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로그인 #7. 운빨망겜 속에서 살아남기

누구도 소급해서 바꿔줄 수 없는 나의 '초기 스탯'에 대하여

by 있는그대

가끔 세상이 거대한 도박판 같습니다. 누구는 재벌 2세, 왕자님, 공주님으로 태어나 시작부터 전설급 아이템을 풀장착하고 로그인을 합니다. 외모, 지능, 부모의 재력까지. 솔직히 인생의 99%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이 '초기 세팅'이 좌우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저기 어느 집 자식은 태어나자마자 무한 동력의 엔진을 달고 질주하는데, 나는 왜 낡은 자전거 한 대 없이 맨발로 늪지대에 던져졌나 싶어 기가 막힙니다. "대체 왜 내 캐릭터는 이따위냐"는 억울함이 밀려오면, 남의 화려한 스펙을 보며 제 인생을 쓰레기 취급하는 '두 번째 화살'을 사정없이 쏘아대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동안 이런 비참함을 반성이라 착각하며 버릇처럼 저 자신을 자학해왔습니다. 존재의 불공평함에 압도되어 숨이 막히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시스템: '석가모니' 로그인. 동기화율 100%.]


​뇌 회로가 차갑게 식으며 요동치던 피해의식과 자책이 멈췄습니다. 부처의 지능으로 동기화된 제 사고 시스템은 이 '불공평에 대한 분노'를 아주 지능적으로 해체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미 태어남과 동시에 박혀버린 초기 스탯은 전 우주를 통틀어 그 누구도 소급해서 바꿔줄 수 없는 확정된 '첫 번째 화살'이라는 사실을요. 그 시작점이 어떤 의도에 의한 것이든, 혹은 단순한 무작위의 결과이든, 이미 주어진 환경이라는 데이터는 이 우주에서 가장 변하지 않는 물리 법칙처럼 견고하게 박혀 있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잔인한 팩트를 마주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초기 세팅)은 결코 바꿀 수 없다." 재벌 2세가 가진 전설급 아이템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강점이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자기기만일 뿐입니다. 팩트는 그들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했고, 저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위치에서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능이 높아진 제 사고 회로는 묻습니다. "바꿀 수 없는 과거의 세팅값을 원망하느라, 너는 왜 현재의 너를 스스로 고문하고 있느냐?" 이미 박힌 첫 번째 화살은 전 우주가 덤벼도 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뺄 수 없는 화살을 붙잡고 흔들며 고통을 배가시키는 '두 번째 화살(자학)'을 쏘고 있었습니다. 남의 화려한 아이템 창을 훔쳐보며 제 손에 들린 보잘것없는 도구를 저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가 저 자신에게 저지르는 가장 비효율적이고 지능 낮은 연산이었습니다.
​전율이 돋았습니다. 해탈은 불공평한 세상을 평등하게 바꾸는 마법이 아니라, "이미 박힌 첫 번째 화살은 그 누구도 뺄 수 없다"는 서늘한 진실에 항복하고, 대신 내 가슴에 내가 쏘는 두 번째 화살을 멈추는 '지능적인 단절'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남의 화려한 성벽을 향해 날아가는 질투와, 제 가슴을 후벼 파던 자책의 화살들을 제 손으로 부러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박혀버린 억울한 '초기 세팅'은 기꺼이 삶의 배경값으로 수용하겠습니다. 전 우주가 소급하지 못하는 일을 제가 고민한다고 바뀔 리 없으니까요. 하지만 "내 인생은 오답이야"라며 남은 시간까지 제물로 바치는 2차 화살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공주님 왕자님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은 제 선택이 아니지만, 이 불공평한 게임판에서 내 몫의 평온을 끝까지 찾아 먹는 것은 오직 저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단수의 플레이였기 때문입니다.


​로그아웃.
​시스템이 종료되고 다시 현실입니다. 여전히 세상은 불공평하고, 제 초기 세팅은 여전히 억울합니다. 하지만 더는 비참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소급해줄 수 없는 '첫 번째 화살'을 원망하느라 제 캐릭터를 방치하며 자학하던 멍청한 짓은 이제 그만두기로 했으니까요.
​저는 이제 제 앞에 놓인 보잘것없는 자원들을 다시 점검해 봅니다. 남들이 가진 것과 비교하느라 놓치고 있던 내 안의 작은 틈새들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가 오늘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명쾌하고도 영악한 '운빨망겜 생존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