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에 이르는 길
어제 밤, 인터넷을 떠돌다 우연히 만난 카드 한 장이 나를 붙잡았다. 기어이 나를 책상 앞에 앉히고 타이핑을 치게 만들고 있다.
카드에는 이렇게 써 있다.
너무 솔직하면 관계가 깨진다
너무 감추면 신뢰를 잃는다
너무 베풀면 당연하게 여긴다
너무 냉정하면 외톨이 된다
너무 참으면 후회가 된다
너무 떠들면 외면 당한다
너무 의심하면 혼자 남는다
너무 믿으면 배신 당한다
너무 매달리면 도망간다
한참을 들여다봤다. 한 줄 한 줄이 다 내 이야기였다. 누군가 진작 이걸 알려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야 깨달았는데, 돌아보니 살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게 좀 억울하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너졌던 순간들을 되짚어보면, 그건 언제나 거창한 실패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 조금씩, 천천히, 균형이 어긋나면서 무너진 순간들.
우리는 모두 어떤 '선'을 마음속에 그어놓고 산다. 너무 솔직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냉정하지도 않게. 너무 믿지도, 너무 의심하지도 않게. 그렇게 삶의 온도를 적당히 조절하며 살고자 애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 선을 가장 먼저 무너뜨리는 건, 다름 아닌 내 안의 확신이었다.
신념이라는 이름의 함정
몇 년 전, 나는 어떤 생각에 푹 빠져 있었다. 그게 뭐였는지는 지금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생각이 너무나 확실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생각으로 세상을 해석했고, 사람을 판단했고, 대화를 나눴다.
처음엔 좋았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느낌, 확고한 기준이 있다는 안정감.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나만의 지도를 가진 것 같았다. 마치 안개 속에서 나침반을 발견한 기분이었달까.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상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친구들이 하나둘 침묵하기 시작했다. 논쟁은 늘 내가 이겼지만, 이긴 후의 공기는 묘하게 무거워졌다. 나는 점점 강해졌지만, 동시에 혼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독실함이 치우침으로 바뀌는 순간은 참 조용하게 찾아온다. 소리도 없이, 징조도 없이. 그저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내가 다른 관점을 보지 않고 있다는 걸. 내 확신이 누군가를 압박하고 있다는 걸.
나는 모든 것을 잃고 나서 깨달았다.
균형을 찾아가는 법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의심'을 배우기 시작했다. 의심은 불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균형을 만드는 작은 구멍 같은 것이었다. 공기가 흐르지 않으면 그릇이 깨지듯, 확신에도 숨구멍이 필요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다른 관점도 분명 존재한다."
이 두 문장을 마음 한구석에 남겨두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했다. 내 확신을 스스로 의심한다는 게 마치 배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작은 여백이 생기자 마음이 편해졌다. 대화가 부드러워졌다. 그리고 사람들이, 천천히, 다시 내 곁으로 돌아왔다.
나는 또 하나를 배웠다. 내 열정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하면, 그건 멈춰야 할 신호라는 것을. 신념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어야지,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압박하는 무기가 되어선 안 된다. 진심도, 신념도, 선의도 — 과하면 폭력이 된다.
중간지대에서 숨 쉬기
지금 나는 의식적으로 '중간지대'를 만들어둔다. 너무 치우친 것 같을 때 잠시 멈추는 습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을 실제로 만나보는 경험. 절대라고 믿었던 것들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연습.
이 중간지대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역설적이게도, 흔들리지 않으려 애쓸 때보다 적당히 흔들릴 수 있는 여백을 둘 때 더 무너지지 않는다. 나무가 바람에 부러지지 않는 건 뿌리가 깊어서가 아니라, 적당히 휘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를 신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내가 옳다"에서 "나만 옳다"로 변하는 순간, 균형은 바로 무너진다. 내 확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지 않을 때, 비로소 적당한 선이 유지된다.
적당함이라는 지혜
너무 믿지도 말고, 너무 의심하지도 말고.
너무 가깝지도 말고, 너무 멀지도 말고.
너무 뜨겁지도 말고, 너무 차갑지도 말고.
그 사이에서 숨 쉬는 것. 그것이 바로 적당한 선이다.
신념도, 삶도, 관계도 적당한 온도가 있을 때 비로소 오래간다. 너무 솔직하면 관계가 깨지고, 너무 감추면 신뢰를 잃는다. 너무 배푸면 당연하게 여겨지고, 너무 냉정하면 외로워진다. 너무 참으면 후회가 되고, 너무 떠들면 외면당한다.
과하면 독이 되는 것들. 그것들 사이에서 적당한 선을 지키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가 아닐까.
오늘도 나는 그 선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다. 때로 비틀거리기도 하지만, 이제는 안다.
완벽하게 곧은 선을 걷는 것보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으며 균형을 잡아가는 게 더 아름다운 걸음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