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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유현 Jul 11. 2023

백두 30회 오대산 종주(1)(대관령-진고개)

06년 9월 10 - 10월 1일

   9/30      22;00     신도림 출발 

   10/1      02:50     대관령 출발

                            -국사성황당-한국통신중계소-활공장

               03:30     새봉(1071) 전망대                 

               04;10     선자령(1157) (10분 휴식)                               5.65km

                             -낮은목

               05:10     곤신봉(1131)                                              3.25km

               05:40     산채시험장(1142 안부)-10분 휴식

               05:55     동해전망대(1140)

               06:40     매봉 (1173)                                                4.25km

               07:00     삼양목장- 아침식사(-07:30)-천마봉 갈림길

                           -1172-

               08:20     사문다지 갈림길 -습지 계곡 

               08:50     소황병산 (1320) -09:10(20분 휴식)                  5.1km

                           -1130 안부

               10:10     노인봉 (1338) 갈림길-10:30(노인봉왕복-20분)  3.7km

                           -1321 -1242-

               11:30     진고개                                                       3.85km   

                          8시간 40분                                       25.8km     

싱싱한? 단풍..

9월 30일_토_22:00 

 벌써 9월이 지나가고 있다. 올 한 해 정말 정신없이 흘러가고, 어느새 가을이 깊었구나. 추석 연휴 시작을 배병장과 함께 대관령 출정으로 시작하니 기분이 꽤 좋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 이후로 함께 등산하기가 쉽질 않았는데.. 카타르 아시안게임 프로젝트가 시간에 쫓겨 애를 먹이다가 결국 밤을 새우며 미국 본사와 협의한 결과 겨우 해결하고 나니 한결 맘이 가볍다. 대간 이어 걷기가 자칫하면 개근상?을 놓칠 뻔했다. 역시 매주 대간행을 결행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하고, 직업적인 일이 아닌 이상 여유로운 일상으로 미리 마음가짐을 갖추지 않으면 참 어렵다는 걸 새삼 느끼며 1년 여 대간 길에 커다란 장애가 없었음에 여러 가지로 감사할 일이다. 

 일기 예보가 좋은 날씨를 알려주니, 날씨 걱정은 없으나, 평소 등산을 자주 함께 해 보질 못한 큰 놈과 다소 긴 거리의 대간길을 걸으면서 혹시 무리를 가져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물푸레를 뒤로하고, 가벼운 맘으로 신도림역 출발지에 도착하여, 항상 맑은 웃음의 매니아님과 인사를 나눈다. 덕분에 오늘 출정식은 가평 잣막걸리로 장식할 것 같다. 덕유 향적봉 구간으로 출발하는 9기 팀과 인사를 나누며, 지난가을 병기실 마을의 송어 횟집도 떠오르고 1년 동안의 대간 북상길이 회고된다. 긴 여정이 스쳐 지나며, 남은 오대, 설악 구간에 부디 좋은 결실 맺어지기를... 

 여주휴게소의 출정식 후에 1시간 조금 지나 도착한 대관령 양떼목장 입구에서 1시간 정도 잠을 청하며 휴식을 취한다. 지난 구간에서 시간계획상 즐길 수 없었던 高樓晴月과 能政出日을 아쉬워하며, 동해전망대 부근에서 맑은 東海日出을 기대해 보지만, 보름 가까워지는 하늘에 달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구름이 별마저 가리고 가을바람만 소슬하다. 겨울 아니니 찬 바람은 아닐 테고 선자령 넘을 동안 부디 刀山狂風의 때 아닌 바람 자랑은 말아주길.. 대관령 대굴대굴 옛길에는 행인(嶺路行人)은 고사하고 새로 난 고속도로에 차량마저 뺏긴 채, 희미한 달빛 잔영으로 회색 금 하나 그은 채 잠들었다. 맞은편 도암면 용평 신시가지만 화려하게 반짝인다. 

