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를 읽고
한 시대의 진실은, 그 시대를 몸으로 살아낸 사람의 글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님의 『소금꽃나무』는 그런 글입니다. 노동자의 피로 적은 이 시대의 진실, 억압과 투쟁,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삶의 기록이자, 뼈와 살로 새긴 시대의 일기입니다.
2003년 부산역, “노동탄압 규탄 전국대회”에서 울려 퍼진 그녀의 목소리는, 단순한 분노가 아닌, 너무도 인간적이고 간절한 호소였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이라는 말은, 그저 시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그러나 그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수많은 노동자들의 숨죽인 외침이자, 이 땅의 착하고 우직한 이들이 품었던 꿈이었습니다.
그 꿈은 때로 박창수가 되었고, 김주익이 되었고, 배달호가 되었고, 크레인 위의 수많은 이름 없는 열사들이 되었습니다.
그 시대, 노동운동은 생존이었습니다.
임금 100만 원조차 받지 못하고도, 그것마저 가압류당해 12만 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했던 노동자들.
영하의 작업장에서, 쥐가 돌아다니는 합숙소에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회장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굴종을 거부한 사람들.
도시락에 쥐똥이 섞여 나와도, 감전사고로 온몸이 터져 죽어도, 아이들의 얼굴을 다시는 못 봐도, ‘그냥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민주노조의 씨앗이었고, 『소금꽃나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얼마나 그 덕을 보고 있는가.
8시간 노동제, 주 5일제, 산재보험, 출산휴가, 육아휴직, 최저임금.
오늘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제도들은 결코 자본이 선의로 베풀어 준 선물이 아닙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농성했고, 누군가는 해고장을 품에 안고도 싸웠으며, 누군가는 감옥에 갇히면서도 깃발을 놓지 않았기에 쟁취해낸 권리입니다.
김진숙 지도위원님이 지켜낸 전노협의 깃발, 그것은 지금의 민주노총이라는 거대한 산의 뿌리이자, 수많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로 세워진 깃발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는, 그 시대를 모릅니다.
때로는 민주노조를 구태로 여기고, 때로는 투쟁을 시대착오적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지금의 세대는 과거로부터 무엇을 계승하고 있는가?
역사를 잊은 조직은, 다시 그 역사를 반복합니다.
노동자의 연대가 사라질 때, 자본은 더욱 교묘하게 분열을 꾀하고, 더 교활하게 착취를 정당화합니다.
김진숙 지도위원님은 말합니다.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장애인, 여성노동자, 농민… 우리는 그들과 함께하고 있는가?
그들의 싸움에 내 싸움을 겹쳐보고, 그들의 절망에 나의 연대를 더하고 있는가?
『소금꽃나무』는 오늘의 세대에게 하나의 과제를 던집니다.
지금 우리의 싸움은 과연 그 시대의 희생을 잇고 있는가?
지금의 우리는 노동해방을 위해 얼마나 분노하고, 얼마나 단결하고,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
김진숙 지도위원님,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당신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깃발은, 우리가 세월 속에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깃발입니다.
당신이 외치셨던 “더 이상 죽이지 마라!”는 말은 단지 노동자의 죽음을 막는 외침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미래를 지키기 위한 선포였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말을 이어가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도 이 땅 어딘가에서 묵묵히 쇠를 벼리는 노동자들에게,
지금도 해고에 맞서 수십일, 수백을 고공에서 농성을 하는 동지들에게,
어제의 희생을 모르고 자라는 젊은 세대에게,
『소금꽃나무』는 단단한 울림이자, 결코 꺼져서는 안 될 불씨입니다.
우리, 다시 불을 붙입시다.
다시 깃발을 듭시다.
그리고 다시, 인간의 꿈을 꿉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