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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유현 Jul 11. 2023

백두 8회 지덕 종주_3

05년 12월 24-25일

                12/24   22:00  신도림 출발

                12/25   02:00  장계면

                           02:20  지승마을 입구 도착(차량 진입 불가)

                           04:00  무령재(900)  향발

                           04:45   무령재 주차장 도착     3.5km

                           05:00   무령재 출발

                           05:15   영취산(1075.6)           0.4km

                           06:05   서덕운봉(950)

                           06:15   전망바위                   2.9km

                                     말궁굴재

                           07:40   977봉                        1.7km

                           08:10   민령(820)

                           08:10-08:50    (식사,휴식)

                                     송전탑

                           09:40   깃대봉(1014.8)           3.6km

                           10:10   샘터-(10분휴식-우,급경사)

                           11:20   육십령(720)               3.07km 

                                                  7시간 20분    15.17km


12월 24일_토_22:00 

 신도림으로 향하는 몸과 맘이 왠지 무거운 탓은, 크리스마스이브를 홀로 보낼 물푸레에게 미안한 탓인가.

          "아부지^^많이 추운데 조심히 다녀오세요^^눈도 조심하시구^^메리크리스마스입니다요.."  

작은 아들의 정감 어린 핸펀 메시지와 함께 "추운 날씨에..."조심하라는 김대장의 격려 메시지를 받는다. 눈으로 뒤덮여 있을 호남지방을 향하여 산행을 나서는 오늘 밤은 강추위가 잠시 누그러져 다행이긴 하나 미리 알아본 바로는 무령재까지 차량 진입이 불가능하여 논개사당 부근에서부터 꽤 긴 시간 알바(?)를 각오해야 할 것 같다. 

 크리스마스 새벽의 고속도로는 매우 한가하다. 다들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모양이다. 오늘은 대원들 숫자가 많이 줄었다. 역시 명절이 낀 탓인가 보다. 출발 전 따뜻한 술국에 한 잔 이슬이로 불편한 찻 속의 자리에서 나마 두 시간 정도의 단잠을 맛보고 나니 벌써 일행을 실은 산행 버스는 대진고속도로 장수 분기점을 지나 장계면 국도를 달린다.(02:00) 26번 도로를 벗어나 논개 사당 앞 까지 그런대로 밀고 오르던 차량이 무령고개를 4km 정도 남겨둔 지승마을 입구에서 쌓인 눈길에 멈춰 선다.(02:20) 

 장수군의 으뜸 오지인 번암면 지지리로 통하는 무령고개까지의 743 지방도로는, 깊은 눈 속에 파묻힌 채 차량 오름을 거부하고, 그믐으로 향하는 달빛 아래서 동지 지난 차가운 밤을 밝히며, 새벽을 걸어 내려올 왼편 대간 마루금을 따라 길게 펼쳐져 어둠 끝으로 숨어든다.

 눈.. 눈... 눈.. 천지사방이 온통 새하얀 들판길에 서서 오늘 산행은 눈으로 시작하여 눈으로 끝날 것인가. 새벽 04:00, 돌릴 수도 없는 외길 국도에서 뒷걸음으로 수 km를 돌아내리는 산행 버스를 뒤로하고, 산행기점인 무령재를 향하여 눈으로 뒤덮인 국도를 터벅거리지만 경사가 조금씩 가파르니 꽤 미끄럽고 벌써 아이젠을 착용하기 시작한다. 

 산행거리가 짧아 7시간 정도를 가볍게 계획했으나 벌써 출발부터 한 시간 정도는 계획 차질이다. 워밍업 치고는 오르내림 없이 계속되는 이런 구간은 피로가 빨리 올 수도 있다. 발걸음은 빠르게 움직이나 페이스 조절이 되질 않아 시작 구간으로서는 별로 바람직하질 못하다. 무릎 정도 차오르는 눈밭의 국도길을 정신없이 서두르다 보니 어느새 등 쪽에서 땀이 흐른다.

 무령재 아래쪽 샘터 앞 주차장에 다다라(04:45) 잠시 숨을 고르며 겉 옷을 벗고 본격 산행을 준비한다. 아래쪽 장계면 마을이 눈 속에서 고요하게 불빛을 밝히며 따라 오른다.

 성스러운 대간길에 올라서기 전 발 씻기 행사를 치른 기분이다.                  

