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노이 민언냐 Aug 19. 2022

선 넘는 남편의 마트 하울기 in 다낭

확찐을 부르는 부성애                일러스트by하노이민언냐

숨이 턱까지 찬다. 이렇게 체력이 약했나. 러닝머신의 속도를 낮춰보지만 더 이상은 무리다. 러닝 머신 위에서 사투를 벌이는 검은 레깅스의 그녀!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스스로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느린 움직임과 바닥을 치는 저질 체력! 아름다운 바다가 있는 다낭에서의 시간은 모든 걸 바꿔놓았다. 그 찰나의 시간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박 3일을 계획하고 떠난 두 번째 다낭 여행! 하지만 도착한 첫날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롯데 마트는 물론 맛있는 현지 식당이 넘치는 다낭은 먹거리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하지만 '갑분 폭우'라는 복병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방대한 양의 폭우였다. 맛난 현지 음식은커녕 꼼짝없이 ‘호텔 콕’을 하게 생겼다. 바쁜 남편이 힘들게 시간을 내서 온 회심의 휴가 건만... 시간이 갈수록 아이들도 배가 고파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허기에 장사 없지. 이대로 가다가 최악의 여행이 될 게 뻔하다. 빠른 결단이 필요했다. 이때, 우리의 가장 님께서 큰 결심을 하고 나섰다. 홀로 비를 뚫고 롯데 마트로 전진!


폭우도 막지 못한 부성애, 가슴 뜨끈해지는 스토리다. 하지만 우리도 몰랐다. 진짜 적은 폭우가 아니라 바로 선 넘는 남편이란 것을 말이다.


남편은 30분을 기다려도 택시를 잡지 못했다. 결국 아이들과 나는 호텔에 택시를 요청했다. 남편을 직접 픽업을 하러 가기로 한 것이다. 일반 택시는 잡히지 않아 돈을 더 내고 7인용 대형 승합차를 타고 달렸다. 롯데 마트로 가는 길, 쏟아지는 비에 백미러는커녕  온통 뿌연 안개가 끼어 시야 확보조차 어려웠다. 20분이면 갈 곳을 30분이 넘게 걸려 도착했다. 마트 입구는 택시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몇몇은 급한 마음에 우리가 탄 택시를 빈차로 착각하고 달려오기까지 했다.  


“아빠! 여기! 빨리 온나!”


창문을 내리고 아빠를 향해 애타게 아빠를 부르는 쩡이와 쭌이! 평소 187 센티의 장신 남편을 실감하지 못하는 나는 이럴 때만큼의 큰 키에 감사하게 된다. 군중들 속에 머리 하나가 삐쭉 올라와있어 쉽게 눈에 띄었다. 큰 눈을 꿈뻑이며 두리번 대는 남편! 손을 흔들며 아빠를 외치는 아이들을 발견한 그는 택시로 진격한다. 롯데 마트 봉지를 들고 달린다. 성큼성큼 걷는 모습이 슬로 모션이 되어 전쟁 속 총탄을 피하는 군인과 오버랩된다. 트렁크에 짐을 싣고 마침내 차에 오른다. 땀과 빗물로 범벅이 된 그를 보자 가슴 한편이 뭉클해졌다. 수고 많았다고 토닥토닥, 남편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남편은 ‘롯데마트 체험기’를 ‘영웅담’처럼 쏟아낸다. 우리도 급박했던 상황을 들으며 “맞나? 진짜?”를 연발하며 맞장구를 쳤다.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가 여행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법이다. 그래, 가족을 위한 너의 희생, 잊지 않으마! 꾸덕한 가족애가 퐁퐁 솟아났다. 꾸덕한 가족애가 퐁퐁 솟아났다.


“흐억!!”

하지만 갬성 갬성하던 것도 잠시, 외마디 비명이 새어 나왔다. 아뿔싸! 입틀막도 소용없다. 이건 3일이 아니라 3주치의 식량이다. 그리고 밀려드는 뒤늦은 후회! 2리터 생수가 세 통 그리고 끼니마다 들이켜도 못 마실 탄산수와 각종 주스가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당연히 호텔 미니바는 턱도 없다. 원래 이름부터 작고 작아서 미니바가 아니던가. 결국 비치되어 있던 호텔의 음료를 죄다 빼고 남편이 사 온 것들을 구겨 넣기 시작했다. 이 단, 삼 단으로 쌓아도 모자란다. 이건 꿈이야! ​제아무리 입 짧은 딸을 생각한 식량 조달이라고 하지만… 이건 한 달치다. 우리는 2박 3일이면 다낭을 뜬단 말이지. 분통 터지는 잔소리가 화산처럼 터져 나온다.


절규하는 와이프; “자기야! 이게 다 먼데? 요구르트가 다섯 줄이나 되네! 이건 또 머꼬? 빵이가? 번데기가? 우리 2박 3일…”

모르쇠로 일관하는 남편; “너거 컵라면 먹을래?”

컵라면에 눈이 먼 아이들; “엄마! 이게 여행이쥐~! 컵라면 고고!”

쌍 따봉을 날리며 신난 남편; “확 묵어라! 확 묵어뿌라!”

사람들이 빵을 사려고 줄을 섰기에 따라 사봤다는 남편.. 그리고 조식으로 빵이 한가득 쌓여있는 걸 보고 그는 모른쇠로 일관했다.


