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너를 위한 기다림
진심은 통한다고 하던가?
모든 사람에게는 장점이 있다. 남자친구와 나도 그렇다. 우리의 관계에 있어 각자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우리를 함께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겠지.
내가 뽑는 그의 장점은 인내심이다.
나는 데이트에 무엇을 할지 생각해오지도 않고, 상대가 해준 말을 잊어먹고, 상습적으로 만나는 시간보다 늦게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장난식으로 "또 늦게 나올 거야?" 혹은 "오늘 뭐 할지 생각 안했지?"라고 말할 뿐, 나에게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장난식의 말도 사귀기 초반의 몇 번이고, 이후에는 대화 주제로 꺼내지 않았다.
이런 대인배의 면모를 보인 그도 참지 못한 문제는 있었다. 나의 느린 연락 속도였다. 회사에서 연락이 느린 건 그렇다고 해도, 나는 놀러 가서도 연락이 느렸다. 술자리에서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쉬고 있는 주말에도 느렸다. 말 그대로 답장이 항상 느린 나에게 그는 너무나 불만이었다. 답장이 1분 만에 오는 그와는 많이 달랐다.
그는 내가 다른 남자와 딴짓을 하고 있을까 의심했고, 자신을 좋아하는 게 맞는지를 고민했다. 이때 그와 나누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상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이고, 없는 부분은 서로의 노력으로 최대한 해결해보려고 한다고 했다.
연락 문제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좋게 말하면 받아들이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참는 것. 더 안 좋게 말하면 포기하는 것이고. 그는 자신을 깎아내면서 나를 받아들였다. 항상 참던 그가 괜찮아지기 시작한 것은 자신이 사랑받는다는 걸 느끼기 시작하게 된 이후라고 생각한다. 그가 참으면서 노력해 준 만큼, 나에게 마음을 키울 시간을 준 만큼 나는 그를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우리는 더 이상 싸우지 않았다.
그는 이전 연애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다고 원망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나에게 끊임없이 마음을 표현했다. "내가 얼마 전에 좀비 영화를 봤는데, 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좀비가 우리를 쫓아오는 상황이라면 나는 너를 먼저 대피시킬 것 같아. 내가 야구방망이 가지고 뒤를 지키고 있을게". 그러면 나는 말하곤 했다. "나는 좀비가 따라오면 그냥 죽을 것 같은데? 나는 별로 오래 살고 싶지 않아". 나는 참 센스 없는 여자다. 그래도 그는 마음을 계속 표현해 주었다. "얼마 전에 내 친구가 조선시대였다면 네 여자친구를 위해 싸울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 근데 생각해 보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아. 조선시대면 내가 칼을 들고 너를 위해 싸울게". "응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