동틀 녘 977봉에서

12월 25일_일_05:00 

 깎아지른 무령재 왼쪽 언덕길을 조심스레 걸어 오르자니 추운 어둠 속에서도 진땀이 흐른다. 이 정도면 차라리 작은 터널이라도 만들어 영취산에서 뻗은 금남 호남 정맥의 장안산 줄기를 이어 줄 만큼 큰 구상을 할 수는 없을까. 어두운 고갯길을 뒤로하고 15분 정도의 된비알 오름에서 오늘 설산 진행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한다. 지난번 구간 하산 지점인 영취 산정을 향하는 발걸음들이 급경사에서 미끄러짐을 계속하며 겨우 산정에 도달하니, 다행히 바람이 세차진 않다. 이미 온몸이 땀에 젖기 시작하고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 늦은 출발이다 보니 선두 조는 쉴 틈 없이 덕운봉 쪽으로 내려 밟으며 눈 쌓인 대간 길을 러셀 해 나아간다. 

 십여분 급경사 계단길에서 몇 번의 슬라이딩을 맛보며 다소 평탄한 능선길에 다다르니, 쌓인 눈들이 북서풍에 밀려 올라 대간길 마루금에서 유난히 높게 작품을 이룬다. 키 작은 산죽이 잎 끝을 내미는 것으로 보아 1m 정도는 충분히 쌓인 눈이다. 다행스레 일 주 전쯤 지나간 것으로 추정되는 대간 행렬의 앞선 자욱이 있어 선두 조의 러셀이 한결 도움을 받는다. 가끔씩 끊어지기도 하지만 평소의 대간길에서 약간씩 벗어나며 마루금 오른쪽 왼쪽을 번갈아 눈밭을 피해 나간다. 요령 있게 나뭇가지 사이로 러셀 해 놓아 깊이 빠지지 않아서 좋긴 하지만 어둠 속에서 배낭 뒤끝을 낚아채는 가지들 때문에 어지럽다. 


12월 25일_일_06:05 

 좌우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나아가는 발 앞은 온통 하얀 눈뿐이니 아무런 생각이 없다. 한 시간여를 정신없이 밟아 나아가니 작은 봉우리에 닿았으나 표지석이 눈에 묻혀 보이질 않는다. 마주 보이는 덕운봉(956m)을 보고 서덕운봉임을 짐작하며 잠시 숨을 고르며 내려다보니, 어둠 속의 오른쪽 금당리 추상, 추하 마을이 손에 잡힐듯하다. 논개의 출생지와 사당은 왼편 장수군 궐촌(주촌) 마을에 있으나, 그 무덤은 경남 함양에 있으니,

진주에서 옮기던 혼백이 이 고개를 넘지 못할 까닭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억새 숲 러셀


12월 25일_일_07:30 

 서덕운봉(950)에서 왼쪽으로 잠시 내려 딛은 후 암릉 길이 나타나고 전망바위를 지나 말궁굴재에 내려서기 까지는 마루금을 지그재그로 피하면서 위험한 슬립을 방지하기 위해 조심스럽다. 이후로 이어지는 눈 덮인 억새 숲은 오히려 눈길 다지기가 편해서 길섶을 걸으니 모처럼 편하다.

 조금씩 밝아 오는 새벽을 느끼며 977봉을 향하는 오름 길에서 다소간의 여유를 찾으며 페이스를 늦추고 뒤로 처지니 갑자기 허기를 느낀다. 아침 식사는 어느 눈밭을 다지고 앉을 수 있을까. 