사실 우리에겐 해외여행에서 꼭 거쳐야 할 관문이 있다. 바로 지독한 한식 러버인 딸의 입맛을 맞추는 것이다. 쩡이는 하루 종일 굶은 한이 있어도 내키지 않는 메뉴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면 늘 식사가 가장 고민된다. 그래도 이건 아니쟈나~ 쩡이도 쭌이도 아빠의 남다른 클래스에 눈이 휘둥그레지긴 마찬가지다. 국가대표 딸바보인 남편은 딸의 최애 음료인 요구르트를 한 줄 두줄… 아니 무려 다섯 줄을 샀다. 딸로 요구르트 잼이라도 만들 샘이냐. 그뿐만이 아니다. 이리저리 치이다 결국 압사당해, 초대형 번데기가 된 크루아상은 또 어떻고. 이건 빵이 아니여~ 번데기여~ 고통 속에 정체성을 잃은 크루아상은 결국 바이 바이~ 봉지도 뜯지 않고 쓰레기통으로 R.I.P 레스트 인 피스! 바깥공기 한 번 못 쐬고 유명을 달리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베트남의 조식은 열이면 열 갓 구운 크루아상과 각종 빵을 만날 수 있단 걸 잊으면 안 된다.  특히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빵과 커피가 맛난다는 건 남편, 자네가 알려줬단다. 시간을 돌려 광란의 쇼핑을 허한 그때의 내게 등짝 스파이크를 꽂고 싶었다. 슈퍼 울트라 엑스트라 라지급 손 큰 남편을 너무 과소평가한 거다.


틈을 노리는 마트 중독 공격수 남편; “머 사가?”

틈을 주지 않는 수비수 와이프; “마트 가지 말고 걍 온나.”

‘전설의 하루견과 캐리어’를 떠올리면 아직도 식은땀이 난다. 지난봄, 남편은 한국으로 3개월이 넘는 장기 출장을 다녀왔다. 그리고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오매불망 선물을 기다리던 와이프는 또 한 번 그의 스케일에 놀랐다. 집에 오자마자 어마어마한 보물상자를 열듯 캐리어 지퍼를 잡던 그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손이 크다 못해 선을 넘는 그는 캐리어 가득 하루견과를 실어온 것이다. 열정 쇼퍼인 그에게는 ‘특정 상품’을 언급하는 것도 금지다. 하루는 ㅂㅂ고에서 나온 김스낵이 맛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동안 마트에서 ㅂㅂ고의 김스낵은 모조리 쓸어왔다. 평소에도 선 넘는 마트털이는 멈추지 않는다. 사갈 게 있냐고 묻는 카톡이 날아들면 정시 퇴근하니 마트를 가겠다는 신호다. 그런 호의를 빙자한 광란의 쇼핑은 단칼에 거절한다. 빠른 귀가를 촉구하며 쇼핑을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리스트를 손에 쥐어주지 않는 이상, 절대 마트에 혼자 보내지 않는다는 게 23년 장수 커플의 비결이랄까. 하지만 여행지와 우천이라는 변수에 긴장이 풀린 거다. 제대로 고삐가 풀린 남편은 전 코너를 돌며 신나게 쓸어 담았을 것이다. 콧노래 흥얼대며 의식의 흐름대로 긴 팔과 다리를 너울댔을 게 눈에 훤하다. 이거슨 전시상황? 전쟁 났습니끄아? 피난이라도 떠납니끄아? 부릉부릉 엄마의 폭풍 잔소리에 시동이 걸릴 조짐이 보이자, 남편은 재빠르게 컵라면부터 꺼내 보인다. 아이들은 컵라면이라면 자석처럼 달라붙기 때문이다. 역시 너란 남자, 여론을 잘 아는구나. 전기 포트를 꺼내 생수를 잔뜩 담으며 의기양양한 포즈까지 선보인다. 그래, 아이들이 니 목숨을 구했다. 여기는 다낭이니깐요. 컵라면을 미슐랭급 코스 요리라도 되는 양 귀하게 여기는 쭌이와 쩡이! 후루룩 후루룩 찰지게 면치기를 하는 모습에 흐뭇해하던 남편은 보란 듯이 쌍 따봉까지 날린다. 하마터면 그 짧고 도톰한 엄지 손가락을 꺾어버릴 뻔했다. 아이들과 남편이 컵라면에 환호할 때, 엄마는 구석에서 분노에 들끓고 있었다. 나 지금 떨고 있냐.

​“잘 먹어놓고 저라드라.”


결국 식량 소진을 위해 매일 간식과 야식 섭취가 의무화되었다. 덕분에 엄마와 아이들은 한층 두둑한 뱃살과 빵빵한 볼살로 하노이로 돌아왔고 말이다. 또르르. 2박 3일 만에 3킬로 찐 거 실화냐?! 늘어난 체중에 남편을 탓했다. 하지만 오히려 잘 먹고 잘 놀고 이제와서 불평한다고 타박했다. 음.. 잘 먹은 거 인정…한다.

충격의 식량조달에 원망하던 나지만 돌이켜 보면 2박 3일이라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만일 일주일이었다면 어땠을까? 식품관을 몽땅 털어 아예 인수를 할 기세였겠지.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진다.

다음 날부터 다낭은 비가 그치고 흐렸다가 마지막 날은 반짝 해가 떴다. 덕분에 현지 레스토랑도 가고 즐겁게 물놀이도 할 수 있었고 말이다. 남편 덕분에 배부른 휴식과 확찐자가 되었지만 함께여서 더욱 즐거웠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다낭 여행 뒤 남은 미션은 바로 리셋이다. 하노이에서 나는 달린다.


달리자! 민언냐! 달리자! 하노이!

피. 에스. 우리의 에피소드 제조기는 이번에도 나의 페르소나가 되어주셨군요. 이젠 일부러 글감을 주려는 건 아닌지 의심도 든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자기 덕분에 쓰지 않았냐고 기세 등등해할 남편이 눈에 선하고 말이다. 그래 그래, 금스흡느드. 스릉흡느드. 마트놀이는 이제 그마안~

작가의 이전글 하노이의 쇼 미 더 기프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