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가 채 되기 전에 집을 나섰다. 로드 마스터 ( 항공 화물 탑재 관리사 ) 업무 특성상 오전 오후 교대 업무를 한다. 오늘은 오전 근무다. 쌀쌀한 새벽공기 냄새가 정신을 맑게 한다. 김포 풍무동을 출발해서 검단 신도시를 지났다. 아내가 챙겨 준 따뜻한 커피와 홍루이젠 샌드위치를 운전하면서 먹었다.
근무지인 영종도로 가기 위해선 서해를 가로지르는 영종대교를 건너야 한다. 어둠에 싸인 거대한 영종대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차창 밖 오른편에 검은 갯벌이 펼쳐지고 검푸른 바닷물이 느릿느릿 출렁거렸다. 어둡고 차가운 날씨에 바다 위 다리를 건널 때에는 조심해야 한다. 혹시나 모를 대교 도로 위 블랙아이스와 서해를 번갈아 쳐다보며 천천히 운전했다. 늘 해운대 바다를 보며 자란 덕에 서해를 볼 수 있는 출근 길이 행복하다.
영종도 운서동에 위치한 화물 터미널에 도착했다. 아직 어슴푸레한 새벽이지만 화물 청사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집이 먼 직원들은 화물 청사에 마련된 숙소에서 잠을 잔다. 전날 오후 근무를 한 직원들이 하나둘씩 1층 수출화물파트 사무실로 내려왔다. 각자 부여된 항공기 편명을 숙지하고 곧 업무에 몰입한다. 다들 신경이 날카롭다.
나는 항공기 로드 마스터 업무를 하기 위해 OJT를 받고 있다. 2년 전 즈음 이 업무를 했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므로 일정기간 전문 지식을 익혀야 한다. 같은 회사에 다니지만 여객과 화물 업무는 특성이 확연히 달라서 새 직장에 취직한 기분이다. 근무 환경도 여객은 이른바 여직원들이 많은 여초 회사이지만 화물은 남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특히 내가 배속된 수출화물파트의 로드 마스터들은 씩씩한 남직원들이 주류를 이룬다. 흡사 고성이 생활화된 옛날 군대 내무반 ( 생활관 )이나 강력계 형사 사무실 같은 분위기.
로드 마스터 업무는 항공사에서 아주 전문적인 일이다. 예를 들어 여객 관련 부서가 항공기의 윗부분을 담당한다면 화물 본부는 일반 사람들에게 생소한 아랫부분을 책임진다. 항공기는 여객기와 화물기로 나뉘는데 특수 화물과 많은 양의 화물은 화물기에 실리지만 여객기의 아랫부분에도 승객의 수하물을 채우고 남은 공간에 화물을 적재한다.
로드 마스터는 항공기에 화물을 어떤 방식으로 적절하게 탑재할 것인지 플래닝 하는 업무를 한다. 로드 마스터의 역량에 따라 안전하게 더 많은 화물을 탑재할 수 있다. 항공기 기종별로 탑재할 수 있는 양 ( 보잉 747은 100 톤 가량 )과 용기 ( 컨테이너 또는 팔레트 )가 다르고, 화물의 특성에 따라 취급하는 방법도 다르므로 전문적인 업무 지식이 필요하다. 위험물을 취급할 수 있는 자격증 ( DG )과 항공기 이륙 시 무게 중심을 산출하는 자격증 ( W/B )은 필수다.
100 톤을 실은 거대한 보잉 747 화물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을 나르는 웅장한 모습을 상상해 보라.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구름 속으로 솟구칠 것만 같은 그림.
탑재하는 화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2년 전 이 업무를 할 때 영국 에어쇼에 참가하는 우리나라 공군 특수비행팀의 블랙이글스 항공기를 분해하여 탑재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항공기에 항공기를 싣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이따금 돌고래, 곰, 말, 젖소 등 생동물도 탑재한다. 주야간 2교대로 수행하는 고된 업무 탓에 몸은 힘들지만 여객 부서에 비해 업무가 다채롭고 정말 재밌다.
어제 유럽 연합 ( EU )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의 합병을 승인할 방침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몇 년간 지루하게 끌었던 양사 간 합병 이슈가 드디어 결말을 향해 치닫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화물 본부는 우리 회사에서 떨어져 나가게 된다. 어느 회사가 우리 화물 본부를 인수할지 모르겠지만 열심히 일하는 동료 직원들의 건승을 진심으로 빈다.
사진 by 해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