 1950년 한 여름, 이 땅에 갑작스런 포성과 함께 일어난 전쟁이란 것이, 결과적으로 타민족에 의해 얻어진 것으로 치부된 해방이라는 떡을 놓고, 정신없이 사분오열하며 개처럼 으르렁대며 달겨 들던 정치꾼들이 잠시 멀리 부산으로 쫓겨 내려간, 그해 여름 서울은 공산 혁명의 구호 아래 팔뚝에서 새로운 해방을 준비하는 듯이 또 한 번 정신을 뒤흔들었다.
 갓 서른 살의 평범한 지식인 K노인 등, 대부분의 시민들은 폭파된 한강교 북쪽에서 대책 없는 흐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민족, 사상.. 잘난 어르신들... 조선시대 말년에 양반집에 태어나 잘난 교육으로 잘 다져진 소위 선각자들.... 일제 36년 동안에도, 빼앗긴 나라의 바깥에서... 중국으로 러시아로 떠돌면서도, 임시정부의 위치를 한성에 뺏기지 않으려고..."
 K노인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지기 시작하며 깊은 한숨이 뒤따른다.
 "그리 잘 지켜온 자존심들이.., 그리 목숨을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건국이념들이... 같은 민족의 탱크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며 앞서 부산으로 대구로 도망가는 그 훌륭한 정치꾼들.... 그래 놓고서는 나중에 뭐라고...."
 정치 현실 앞에서, 피난을 생각지도 못한 채 멍한 상태의 일반 시민들에게 적 치하의 부역이니, 사상이니 따져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일제하에 태어나, 그들의 의도된 교육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젊은 시절의 허기진 가난 속에서 민족혼을 일깨울 차원 높은 교육은 고사하고, 지식기반의 민족적 자각을 당연스레 느낄 환경을 가질 수 없었던 평범한 젊은이들이, 일본 패전의 결과로 갑작스레 다가온 해방정국의 물결 속에서, 또 한 번 소용돌이치는 서울의 석 달 남짓 한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석 달 숨어 지내고 석 달 우왕좌왕하다가, 그 해 겨울 재차 피난령이 내려진 서울의 성탄 전야는 어떠했을까... 명동 성당 앞 진고개 식당에서 마주한 신흥전문 직원의 도움으로 우선 택한 첫 피난지 여주 땅을 향하여 광나루를 건넜으나, 1951년 1월의 한 겨울은 유난히도 매서운 추위와 폭설이 엄습하여 양식 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어린 딸과 아내, 어머니 이렇게 네 식구에 불과했지만, 연고 없는 객지에서의 피난살이는 결국 오래 버티질 못했다. 
 그 해 봄이 채 오기도 전에 군산 땅 시집 동네로 양식을 구하러 떠났던 K노인의 모친은, 평소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주던 고집스런 원망을 접은 채, 결국 한을 품고 떠났던 군산 포구에서 젊은 작은 마님의 무릎에 머리를 누이고 갑작스런 뇌출혈로 49세의 굴곡을 마감했다.  


산죽 군락 지대를 지나며 눈앞을 스치는 댓잎 눈보라가 보석처럼 빛나는 느낌을 받을 즈음 고개를 들어 오른쪽 지리산 끝 자락을 향하니 부시시 떠오르는 일출을 잠시 본다. 이제 9월 초부터 넘나들던 지리산 자락을 금년 한 해와 함께 당분간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언제 또 돌아 내리며 밟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민령, 깃대봉을 바라보며

12월 25일_일_08:00 

 덕운봉을 내려선 지 한 시간이 훨씬 넘도록 긴 러셀 끝에 977봉을 돌아 민령으로 내려서는 숲길은 싸릿가지 숲을 잘 이용하여 깊은 눈은 다행히 피해 나아갈 수 있으나, 마루금을 비켜 걷는 경사길에 이루어 놓은 러셀이 길어질수록 한쪽 다리에 힘이 가해지니 무릎에 이상이 올까 봐 두렵기도 하다. 어느 정도 지그 재그를 이루는 앞선 조의 눈밭 개척에 감탄스럽다. 

 오늘의 주봉인 깃대봉이 보이고 그 아래 어디쯤이 민령 고갯길이 아닐까 하고 좌우를 살펴보지만 희미한 눈 길로서는 좌우를 잇는 고갯길을 짐작하기가 어렵다. 조금씩 흐려지는 하늘이 금세 눈발이라도 내릴 듯이 구름을 짙게 드리우기 시작하며 서북쪽에서 약간씩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좌우 산간 마을 어디에선가 마을 방송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온통 흰색의 천지에 내려다보이는 梧桐堤(대곡저수지)만이 푸르다 못해 검은빛으로

논개 생가를 삼킨 채 넓고 고요하다.

 논개 생가 사거리로 이름 지어진 민령에 내려섰으나 마땅히 자릴 잡고 식사할 곳은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다복솔 나뭇가지 몇 개를 꺾어 눈밭에 깔고 앉아 그나마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직은 눈발은 날리지 않으나, 맑던 하늘이 검어지면서 땀에 밴 몸들이 잠시 휴식에 추위로 스며드니 아침식사를 서둘러 끝내고 선채로 커피 한 잔을 마시니 꿀맛이다.

