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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옹지마 Jan 30. 2023

이제 정말 퇴근하겠습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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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신기하게도 치밀어 올랐던 마음속 분노는 새벽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계속>


분노의 감정이 잦아들고 이성이 돌아오자 잠시 쓸데없는 복수를 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만 거창하지 기껏해야 술자리에서 뒷담화를 하는 정도지.'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기자 인맥을 이용하면 기사를 통해 병원의 막대한 지장을 주는 것도 가능했다.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또 다른 이유는 쓰디쓸 소주를 마시며 하는 직장 동료들과의 뒷담화는 속상한 마음이 풀리기는커녕 속마저 쓰릴 게 불 보듯 뻔할 것이고, 뒷담화 자리에서 나온 말들은 훗날 내 뒤통수를 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


또 언론에 흘려 기사화가 된다 하더라도 통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러운 기분만 들 것 같았다.


결국 '복수는 이로울 것 하나 없이 잃을 것만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날이 새고, 점심시간도 지나고, 다시 저녁이 되자 허리 통증은 많이 사라진 듯했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아직은 구부정한 자세였지만 조심스럽게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감사했다. 


어기적거리며 거실로 걸어 나온 나를 발견한 아내는 놀랐다는 듯 이마에 주름이 생길 정도로 커다랗게 뜬 눈으로 '괜찮냐?'라고 물었다.


"보다시피."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배가 많이 고프네. 밥 좀 차려줄 수 있어?"


아내가 차려준 식사를 마치 해병대 훈련병이 식사를 하는 모습으로 허리를 곧게 펴고 고개는 빳빳하게 쳐들고 통증과 싸우며 어렵게 마쳤다.


배에 음식물이 채워지자 기분이 한결 좋아진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내가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내는 어제와 오늘의 내 모습이 결코 허리 통증 때문만은 아닌 것을 눈치챈 거 같았다.


일요일 저녁 병원 부속실로부터 온 문자를 시작으로 병원장님과의 면담 내용까지의 일들을 혹여나 어머님과 아이들이 들을까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지만, 이야기를 듣는 내내 아내가 보내는 눈빛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로 애처로웠고 따스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가에는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내 몸은 그동안 쌓였던 피로를 풀어줄 자고, 먹고, 생각하고, 그러다 잠이 드는 언제도 해 본 적 없는 진정한 휴식을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5시였다. 


신기하게도 나를 괴롭혔던 허리 통증은 사라져 있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고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를 잡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며칠 동안 깎지 않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얼굴에 자라 있었고, 하얀 비듬이 군데군데 붙어있는 떡진 머리는 밖에서 보면 여지없이 노숙인의 모습이었다. 


샤워기를 틀자 차가운 물이 "쏴 아악"하고 쏟아져 나왔다. 


차디찬 물줄기는 몇 초의 시간이 지나자 온수로 바뀌며 희뿌연 수증기를 내뿜었다. 


오랜만의 샤워는 아침 햇살의 기운을 받아 활짝 고개를 쳐들고 꽃을 틔우는 나팔꽃처럼 나의 몸과 마음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청량감을 느끼며 생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사무실에 도착해 자리에 앉아 벽시계를 쳐다보니 바늘은 6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른손은 무의식 속 습관처럼 컴퓨터 전원을 켰다. 


새까만 화면은 금세 빛을 발하며 많은 폴더가 깔려있는 화면으로 바뀌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모니터를 멍하니 쳐다보다 불현듯 지난 이십 년 간의 소회를 적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회...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수첩과 다양한 홍보 관련 참고 자료들, 서랍 속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소품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수많은 명함으로 빈 곳 없이 들어차 있는 백 페이지 가량의 명함첩은 지난 이십 년간 홍보인으로서의 삶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명함첩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참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고 많은 도움을 받았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2003년 12월의 한 겨울, 대학교 졸업반인 저는 감사하게도 대전의 한 대학병원 홍보팀에 합격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저를 뽑아준 그분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분과 함께한 9년을 꽉 채운 세월은 홍보인으로서의 업무적 소양은 물론, 삶의 지혜까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귀한 시간과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 어느 봄날. 그동안의 배움을 꽃피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지금이 병원에서 홍보팀 일원이 되어 달라며 제의가 온 것입니다. 


당시 이 병원은 부족했던 홍보를 강화하기 위해 저를 필요로 했고, 그분은 응원해 주시며 흔쾌히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이 선물해 준 내 이름이 새겨진 볼펜은 아직도 제 양복 재킷 속 주머니에 꽂혀 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각 진료과장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직접 만나 각 진료과들의 장점을 찾아내고, 병원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의술과 의료진들을 다양한 언론과 홍보물, 온라인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알렸고, 광고에 부정적이셨던 경영자들을 3년 동안 설득해 광고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면 병원 구성들에게 0.01%의 작은 행복을 선물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혼자 보람찬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괜찮은 보도자료 아이템이 생각나면 자다가도 일어나 핸드폰에 저장했고, 아들과 딸이 아프면 최근 늘어나는 질환은 아닌지 진료과에 묻기도 했고,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급성신부전증으로 입원하신 아버지의 사례도 보도자료 아이템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가족들은 방송 단골 출연자였죠.


무엇보다 방송국과 거리가 가장 먼 병원임에도 기꺼이 취재를 위해 찾아주셨던 많은 기자분들은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분들입니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와 관련한 가짜뉴스로 병원에 큰 타격이 예상됐지만 촉박한 마감시간에도 불구하고 애써 보도해 주심은 큰 어려움 없이 해결될 수 있었던 잊지 못할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한 분 한 분 모두 제 기억에 저장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8년이 지난 지금. 당황스러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CS팀(고객만족팀)’으로의 인사발령. 


끝까지 홍보인으로 남아 ‘1980년대의 부흥기 재현’이라는 미완의 행복한 여정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입니다. 


2003년 홍보를 시작하며 평생 행복한 홍보인으로 살기를 바랐건만... 


그동안 마음으로, 취재로, 여러 가지 다른 모양으로 저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셨던 많은 분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여유가 되신다면 저의 새로운 앞날도 마음으로나마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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