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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준 Oct 28. 2023

알라와이 골프장

취미

골프를 시작한 지 십 년 즈음된 거 같다. 하와이 주재원으로 있을 때 업무상 필요해서 시작했는데 요즘도 가끔 한다. 하와이는 날씨가 연중 포근하고 섬이라는 특성상 해양 스포츠를 포함해 몇 가지 취미 생활을 하기에 좋은데, 그중 하나가 골프다.


우선 골프 라운딩 가격이 한국에 비해 엄청 저렴하다. 호놀룰루 시에서 운영하는 퍼블릭 골프장 기준으로 라운딩당 그린피가 대략 이삼만 원 수준이다. 물론 회원제로 운영하는 비싼 곳도 있지만, 대체로 거주민이 이용하기가 수월한 곳이 대부분이다. 캐디가 따로 있지 않아 캐디피를 낼 필요가 없는 것도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골프를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다른데 있었다. 일반적으로 골프는 친분이 있는 네 명이 한 조를 만들어 라운딩을 한다. 그런데 집 근처에 있는 알라와이 골프장은 오는 순서대로 모르는 사람들과 한 조를 이뤄 골프를 한다. 이른바 전문용어로 백드롭 시스템이다. 나는 이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누구와 골프를 할지 두려움 반, 설렘 반이었다. 가끔 교포 사회 행사에서 동포들과 골프를 할 때는 하기 싫은 내기를 해야 하고 성가신 뒤풀이 자리도 가야 했다. 나는 기를 쓰며 하는 내기골프와 무한정 길어지는 뒤풀이가 싫었다. 내기 골프를 싫어하는 나를 소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귀담아듣지 않았다. 게임을 하면서 내 돈을 잃기도 싫지만 동반자의 돈을 따서 그 사람이 상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더 싫다.


그런 내 성향에 알라와이 골프장의 백드롭 시스템은 안성맞춤이었다. 전동 카트를 탈 필요도 없다. 수동 카트를 끌거나 그냥 골프백을 메고 걸어 다니면 그만이다. 주말마다 혼자 가서 모르는 사람들과 라운딩을 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점점 주말이 기다려졌다. 필요 이상으로 동반자들을 배려할 필요도 없고,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내 발자국 소리,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앵그리버드의 지저귀는 소리, 심지어 내 숨소리까지.


알라와이 골프장에서 겪었던 재밌는 일이 많았다. 혼자 처음 갔을 때 그곳의 룰을 몰라 내 차례도 아닌데 첫 홀 나갔다가 다시 끌려 나왔던 일,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머리에 공을 맞고 주저앉은 일, 라운딩 동반자가 댄스 교습가라며 즉석 시범을 보여줬던 일, 본토에서 이주한 백인에게 알라와이 골프장을 내가 안내했던 일.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 그런 골프장을 찾지 못해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비슷한 곳을 찾았다. 지금은 지방 발령으로 청주에 살아서 자주 못 가지만 집에 갈 때는 꼭 들린다. 이번 주 아내 생일을 함께 하기 위해 집으로 가면 다음날 갈 생각이다. 산속 깊숙이 자리한 그곳에 단풍이 한창일 것이다. 조금씩 설레는 마음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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