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벨트

12가지 분홍색을 정확하게 구분하는 사람들

by 작은달

"움벨트"


'각 생물체마다 고유하게 갖고 있는 감각기관과 인지체계를 통해 바라본 주관적인 세상'

을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 종이 같다면 공통되는 세계를 살아간다.


마치, 주변의 열을 감지하고 열의 분포를 이미지로 그려내는 '뱀들'의 세상에서는(비록 특정 사물의 본질이 완전히 다르더라도) 열분포가 동일하다면 같은 사물로 받아들인다던지,


배경색 안에 다른 색의 물체를 섞어놓으면 구분하기를 어려워하는 '고양이들'의 세상에서는 본인들이 색약이라는 자각조차 없으며,


자기들끼리 소통하는데 아무런 불편함을 못 느끼는 것과도 같다.


같은 맥락으로,

'인간들'은 내가 노란색이라고 바라보는 세상이 상대방의 눈으로도 똑같은 노란색일 것이라고 굳건하게 믿으며,

인간들의 움벨트는 동일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감각기관이 특출 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가령,

같은 그림인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간할 수 있는 그림 속 분홍색은 3가지에서 많아야 5가지이나,

100명 중에 한두 명의 특출 난 사람들은 12가지 이상의 분홍색을 명확하게 구별한다던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혹자는, 세상이 그렇게나 복잡해 보이니 사는 게 피곤하겠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분명하게 다른 12개의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안타깝다고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같은 인간들이더라도 각자가 바라보고 느끼고 인식하는 움벨트는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시로, 선천적으로 앞이 안 보이는 사람을 마냥 안타깝게만 바라보는 것이 맞을까?


그들의 세상에서는 시각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나머지 감각기관들을 이용해서 본인의 세상을 구축하고 살아갈 뿐이다.


반대로, 후천적인 사고나 질병으로 시각을 잃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구축된 움벨트가 무너지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이들에게는 평행하고 길게 뻗은 복도를 그림으로 그리라고 하면,

멀어질수록 복도의 폭이 좁아지도록 그리지만,

전자의 사람들은 아무리 멀어지더라도 그림에는 평행선을 그릴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지구상에 한정해서, 인간이라는 최고 고등생명체의 지적인 수준은 움벨트를 허물어버릴 정도로 넓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맨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외에도 우리가 직접적으로 감지하지 못하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 버리기 때문이다.


예컨대, 소리는 공기라는 매질을 고유의 파동으로 진동시켜서 전달되는 것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밝혀냈기에, 우리가 듣지 못하는 소리도 분명히 존재한다던지,


빛 또한 전자기로 이루어진 파동이 전달되는 것이기에,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빛이 존재한다던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움벨트의 존재를 인식해 버린 시점에서 인간들에게는 움벨트가 더 이상 고정된 틀이 아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선인들의 지혜를 읊어본다.


'직접 보지 않은 것은 믿지 않되, 보이는 것 또한 다가 아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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