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이해를 바라야 할 때
“우리 엄마는 내가 노는 꼴을 못 봐요”
대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친 후 1년간 휴학계를 내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던 시절,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내게 건넨 말이다. 평소 조잘조잘 본인의 하루를 소상히 이야기해 주던 아이가 그날따라 유독 시무룩해 보이길래 무슨 일이 있었느냐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었다. "태권도 학원을 가야 하는 날인데, 미술 학원을 갔어요." 하교 후 학원을 요일별로 다르게 다니다 보니 착각을 해서 하루의 스케줄이 완전히 꼬여버린 모양이었다. 태권도도 못하고, 미술 수업도 못해서 하루가 엉켜버린 속상함과 더불어 엄마에게 혼날 것 같아 미리 걱정하느라 한숨만 내쉬는 아이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위로는 별로 없었다. 엄마도 이해하실 거라고, 어른들도 가끔 요일을 착각하기 마련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지만 여전히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내가 노는 꼴을 못 본다니. 겨우 열 살짜리 아이가 하는 말이라 너무 안쓰럽고 짠했다. 하교 후 운동장에서 어울려 뛰어노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학원을 향하는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함께 뛰어놀고 싶은 그 마음이 학원을 여러 군데 등록해 두고 소위 말해 ‘뺑뺑이’를 돌게 한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을 거다.
그러나 그렇게 스케줄을 짠 어머니의 마음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워킹맘인 데다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아이가 집에 와서 오후 내내 의미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아이의 등하교를 도와주고 하교 후 부모님의 퇴근 시간 전까지 돌봐 주시던 시터 할머님이 계시기는 했지만 아이의 교육까지 챙겨 주시기엔 무리가 있던 상황이었다. 지인분께 소개를 받아 나와 처음 과외를 시작하게 되어 어머니와 면담을 할 때도 이 과외가 아이에게 학습을 시키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고 하셨다.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거나 알림장을 체크해 주고, 함께 책을 읽어주는 등 함께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많이 나눠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때는 나도 20대 초반의 대학생이었던 터라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오히려 학습 능력 향상에 대한 부담이 없어 좋았기도 했고), 내가 워킹맘이 되어 보니 그 어머니의 마음과 바람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어머니는 사실 본인이 직접 그 시간을 함께 하고 싶으셨을 것 같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지 몇 달 뒤에 코로나 시국에 들어섰다. 모두가 혼란스럽고 모두가 어떤 방법인지 최선인지도 모른 채 그저 코로나 바이러스가 피해 가길, 마주하더라도 가볍게 지나가길 바라던 때에 고작 두 돌이 갓 지난 아이는 매일 어린이집에 등원해야 했다. 어린이집에서는 가정 보육을 권장하기도 했고, 워킹맘이어도 재택근무가 가능한 분들은 가정 보육을 겸하며 모두가 어려움을 견뎌내던 시기였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부부는 재택근무가 불가능했고(회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우리 아이는 꼬박꼬박 출석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아이가 등원 후에 기분이 조금 가라앉아 보여서 안아주면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엄마가 보고 싶어서요.”라는 말과 함께 눈물만 글썽였다는 것이다. 그 나이 때 아이들처럼 엉엉 울어도 될 법한데, 눈에 가득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으며 선생님께 폭 안겨 있었다는 거다. 저녁에 퇴근하시면 아이 많이 안아주라고, 위로해 주라고 전해주시는 말씀에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어린아이가 이 상황을 이해해 주기 바라는 것도 무리였고, 친구들은 어린이집에 많이 안 나오는데 본인만 매일 나가서 심심하게 혼자 놀이해야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을 테고, 그것을 아이가 알아듣도록 설명해 주는 것조차 말이 안 되는 나이였다. 그때의 엄마의 선택과 상황을 아이가 알아주고 이해하려면, 아이가 엄마의 나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속이 상했다. 이런 상황들이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이후 성장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답답하기도 하고. 나중엔 우리 아이도 ‘엄마는 내가 노는 꼴을 못 본다’고 한탄할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열 살짜리 꼬마 아이에게, 엄마는 네가 노는 게 싫어서가 아니라 안전하고 의미 있게 하루를 보내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그랬다는 것을 지금의 나라면 조금 더 자세하고 다정하게 설명해 줄 수 있었을 텐데. 괜히 아쉬운 마음이다. 이제는 그 아이도 성인이 되었을 테니 지난날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까? 여전히 엄마의 과한 욕심으로 기억할까? 사뭇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자세하고 다정한 설명을 우리 아이에게도 조곤조곤 잘 말해줄 수 있을지도 나의 큰 숙제다. 아이는 과연 나의 마음을, 엄마의 입장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여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