새벽을 여는 바람개비

10월 1일_일_02:50 

 대간 들머리 앞 자락에서 지체하며 잠을 청하기가 쉽질 않은 탓에 결국 간단한 체조를 마치고 선자령 얕은 오름길을 향해 포장도로를 걸어 나간다. 철망으로 둘러 쳐진 시설물을 오른쪽으로 돌아 북쪽 들머리까지 이어지는 포장길을 거친 후 숲으로 난 길을 잠시 거친 후 다시금 한국통신 중계소에 이르기까지 지루한 트래킹이 계속되면서 일행들의 불빛은 자유로이 뭉쳐지며 시골학교 소풍길처럼 가벼운 걸음들이다. 왠지 대간 마루금 밟기를 시작한 이래로 이렇게 동네 어귀를 걷는 듯한 편한 걸음이 왜 이다지도 아프게 느껴지는 것일까.. 

 국토란 언제나 변화되고, 활용되는 삶의 마당임은 당연한 일이리라. 단지, 우리는 주위의 곳곳에 역사와 공간적 조형물을 일부러라도 설치하기도 하고, 더구나 자연적인 상징물엔 그 의미를 부여하고, 뜻있는 해석을 덧 붙이며 기념적인 이야기를 남기고 보존하면서 후대에 전하기도 하고 오늘날의 지표로 삶기도 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반도의 지고지대한 국토의 상징이며 그 척추를 형성한 채 반만년 역사의 영혼을 간직한 대간 능선길이 그렇게 무시당할 만큼 하찮은 상징이런가.. 꼭 피할 수 없는 시설 도로라면 사람 한둘 걸어 지날 폭으로 옆길을 이어주며 이 길이 대간 마루금이라는 단장을 해준다면 그 무슨 큰 낭비라도 될 것이며, 별도 공사비를 책정할만한 일이 될 것인가. 시멘트 포장에 울리는 등산 스틱 소리가 무척 귀에 거슬리는 밤길이다. 

 20여분을 지쳐 등산 소로에 접어드니 국사 성황당 갈림길에서 고승 범일국사의 영혼이 대관사 산신각에 모셔진 김유신의 영혼과 함께 강릉 밤하늘 위로 날갯짓하며 올라 멀리 칠성산 아래 학산 마을에 자리한 사굴산문으로 밤마실을 떠난다. 아무튼 실존 불교 고승이 강릉의 수호신으로 섬겨지며 민속 성황당에 모셔지는 특이한 사례이다. 새삼스레 밟아가는 풀섶 황토길이 왜 그리도 정겹고 발길이 부드러운지.. 간간이 장식처럼 서있는 바위들이 어슴푸레한 새벽하늘에 검은 먹칠로 다가오며 억새 몇 포기로 앞 자락을 단장한다.  

매봉의 전설

10월 1일_일_03:30 

 오른쪽 공항공사 활공장을 지나 새봉(1071) 안부에 새로이 마련된 듯한 조망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화려한 강릉 시가지의 야경을 조망한다. 그다지 힘든 오름이 아닌 탓에 여유로운 걸음으로 아직 땀이 많이 나지도 않으면서, 구름 낀 밤하늘이 왠지 해 뜨는 새벽의 동해를 뒤덮을 것 같이 잔잔한 바람마저 일고 있다. 광활한 능선 초지 위에 펼쳐지는 목장지대의 가을 풀들이 벌써 흰색으로 비치며 먼지마저 날린다. 조선 말엽부터 본격화된 화전의 땅에 목초라도 가꾸며 서구식 목장을 일군다는 명분을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지만, 그 시절 염려하던 홍수피해를 문명화된 오늘날에도 한강 바닥을 높이는 건 고사하고, 바로 아랫동네 도암천 물길마저 범람케 하는 난개발을 묵인하며, 방수림 벨트 하나 마련치 못한 채 누더기 초지 정경을 연출하는 이 땅의 잘 난 행정력들.. 대간 길 군데군데 막으며 부르짖는 국토 개발 관리에 대한 한심한 비웃음이 풀풀 거리며 밤하늘에 날린다. 

