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길 너머

붕괴하는 경계 위에서

by 마음을 쓰다

오창 집에서 청주공항까지는 차로 십오 분 남짓 걸린다. 십 분쯤 달리면 보통 키의 플라타너스들이 군악대처럼 도열한 길이 나타난다. 그 길을 지날 때면, 동화 속 문장 하나를 넘기는 듯 저 끝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은 설렘이 인다. 이내 여인의 허리자락처럼 유연하게 흐르는 미호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강이나 낙동강처럼 정비된 산책로와 시설물에 둘러싸인 강만 보아온 내게, 미호강은 꾸밈없는 얼굴로 다가왔다. 갈대가 바람을 따라 눕고, 물새 한 마리가 긴 다리로 강 위를 디디며 원을 그린다. 사람의 손길이 덜 닿은 강물은 묘한 침묵을 품고 있었다. 그 침묵 앞에 서면 문득 나 또한 이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러나 병풍처럼 펼쳐진 미호강을 지나 공항 초입에 들어서면 풍경은 급격히 달라진다. 왼편에는 한적한 논밭과 녹슨 철도가 놓여 있고, 오른편에는 대규모 공군 막사와 군용기가 위압적으로 늘어서 있다. 철책은 팽팽하게 경계를 긋고, 전투기들은 굉음과 함께 하늘을 가르며 치솟는다. 자연의 숨결 위에 문명의 긴장이 겹쳐지는 지점이다.


며칠 전, 동종업계 사람들과 점심 번개를 했다. 타지 발령으로 홀로 지내는 처지가 비슷한 우리는 막국수를 앞에 두고 공항 램프에서 벌어진 일들을 나누었다. 그곳은 항공기가 활주로와 청사 사이를 오가는 공간, 문명의 최전선이자 미호강의 야생과 맞닿은 가장 취약한 경계다.


이야기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말벌집과 고라니 사건’이었다. 램프에서 작업하던 직원이 수박만 한 말벌집을 건드려 응급실로 실려 갔고, 어느 날은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사무실로 뛰어들었다고 했다. 파티션 위를 펄쩍펄쩍 뛰던 고라니는 벽에 머리를 부딪쳐 피를 흘렸고, 결국 유해조수 처리반에 의해 끌려나갔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저렸다. 어린 고라니의 눈에는 공포보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혼란이 먼저 어렸을 것이다. 어디까지가 숲이고 어디부터가 인간의 영역인지, 그 작은 몸으로는 가늠할 수 없었으리라. 우리가 세운 경계는 인간에게만 명확하다.


문명의 편리함은 언제나 확장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인류의 생산력은 수천 년의 완만한 증가를 지나 최근 두 세기 사이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우리는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 속도를 지구는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강은 직선으로 정비되고, 숲은 도로로 갈라지며, 야생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고라니의 출현은 우연한 해프닝이 아니라, 무너진 경계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미호강 건너편에서 길을 잃은 생명 하나가 램프 위로 뛰어들었듯, 자연과 문명의 경계는 이미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흔들리고 있다.


결국 답은 되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를 맛본 인간이 과연 스스로 속도를 늦출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플라타너스 길을 지난다. 군악대처럼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분다. 강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고, 전투기는 또다시 하늘을 가른다.


내 삶은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플라타너스 길 너머의 고요한 물결인가, 아니면 피 묻은 램프의 콘크리트 바닥인가.


그 질문은 오늘도 미호강 위를 맴도는 새처럼 내 머리 위를 떠나지 않는다. 붕괴하는 경계 위에서, 인간이 붙들 수 있는 마지막 기도는 어쩌면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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