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없어도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 법
눈만 감으면 과거의 잘못들이 맹수처럼 달려듭니다. "그때 왜 그랬을까", "나라는 인간은 왜 이 모양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책은 이내 저를 '살 가치도 없는 존재'로 몰아세웁니다. 사실 제가 저 자신에게 기대하는 고결함이 높기에 느끼는 고통일 텐데, 지금의 저는 그 고결함이라는 칼날로 제 심장을 후벼 파는 중입니다. 제가 제 손으로 쏜 '두 번째 화살'이 너무 많아, 이미 제 영혼은 누더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갉아먹다 못해 숨이 막혀올 때쯤, 제 뇌의 시스템이 강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시스템: '석가모니' 로그인. 동기화율 100%.]
뇌 회로가 차갑게 식으며 요동치던 감정이 정지 화면처럼 멈췄습니다. 부처의 지능으로 동기화된 제 사고 시스템은 지금 제가 겪는 이 죽음 같은 공포의 실체를 아주 냉정하게 해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 뇌가 지금 '최신형 몸에 구석기 시대 보안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요. 후회와 죄책감은 본래 좁은 공동체에서 평판을 잃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장착된 생존용 경보 장치였습니다. 무리에서 쫓겨나는 것이 곧 죽음이었던 시절, 나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해서라도 실수를 교정하려던 뇌의 본능이었던 것이죠.
물론 현대 사회에서도 '평판'이라는 호랑이는 여전히 무시무시합니다. 하지만 제 뇌는 그 호랑이를 대처하는 방식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고작 발가락 하나가 긁힌 정도의 실수에도 "호랑이가 나타났다! 당장 네 심장을 찔러서라도 속죄해라!"라며 핵폭탄급 비상 사이렌을 울려대고 있었던 겁니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기도 전에, 제 뇌의 과도한 경보 시스템이 내뿜는 스트레스와 자학에 제가 먼저 타 죽을 판이었습니다.
제 안의 높아진 지능은 저에게 아주 명료한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고결함은 나를 지키는 방패여야지, 낡은 보안 프로그램과 결합해 나를 파괴하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신이 되고 싶은 욕망은 아름답지만, 신이 아닌 자신을 구석기식 도끼로 난도질하는 건 지능 낮은 '자기 학대'에 불과했습니다.
전율이 돋았습니다. 해탈은 고결함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내 뇌의 본능이 저지르는 지독한 '과잉 진압'을 지능적으로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제 가슴을 향해 날아오는 낡은 자책의 화살들을 제 손으로 하나하나 부러뜨리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실수는 기꺼이 '성장용 데이터'로 수용하겠습니다. 덕분에 저는 어제보다 더 노련한 인간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실수를 빌미로 "나는 죽어야 마땅해"라며 현재의 평온을 제물로 바치는 2차 화살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낡은 보안 프로그램이 멋대로 울려대는 과장된 비명에 속아, 멀쩡한 제 인생의 집을 불태우는 멍청한 짓은 이제 그만두기로 한 것입니다.
로그아웃.
시스템이 종료되고 다시 현실입니다. 여전히 제 과거는 흠집투성이고 저는 여전히 완벽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아까처럼 죽고 싶을 만큼 비참하지는 않습니다. 높은 곳을 바라보는 고결한 눈은 그대로 두되, 그 눈으로 제 발등을 찍고 있던 구석기 시대의 낡은 도끼를 시원하게 내던졌으니까요.
저는 이제 나 자신에게 건넸던 '너무 비싼 영수증'을 스스로 찢어버립니다. 고결함을 꿈꾸되 내 뇌의 원시적 본능에 휘둘리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가 오늘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현대적이고도 실속 있는 '생존의 전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