 이어지는 선자령 9부 능선 오름 길에서 강릉 시가지의 불빛이 잠시 사라지며 횡계 시가지의 불빛이 왼쪽 발아래로 따라붙으며, 깊어가는 가을 새벽을 걸어가는 초로의 아비와 덩치 큰 아들이 나누는 사랑을 훔친다. 낳고 기른 자식 아끼지 않을 부모 없겠으나, 어쩌면 내 못다 한 한이 있어 부디 반듯한 학자로 살아 달라던 바람을 말로만 전해 놓고 내버려 둔 채 키운 자식이 어느새 훌쩍 자라 어른으로 곁에 서 있으니 세월 무상함을 탓할 까닭도 없이 고맙고 다행스러울 뿐이다. 억새 흔들리는 초지를 오름길로 걸어 오르며 등에 약간의 땀이 배이는가 싶더니 하얀 표지석으로 단장한 仙子嶺(1157)에 이른다.(04:10) 부드러운 능선이지만  불룩 솟은 봉우리에 웬 고개 嶺을 붙였는지 항상 궁금하다. 10여분 휴식을 취하며 진행을 늦춘다. 행여 전망대 일출을 꿈꾸며.. 

 초막골계곡 선녀들이 목욕 끝내고 보현산 능선을 날라 오르는 낮은목으로 떨어지는 발길이 간간이 이어지는 너덜돌들에 조심스럽고, 왼쪽 대관령 목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스치며 잠시 축축한 목초지를 건너면서 풍력 발전기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근래에 40 여기가 훨씬 넘었다니 그 공사의 진행과정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부디 잘 계획을 세워 진행하고 끝 마무리엔 1-2m 정도 폭의 대간 마루금 흙밭 길 보존하는 지혜를 갖추길 간절히 촉구한다. 자연을 이용하는 좋은 발전 계획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공사가 끝난 후 불필요한 도로시설을 메꾸고 복원하여 자연보호의 그 뜻처럼 이 땅의 상징을 간직하고자 하는 민초들의 발걸음에 시멘트 차가운 소리만큼은 생기질 않기를...  

매봉에서 배병장과 함께..

10월 1일_일_05:00 

 낮은 목 삼거리에서 포장도로를 지나고 곤신봉 팻말을 만난 후 길섶 풀숲으로 대간 리본을 찾아들었지만 이내 넓혀진 도로에 다시 연결되고 坤申峰 바위 무더기를 찾을 길이 없다. 거대한 바람개비 아래 대형 굴삭기가 길섶에 드러누운 채  날개 소리를 즐기며 황당스레 기웃거리는 대간 꾼을 한심한 듯 바라보고 있다. 곤신봉 정상 표지에 선자령이라고 적혀 있다고 들어 그 까닭을 연유하고 봉우리에 붙여진 선자령 명칭을 다시 살피고자 다짐했는데.. 그냥 그렇게 길 내고 깎아 없애고.. 아니겠지.. 길을 잘 못 찾은 탓에 부디 다음에 다시 땜빵이라도 할 수 있기를.. 목장 초지의 번짐이 부디 마루금 지나 동쪽으로는 넘지 말기를.. 자병산 목줄기에서 흘러내리던 흰 피가 떠오른다. 