깃대봉에서


12월 25일_일_08:50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깃대봉을 향해 오르는 발걸음들이 무척 무거워 보인다. 평소보다 힘들게 지쳐온 눈밭 산행이 가져온 피로가 역력하다. 계획대로라면 오늘은 대간길 중에서 가장 짧은 구간으로 일찍 끝내고 전주쯤에서 따뜻한 온천과 조촐한 망년 파티라도 즐길 수 있었으련만. 아무튼 크게 시간상으로는 지체함이 없으나

체력들을 많이 소진한 것 같다. 미리 숙지한 서낭당 돌무덤은 눈 속에 파묻혀 자취도 없다.

 금당리에서 오르는 길섶 철탑을 지난 후 이어지는 키 큰 산죽 대밭에 들어서니 차라리 눈밭이 편하다고 여길 만큼 깊은 조릿대 숲을 30분 이상 헤쳐 오른다. 아침시간을 지나서 망정이지 어두운 새벽이라면 영락없이 길을 잃고 헤매기 십상이다. 이 깊은 숲 길에서 홀로 떨어져 헤쳐 나가는 잠시 동안, 어린 시절 창녕 땅 홍의 장군 성터에서 헤지는 줄 모르고 놀다가, 걸음 빠른 형들이 사라진 산길을 홀로 걷든 기억이 새롭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린 시절 용기를 내자고 품었던 내 속의 작은 영웅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조심스러운 인내와 부딪히지 않는 절제로 잘 피해 온 내 삶들이 과연, 내 자유롭게 찾고자 하는 그것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일까.

 갑자기 오르는 힘으로 엉킨 산죽 가지를 힘차게 헤치고 나아가, 깃대봉 남쪽 사면에 다 달아 눈으로 막힌 직진 길을 피해 오른쪽으로 돌아 북쪽을 향하니 확 트인 전망을 보이는 깃대봉 정상(1014.8)에 올라서서 배낭을 잠시 벗는다.(09:40)

 지나온 영취, 백운봉을 뒤돌아 보고, 북으로 마주하는 할미봉과 이어지는 서봉 덕유. 한 달 전 먼저 끝낸 덕유 종주가 새삼 감회스럽고, 새벽 밤길에 오르든 그 힘들었던 남덕유 대간 능선이 아름답게도 하얀 눈으로 단장하고 다시 오르라고 유혹한다.

깃대봉을 돌아보며

12월 25일_일_10:10 

 깃대봉 북사면 내림길을 십여분 돌아내려 와 오른쪽 급사면을 향하기 전에 뒤돌아본 설화의 장관에 감탄을 연발하며, 이제 마지막 높은 봉을 지나온 긴장도 풀며, 잠시 선물 받은 소녀처럼 환한 만족을 표한다. 그렇다, 눈에 보이는 이것이 우리가 찾는 자유 중에 하나일까, 뭐 그리 대단할 것 같지도 않은 이 작은 보람을, 이 순간을 위해 밤새도록 힘든 발걸음을 옮겨온 것일까. 또 다른 뭔가가 있을 테지. 그래서 또 돌아 내린다. 

 오른쪽 급경사 길에서, 공터처럼 넓게 펼쳐진 샘터 윗 마당에 아예 온몸을 눈 속에 던지듯 미끄러져 내리는 지친 산꾼들의 표정은 대 만족이다. 눈 속에 파묻힌 채 영원히 잠이라도 들 수 있을 만큼 설원을 만끽한다. 눈 속에 세상 더러움을 다 파묻고 싶은 게다. 십여 분간 온통 흩어지고 모이며 정을 나누는 사진 촬영을 즐기다 보니, 지쳤든 발걸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학교 운동장을 뛰노는 강아지들 마냥 활기가 솟아난다. 


"약수터에서 목을 추기는 길손이시여!

 사랑하나 풀어던진 약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물에서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니다.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물에서 여유로운 벗이 산임을 인식합니다." 


이리도 아름다운 곳에서 시인 안되면 바보지...

육십령 샘터


12월 25일_일_11:20 

 샘터를 아쉬운 듯 뒤로하고 천천히 삼십 분여 마지막 오르내림 끝에 육십령 26번 도로가 보이는 안부에 올라선다. 비단 대간꾼들에게만 중요한 나들목이 결코 아닌 이곳 발아래로 대진 고속도로의 터널이 생긴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옛날 고갯길의 역할이 터널로 이루어 짐은 현대인에 당연할진대. 자연 훼손의 명분으로 여러 가지 반대 의견도 많으나, 어차피 소통을 시켜야 할 길이라면 언덕을 깎아지르는 공사보다는 터널이 생태에 미치는 영향이 적을 것 같다는 문외한의 생각이다. 

