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I'인 나는 왜 기자가 됐을까

by Audax

MBTI가 유행하고 나서도 한참을 '난 그런 거 안 믿어'라며 애써 무시했던 날들을 지나 내가 처음 MBTI 테스트를 해본 건 소개팅을 한 뒤였다. 당시 썩 괜찮았던 상대가 나의 MBTI를 물었고,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답하고 보니 왠지 시대에 뒤처지는 느낌에다가 그 남자와 대화를 더 이어나가고 싶었던 나는 애프터 데이트를 앞두고 급하게 MBTI를 알아보기로 한 것이다. 사실 테스트 전에도 맨 앞 글자가 뭐가 나올지에 대한 열렬한 확신은 있었다. 태어나서 유아기를 보내고, 초중고, 대학교를 지나 서른 살이 넘은 지금까지도 나의 앞자리는 'I'였다. 그건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의 일생은 I를 극복하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는 길 같았다. 워낙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라, 어릴 적 엄마와 손을 잡고 시장을 다니며 채소가게 아주머니가 '너 참 예쁘다'라고 말을 걸 때도 뒷걸음질로 엄마 뒤에 숨기 바쁜 아이였으니까. 그 뒤로는 시장에 갈 때마다 또 어떤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살피기 바빴다. 아무도 나를 해치지 않고, 오히려 관심 가져주고 칭찬해 주는데 나는 마치 적진에서 걸음을 내딛듯 요리조리 사람을 피하며 다녔다. 내게 가장 큰 두려움은 사람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 지긋지긋한 내성적 성격을 뛰어넘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대학생 때였다. 학교생활을 통해 어느 정도 사회성을 기르며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던 나는 대학생이 되어 진로를 정해야 할 시기가 됐다. 앞길이 창창한 청년이었으니, 나 스스로에 대한 기대도 컸고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도 하고 싶었다. 사실 속으로는 내 앞길은 이미 고3 때부터 정해놓긴 했다. 내성적이라고 고집이 없는 건 아니었으니 한번 하고 싶다는 건 밀어붙이는 성격이었다. 내 선망의 직업은 기자였다. 기자가 꼭 되고 싶었다. 아주 단순하게 멋진 일을 하는 것 같았고 멋있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엄습해 오면서 기자라는 꿈은 내 마음속으로 점점 파묻혀 들어갔고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기자가 되겠어요!'라고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내 인생에 무엇인가를 이토록 바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언론사 입사를 위해 매진했다. 운 좋게도 지금의 직장에서 나를 받아줬다. 면접 당시 고비도 있었다. 유독 내 목소리가 작다 보니 크게 말할 때면 떨지 않는데도 떨리는 목소리가 났는데 면접 심사위원 중 한 분이 '방송기자가 목소리가 그렇게 떨리면 안 되는데, 수고했어요'라고 말했다. '아, 망했다'라는 심정으로 손을 번쩍 들어 마지막 말을 하겠다고 하고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로 '최선을 다하겠다, 꼭 입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의 돌발적 용기가 얼마나 큰 영향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최종 합격을 했다.


기자가 됐으니, 나는 원하던 꿈도 이뤘도 평소에는 없던 자신감도 충만해졌다. 수습기자 생활의 본격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자가 되면서 나의 'I' 극복하기 미션은 더 고달파졌고 난이도도 더 높아졌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수습 딱지를 떼고, 여러 부처를 거쳐 이제는 말진(막내 기자)이 아닌 일진(한 부처 출입 기자 중에 기수가 가장 높은 기자)도 가끔 해볼 수 있는 연차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사람 만나는 게 이 직업의 주된 일이고, 또 남 앞에 나서는 일이 잦은데 나는 소질이 없구나라며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도 잦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성적 성격 때문에 하지 못한 일은 없었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취재원에게 한 번이라도 더 전화를 걸고, 더 집요하게 물어봐야 했으며 그런 일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큰 소리를 내고 겁을 주는 취재원 앞에서도 태연한 척 내가 해야 할 질문을 하고 답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취재원과 능글맞게 대화하는 재주는 없으니 궁금한 거라도 실컷 물어보자는 마음으로 임할 때도 많았다.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면 때문에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내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도 비슷했다. 나는 내가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다. 내 태생은 내성적이지만 꿋꿋하게 노력하면 누구보다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나 자신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여전히 한계는 넘고 있는 중이지만, 노력하는 그 길의 2분의 1 지점쯤 온 지금 내가 몰랐던 점도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약점이 강점은 되지 못하더라도 내 생각만큼 부끄러워하고 숨겨야 할 단점은 아니라는 것. 어떨 때는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 꽁꽁 싸매 숨기지 않아도 됐다는 것. 겪어보니 아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처럼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모든 I들, 지금도 어딘가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움츠리고 있을 I들에게 내 이야기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 모두 힘내자고. 사실 사람들은 남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우리가 문 밖을 나와 사람을 향해 또 세상을 향해 걷는 한 걸음이 다른 사람보다 매우 무거운 걸음일지라도, 또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그 걸음을 걷기 위해 했던 노력은 우리만이 얻을 수 있는 작은 성취이자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가짐이었을 것이다. 그 마음으로 나는 기자가 되어 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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