사마르칸드로 향하는 길목의 집단 농장 부근 고려인 마을에 차를 멈추고, 이틀 전 소개받았던 작업반장이 안내하는 작은 집으로 K노인이 당분간 머물며 사용할 가방과 짐을 옮긴다. 몇 달 동안은 이곳에 머물면서 집단 농장의 비닐하우스 설치 공사를 본격적으로 감독 교육할 예정이다. 그러나, 고령의 나이에 비록 잔병은 없다 할지라도, 기력이 많이 쇠잔한 탓에 수개월의 객지 생활에서 오는 고독감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의아스럽다. 긴 세월 동안의 인고가 가져다준 강인한 고집만으로 버텨내기에는 왠지 만만치 않은 환경이고, 뭔가 또 다른 탈출을 시도하려는 고집이 엿보이기까지 한다.
“내 평생을 양팔을 붙잡고 늘어지던 그놈의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오늘날 참 허무한 것으로 사라지고 있음에도, 불쌍한 정치꾼들의 거짓 포장으로 장식된 채 여의도 부근에서 명맥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 무슨 신념이니 진리니 따위로 떠들지만 알고 보면 죄다 제 밥그릇 챙기려는 수작임을 누구나 알 수 있는 마당에도.. 문제는 그때 박대통령과 잠시나마 그 뜻을 맞추어 일하려 할 때, 내가 느끼고 존경할 수 있었던 점은, 그 양반 참 단순하다는 인상이었지.. 그 사람 구태여 이데올로기로 구획 지어 평가하자면 낭만적인 사회주의자라고나 할까.. “
결코 미국식 민주주의자는 될 수 없었다는 결론이었다. 오히려 식민세대의 젊은 시절을 보낸 고독감이 빚어낸 풍자적 민족주의자라고나 할까.. 민족을 구할 수 있다는 아니 구해야 한다는 신념이 그의 반자유적 군대 논리와 결부된 과대망상으로 이르기까지에는 역사적 인식이 결여된 신념이 가져다준 불행이며, 이데올로기에 대한 확고한 토대를 상실한 결과 부질없는 지식인들로 치부하고 그들과 타협을 거부한 탓일 것이다. 결국 그 역시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커다란 괴물인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라면 너무나 희학적인 일일까..
“自由.. 자유란 것이 인간에게 참 기본일진대.. 그 모순됨이 오늘날 불행한 反自由를 낳고.. 그 양반 미국식 자유 운운을 참 싫어했었지.. 그게 죄다 힘센 놈들 주장이라고.. 힘없으면 자유는 갖다 줘도 못 먹는 감으로 여겼으니.. 오늘날 반자유경제주의 운동과도 맥락이 닿을 만한 생각이고.. 그런 게 사실상 위험한 게지.. 공산주의자, 독재자들이 참 좋아하는 논리들이니까.. “
능률, 평등을 강조하면서 결과적으로 개인의 자유유보의 명분을 획득함은 파시즘이나 공산주의나 폭력적인 지배를 위한 특권층의 논리로 발전함은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이래 저래 대다수 백성들은 그 피지배자일 뿐인 것이다. 단지 훗날의 배부름에 대한 환상과 출세의 기회에 대한 미련을 희망으로 삼을 수 있기에 유지되는 절묘한 통치형태인 것이다. 혁명 후 군사정권 시절에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그 시절 개발도상국들에 유행처럼 번지는 일종의 정치 수단처럼 이용되었고, 2차, 3차로 이어지면서 서서히 성공을 거두기 시작하면서 아울러 터져 나오는 자유를 위한 갈망과의 커다란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풍력발전기가 줄지은 삼양목장 위 산채 시험장 넓은 안부(1142)에서 10여분 휴식을 취하며(05:40) 깎여나간 곤신봉 옆자락을 아쉬운 듯 뒤돌아 보며 설마 하니 마루금 정상을 깎아 없애지는 않았으리라 하면서 뒤돌아 가서 살피고 싶은 심정이다. 무심히 돌고 있는 바람개비 날개가 점점 형태를 뚜렷하게 비쳐오며 헤드랜턴을 접어 넣고 5분 정도 걸어 나가니, 동해 전망대 큰 돌비석이 장식되어 있고, 흉물스런 휴게소가 원숭이 우주정거장처럼 나지막이 자리한 채 대목장 지난 막걸릿집 앞마당인 양  어지러운 광경을 연출하는 동해일출 전망대 풍경이다. 태극기 휘날리는 영화를 촬영하며 생긴 장사 속인가.. 성스러운 맘으로 따라붙던 大公山城(大弓山城, 普賢山城) 을미의병 영혼들이 대경실색하고 멀리 명주군왕릉 쪽으로 사라진다.  

