포함된 의사표시를 작성자의 것으로 보아 법률행위를 할 수 있다.”(대법원 2018. 3. 29. 선고 2017다257395 판결)
선미씨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은 개인회생이었다. 하지만 개인회생을 신청하기에는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다. 우선 채권자들이 선미씨를 사기혐의로 고소할 우려가 컸다. 대출을 받자마자 개인회생을 신청한다면 채권자는 충분히 갚을 생각도 없이 대출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변제의사 없이 돈을 빌리는 것은 전형적인 사기 행위다. 다음으로 법원이 개인회생 신청을 인가해 주지 않을 우려였다. 법원이 개인회생 사건을 처리하는데,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관점 중 하나는 ‘도덕적 해이’다. “일단 빌려서 쓰고 갚기 어려우면 개인회생하면 되지”라는 생각이다. 1억 5천만 원이 넘는 돈을 빌리고 곧장 개인회생을 신청하려는 선미씨의 사례는 도덕적 해이로 오해받기 쉬웠다.
선미씨에게 최소한 고소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가 마무리되고 검찰에 송치된 후 개인회생을 신청하자고 했다. 하지만 100명 가까운 피해자의 100억 대 사기 사건은 경찰 조사 기간만 적어도 6개월 이상 소요될 것이었다. 그 사이 선미씨에게 가해질 채권추심(빚 독촉)의 압박이 상상을 초월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저축은행의 빚 독촉은 회사 생활은커녕 일생 상활 조차 어렵게 만들 정도다.
우선 임시방편으로 채무부존재확인의소를 제기하기로 했다. 대법원의 명확한 견해가 있어 승소 가능성은 없지만, 채권의 존부를 다툼으로써 당분간이라도 채권추심을 면해 보자는 계획이었다. 그나마 저축은행은 소송으로 다투고 있는 채권에 대해서는 채권추심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설 대부업체는 재판을 하든 말든 무작정 추심을 하고는 한다. 다행해 성미씨의 채권자들은 모두 저축은행이었다.
예상대로 경찰은 6개월을 꼬박 채우고야 성미씨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곧바로 송치서를 첨부해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사기를 당했다고 하니 고의적 채무회피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거론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1억 5천만 원이 넘는 거액의 채무를 대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개인회생을 신청하니 법원이 곱게 볼 리는 없었다.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수입에서 생활비를 제외하고 나니 변제금도 턱없이 적었다. 변제율은 고작 30% 정도였다.
법원은 곧바로 보정명령을 내렸다. 지난 1년 동안 사용한 현금과 신용카드 내역을 소명하라는 취지였다. 다행히 대출금에 대해서는 소명 요구가 없었다. 하지만 보정명령의 행간에서 “사소한 것까지 모두 소명하고 소명하지 못한다면 갚아라”는 의미가 읽혔다. 한 사람이 1년 동안 사용한 현금과 신용카드 내역을 상세히 소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소명하지 못한다면 이는 온전히 성미씨가 갚아야 하는 돈이 된다. 평생 조리사로 일하면서 조금씩 모아온 돈마저 이번 사건으로 모두 잃게 된 성미씨에게 조금이라도 변제 부담을 낮춰 주어야 했다. 정해진 보정기간 동안 성미씨의 지난 1년의 기록을 정리하는 지난하고도 급박한 일을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