 선두 조를 놓친 걸음이 점점 느려지며 덕유-지리의 마지막 구간을 깊이 새겨본다.


모친의 장례를 황망히 치른 K노인은 결국 장기화되는 전쟁의 조짐을 알고 두 식구를 이끌고 부산으로 내려갔으나, 1951년 피난 중 부산에 자릴 잡은 신흥전문은 재정형편의 어려움으로 교직원들의 생계마저 여의치 않은 상태에서, 학위 판매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다. 
 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시영은 노환과 정치적 혼란 속에서 신흥대학의 꿈을 초기에 접고 조 모 씨에게 넘기는 꼴이 되었고, 훗날 전쟁의 끝자락에 부산 동래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피난지 부산의 부민동 법원 거리 주변은 정치꾼들의 바쁜 발걸음으로 여전히 분주했고 서울 명동을 옮겨 놓은 듯한 광복동 거리 부산극장엔 국회가 시끄럽게 열리고 있었고, 대부분 60을 넘긴 노회 한 독립투사 출신 정치인들의 사분오열된 사상 논쟁은 전쟁을 잊은 듯, 오직 이승만 대통령과의 권력 투쟁 노선에만 매달렸다.
 어쩌면 일제 36년의 단절은 비록 역사의 단절로 끝남이 아니라, 새로이 받아들인 서양 민주주의의 실험과 정치적 역량을 이어갈 세대의 단절이 30년 이상 긴 협곡을 이루고 있었다. 그 결과로 이제 정치에 입문하려는 광복 세대인 20-30세 젊은 비서들의 노선은, 오직 자기가 모시는 투사 어른의 한 마디 한 걸음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이후 오늘날 3김 시대를 지나는 지금까지도 민주 사회의 지식기반에 기초한 정치가 아니라, 지연, 학연 따위의 줄 서기에 비롯된 패거리 정치로 남게 된다.
 그나마 정치와 사상의 남북 합작을 이루려던 중도 정치인들의 꿈은 전쟁 포화 속의 회색 연기로 사라지고, 이후 급진 좌파, 우파만 살아남은 정치 현실이 되었다. 마치 생명을 담보한 전쟁 이후 세대들의 생존 전략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이념 세탁의 세월이 시작되었으니, 이로부터 이 땅의 여린 민주주의에 상처를 입히며 등장할 급진 세력들의 쿠데타, 혁명 등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
동족상잔의 더 큰 비극이고 긴 시간의 치유를 요할 깊은 병으로 진행되는 무모한 이념 세탁의 결과로 양민 학살의 씻지 못할 사건들이 도처에 진행되고, 1951년 여름엔 드리워진 깊은 장마구름만큼이나 암울한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다.
 그즈음 부산에서의 정치 소용돌이에 이 땅의 젊은 지식인이 대부분 휩쓸려 드는 상황 속에서, K노인은 자신의 역량으로 어느 한 줄을 잡고 버티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가까스로 탈출의 행운을 잡은 것이 시골 초등학교 교감 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이 땅의 한 많은 설움이 쌓여 있는 덕유 지리의 마루금을 올해 마지막 4개월 동안 넘나들며 나는 무엇을 느끼고 배운 것일까. 앞으로 나아갈 소백, 태백, 설악의 산마루와 계곡들에서 밀려 올 또 수많은 영혼들에게서 어떤 역사를 듣고 배울 수 있을지.

설암

           

12월 25일_일_12:20 

 육십령 휴게소에서 1시간여의 아쉬움을 달래며 긴 시간 후에 다시 찾을 이곳의 얘기들을 정리해 본다.

 첫째, 함양 안의에서 고개까지 육십 리요, 장수에서 고개까지가 육십 리라.

 둘째, 60개의 고개가 꼬불거리며 이루고 있다.

 셋째, 산적이 많아 육십 명이 모여 넘어야 한다. 

 아무튼 재미있는 얘기지만 역시 피적래(避賊來)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셋째 이야기가 그럴듯하고 뭔가 이어지는 얘기가 많을 것 같다.

 언젠가 군장동 마을, 안개꽃 재배단지의 김창렬 할아버지의 전설 같은 얘기도 들으며 하룻밤 묵어 갈 육십령 식당을 뒤로한 채 장계 마을로 꾸불거리며 지리-덕유를 아쉽게 떠난다.

12/27 배 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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