마루금 목장

구름 가려진 강릉 앞바다를 아쉽게 뒤돌아 보며 서쪽으로 방향을 서서히 바꾸어 매봉 오름길을 향한 얕은 내림길을 밟으며 새벽을 여는 푸른 창공에 연이어 줄지어선 바람개비의 하얀 장식이 그런대로 서양풍의 목가적 풍경을 연출하며 낯선 경치에 잠시 디카를 갖다 대 본다. 단지 아래쪽 파헤쳐진 채 방치된 도로들은 가려 놓은 채... 매봉 오름길의 오른쪽 고사목 지대에 불안하게 자릴 잡은 키 낮은 고산나무들이 수용소에 갇힌 포로들처럼 밀려오는 포크레인 소리에 벌벌 떨며 대간 마루금 한 뼘 도로를 경계로 안간힘으로 버티고 서 있다. 철따라 지고 피는 구절초만 화려하다. 이제부터 그 잘난 국립공원 관리공단 관할의 오대산 국립공원 지역의 시작이라던가.. 사설 목장 관리소 보다 못한 입장 요금 징수 나으리들.. 


10월 1일_일_06:40 

 잠시 얕은 오름을 거쳐 아무런 정상 표지 안내도 없이 풀섶 무성하게 자리한 국립공원 오대산 구간의 몇 안 되는 봉우리 중의 하나인 매봉 정상을(1173) 지나면서 아쉬움에 기념사진을 찍으니 지나온 대간 길이 바람개비 표지로 온통 뒤덮인 채 줄지어 다가온다. 짧은 내림길을 밟으며 오른쪽 청학동 소금강 상류로 이어지는 천마봉길을 버리고 좌측 목장길로 내려가니 드문 드문 키 높은 밤나무들이 넓은 초지를 장식하며 목가적 풍경을 연출하고 아래쪽 계곡으로는 잡목이라도 무성하게 경계를 이루고 있으니  그런대로 마음이 덜 아프다. 시장기도 느껴지던 참에 넓은 풀밭 위에서 편한 아침상을 펼친다. 배병장은 무박산행의 리듬이 잘 맞지 않은지 영 식성을 발휘치 못한다. 그냥 우유 한잔으로 때울 모양이다.(07:00) 


10월 1일_일_07:30 

 식사와 휴식으로 느긋한 출발을 재개하며 소황병산 오름길을 자유롭게 나서기로 한다. 이젠 길이 헷갈리는 공사 마당도 없을 것이고 외길 산행이니 리본만 잘 확인하면 큰 어려움은 없겠다. 1172 안부를 지나 사문다지 계곡 갈림길의 샘터 부근에서 휴식을 취하던 선두조를 만난다.(08:20)沙門의 無心을 연상케 하지만 아무래도 큰 바위 입석으로 생긴 四門닫이 石門으로 설명함이 옳을 듯하다. 길섶의 금강초롱 잎사귀가 힘을 잃어가며 가을을 버티고 외롭게 서 있다. 잡목 우거진 숲길을 몇 걸음 올라가니 오른쪽에 계곡처럼 흘러내리는 짧은 물줄기가 대간 길 고요함을 홀로 깨우려 든다. 고둔치님의 설명대로 계곡 건너기를 피하고 왼쪽 사면을 살피니 대간 리본이 꽤 많이 붙은 잡목 숲 사이로 낙엽에 뒤덮인 발자욱이 이어진다. 자세히 살펴 고둔치님의 시그널을 찾아 디카에 담고 싶으나 오래된 탓인지 잘 보이질 않는다. 

황병산을 뒤에 두고

소황병산 오름길은 오른쪽 잡목 숲을 20여분 지그재그로 헤쳐나가며 새로이 개척되었음이 확연하다. 아마도 오른쪽 계곡을 가로질러 능선길을 바로 오르던 옛길을 버리고 , 수년 전부터 대간인들이 능선 중간 오름길을 찾아 밟는 고생을 하였으리라.. 드문 드문 달려있는 시그널에 감사를 표한다. 능선을 올라선 후 다시금 10여분 가파른 된오름을 맛본 후에야 소황병산 넓은 초지 봉우리를 마주할 수 있다. 배병장은 지루한 오름길이 싫어서인지 마지막 오름을 달리기로 시도해 본다. 역시 젊음이 좋기는 좋다. 잡목 숲을 벗어나 드넓게 펼쳐진 소황병산 고원에 다다르니 멀리 대간길에서 벗어난 남쪽 황병산 오름길이 단풍을 물들이며 다녀가라 손짓한다. 머리엔 온통 안테나를 장식한 채.. 흰구름 넓게 퍼진 채로 화려함은 잃은 날씨다.(黃炳白雲)(08:50) 

