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없고, 꽃도 없지만, 이 녀석은 오늘도 당당하게

이상한 동거, 잡초와 함께 산다는 것

by 골든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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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동거가 시작된 건 작년 봄이었다.

원래 이 화분에는 화려한 꽃 한 송이가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사를 하면서 이 화분을 종이박스에 두 달 넘게 넣어두는 바람에, 다시 꺼냈을 땐 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 다 끝났구나…"

허탈하고 후회스런 마음으로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창가에 놓아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생명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이름도 없이, 제멋대로 자라나는 풀들이었다.


보통은 이런 식물을 보면 잡초라고 생각하여 뽑아 버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풀들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일까? 아니 귀찮아서 그냥 두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열심히 살아 보려는 모습으로 내 눈에 비치는 날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두었다. 간절히 살고 싶은 생명이 내 안에 심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물도 자주 주지 않았고, 이름조차 불러주지 않았지만, 이 아이들은 마치 스스로 선택한 듯 조용히 창가를 점령해갔다. 그런데도 그때까지 나는 이런 풀들이 죽든 살든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예쁜 꽃은 늘 신경이 쓰인다. "시들면 어쩌지…" "햇빛은 충분한가…" "물은 적당한가..." "영양제를 줘야 하나..." 하지만 이 풀들에게는 그런 걱정이 들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이라는 부담감 없는 거리감이다.


그런데 문득 이 무심한 존재가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위로가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가벼운 존재로 살고 싶은 생각이 스며들었다.


타인에게 부담 대신 자유를 주는 삶 말이다.


이름도 없이, 치장도 없이, 그저 누구나 누리는 햇살과 물로 살아가는 이 풀처럼 나도 살면 좋겠다고...

예쁘지 않아도 괜찮고, 주목받지 않아도 괜찮은 삶. 생명은 그 자체에 충분히 아름다움과 의미가 있다는 것을 이 아이들은 성장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번에 이사할 때도 버리지 않고 이 친구들을 데려왔다. 더 넓어진 창가 덕분에 요즘 이 녀석들 표정이 더 밝아졌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선 출근 길, 저멀리까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 틈새에서 줄지어 올라온 풀들이 달리 보였다. 긴 콘크리트 틈을 따라 줄 맞추어 흔들거리는 모습이 참 가관이었다.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리듬 타며 춤을 추는 모습이 햇빛에 감사하여 온 몸으로 찬양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작고, 연약하여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풀들 덕분에 이 땅은 여전히 생명으로 충만하다는 생각을 가져다 주었다.


조금 더 상상해보니 땅 위에는 작아서 보이지 않을 뿐 온 땅에 생명을 품은 씨앗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바람을 만나 흩날리다 틈을 만나면 자리를 잡는다. 그곳이 아스팔트 길 위든, 콘크리트 길 위든 가리지 않는다. 아니 가길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그저 감사할 뿐,


잡초의 씨앗은 목적지도 없이 바람을 따라 흩날리다 어디선가 틈을 만나면 자리를 잡는다, 생명이라는 꿈하나 품고서. 그러다 그 틈이 땅과 이어져 있으면 운좋게 싹을 틔우고 조용히 뿌리를 내린다.


아니면 말고.


이들은 삶을 그렇게 그냥 운명에 맡기고 자유를 선택한다. 기회를 애써 잡으려 하지 않고 환경에 자신을 맡긴다. 나는 한번도 이런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다.


오늘 이 풀들은 내 생각을 단번에 뒤집어 놓았다. 그래! 인생, 뭐 별거 있을까. 뿌리를 내리든, 안 내리든 흔들리며 흩날리며 자기 시간을 살아내는 것.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내 안에 들어 왔다.


오랫만에 걸어서 출근하는 아침, 식물을 바라보며 색다른 인생을 보았다.


인생길도 걷다 보면 틈이 보이고, 틈을 보면 희망이 보이고, 그 희망이 마음속에 씨를 틔운다.

오늘도 그렇게 한 걸음, 그리고 한 틈의 여백을 품은 하루가 흐른다.


#잡초의생명력 #무심한위로 #틈의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