 20여분 후미를 기다리며  넓은 초지 중턱에 서있는 1430 소황병산 안내판을 무시한 채 헬기장 부근 내림길 직전 나뭇가지에 소황병산(1328) 표지를 매달고 보니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도 든다. 분명 숫자상의 높이는 1328이 맞는가 보이는데 멀리 초지 꼭대기가 자꾸 높아 보인다. 모처럼의 긴 내림길 앞에서 멀리 보이는 노인봉 정상을 배경으로 기념을 남긴다. 이제 마지막 오르내림을 장식하는 소금강 정상을 향하면서 오른쪽 깊은 청학동을 멀리서 조망하니 온통 붉게 물들이며 올라오는 단풍이 벌써 절정을 이룬 듯하다. 어느새 가을이 깊었는가..(09:10) 


10월 1일_일_09:30 

 꽤 가파르고 긴 내림길을 짧은 키의 잡목 가지를 헤치며 내려서서 1130 안부에 다다른다. 안개자니 계곡 갈림길을 지나 억새 능선을 올라서니 노인봉 대피소와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며 왼쪽 진고개 내림 능선길이 만만치 않게 길어 보인다. 30여 분간의 만만치 않은 오름길을 지쳐 나간 후에야 그 유명한 노인봉 대피소에 다다라, 새로 지은 대피소 신식건물(현재 폐쇄상태)과 낡았지만 정겨워 보이는 가건물이 맞붙어 있는 청학동 갈림길에 다다른다.(10:05) 한 시대 대간길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성 모씨는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조만간 흘릴 것 같은 판자 집만 쓸쓸하다. 어떤 이는 그를 존경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무척 실망도 했던 모양이지만 아무튼 다시금 대피소를 운영하는 날 어느 대간 길에서 허허로운 웃음 날리며 다시금 많은 얘깃거리를 남기며 사랑할 수 있기를...  

노인봉에 올라

10월 1일_일_10:10 

 노인봉 갈림길에서 점점 많이 올라오는 단풍 행락객들 때문에 발걸음이 편칠 않다. 아마도 이곳을 지나 소금강 아래 수많은 식당들은 오늘 한 철 대목으로 붐비게 생겼다. 10 여분 많이 파 헤쳐진 노인봉 오름길을 밟은 후 정상 암릉에 서서 오른쪽 백마봉과 왼쪽 동대산을 조망한 후, 남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개자니골 넓은 자락이 점점 붉은 옷으로 갈아입으며 영동 고속도로까지 닿아 있다. 복잡한 정상을 벗어나 다시 갈림길을 지나(10:30) 진고개로의 발길을 서두른다. 단체객들의 반대 오름 행렬 때문에 가파른 내림길이 꽤 지체될 것 같다. 버스에서 갓 쏟아져 나온 듯한 단체 행렬 중 일부는 비닐봉지에 도토리를 가득 주워 담았다.. 우리 다람쥐 도시락인데.. 재미로 주워가는 한 움큼이 작은 짐승들의 겨우내 식량을 뺏는 셈이니 안내 등산 리더들은 미리 교육을 시행할 필요가 있겠다. 


1964년 봄, K노인은 대학에 갓 입학한 첫 딸과 함께 창경원을 거닐 만큼 여유로운 일상을 맛보며 오랜 세월 동안의 기억들을 접고 이 땅의 진정한 지식인으로 거듭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실로 40 중반의 여당 정책 실무자로서 많은 정강 정책을 입안하는 사무국 핵심 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보람으로 여겨졌다. 단지 가끔씩  대학 초년생 첫딸의 한일회담 반대 데모등 반정부 정책에 대한 질문들이 부모로서 어떤 식의 해답을 주어야 할지 당혹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그리 큰 문제로 여기 지를 않고,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지난날 그가 관여하기도 했던 학생운동모임에도 참여하여 그 젊은 학생들의 순수한 의지를 느껴보리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다행히도 큰 딸은 정치적 문제에는 그리 관심이 깊질 않았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시작될 즈음, 대구에서 올라와 한동안 뜸했던 친구의 소개로 몇몇 대학생 모임 멤버들을 소개받고 명동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저녁나절을 보냈다. 현 정부의 정책들에 대한 토론들을 안주 삼아 시간을 보낸 뒤 밤늦게 헤어지며 학생들의 여관비와 회식비를 용돈 삼아 쥐어주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지난날 그의 젊음을 회상해 보았다.
과연 그 시절 내 땅을 잃은 젊은 대학생 지식인이 추구했던 인간에 대한 몰두는 어쩔 수 없이 외면해야 하는, 아니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는 조국의 현실이나 정책에 대한 외면이었으리라.. 해방된 지 20년.. 젊은 그들이 거침없이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고 논하며 정치를 비판할 수 있음이 참 부러울 지경이었다. 설사 그것이 여당에 몸담고 있는 그와 다른 생각일지라도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며 구태여 반론으로 설득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차피 정치나 정책이란 변화할 것이고, 새로운 공화국의 새로운 비젼을 위하여 사심 없는 정치인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바람이 있다면 10여 년 전의 농지개혁을 보강하고 토지 공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살려, 적어도 훗날 경제적 사유 재산의 한 축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정치권 부유 재산가들의 반발이 간단치 않았으며, 자칫 또 다른 이데올로기 논쟁에 휘말릴 소지가 많았다.
그해 여름이 깊어갈 무렵 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생각보다 거세어지고 , 정부 정보기관의 활동보고가 상부로 심상치 않게 오가는 것을 감지했다. K노인은 뭔가 학생운동 세력에 불길한 조치를 예감하고 한 달 여전에 만났던 학생들을 다시 만나 자중하며 기다릴 것을 당부하기 위하여 연락을 취해 놓았다. 경복궁을 돌아 오랜만에 사직동 길을 걸어 오르는 칠월의 저녁은 꽤 무더웠으나, 위장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미국산 수입약을 구하여 돌아가는 발길은 매우 가벼웠다. 북악산 머리 위에 꽤 밝은 초순 달이 걸려 있었다.
노인봉의 어제

10월 1일_일_11:30 

 꽤 가파르고 긴 내림길을 지체하며 천천히 걸어 내린 후 진고개 날머리에 멈춰 서서 6번 국도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다음 구간의 동대산 오름길을 마주하니 그 들머리에서 시작되는 된 오름이 벌써 걱정이 된다. 아무튼 무사히 올라설 수 있기를.. 구름 타고.. 난생처음 긴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선두조와 함께 도착한 배병장은 사실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그래.. 처음엔 다 그런 거지 뭐.. 언젠가 많이 심심한 늘그막에는 너도 대간 길 걷고 있으리라.. 그땐 백두산까지 이어져 진부령쯤에서 중간 결산하면서 슬픈 역사의 오늘을 돌이킬 수 있기를.. 

 주문진으로 향하는 연곡천변 기름진 들녘에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벼 이삭이 한가위 보름달처럼 풍성하게 출렁거린다. 부디 저 땀들이 제 값으로 식탁에 오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젠 언제까지나 보호정책으로 식량증산만 꾀할 수도 없는 국제 현실이니 머지않아 저 들판엔 어떤 모습의 2차, 3차 생산이 이루어질 것인가.. 동해 바다의 가을이 맑게 다가온다. 


맛있고 풍성한 바다를 맛보게 해 주신 마림마초 마운락 사장님-주문진 시장 로터리 입구(033-661-8477 강원산악연맹 부회장) 감사합니다. 


2006.10.2  배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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