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스 고무줄이 늘어져 쓰레기통에 빤스를 버렸다

해석과 남용 사이의 위험한 경계

by 골든펜

며칠 전 버린 속옷이 생각났다. 한 번 사면 수명을 다 하지 않으면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 내게 있다.


고무줄을 자로 쓸 수 없다.

고무줄은 늘리고 묶고 당기기 좋은 물건일 뿐, 자를 대신해선 안 된다.


법도 마찬가지다. 늘이면 늘어나는 것이 법이 아니다.

법은 원래 규칙과 약속의 틀이다.


그틀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약자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누군가 법을 고무줄처럼 잡아당겨 제멋대로 늘이고 줄이면, 틀의 의미는 사라진다.
그 틀 사이로 권력과 이익이 스며들고, 정의는 얇아진다.


우리는 종종 '해석의 여지'를 말한다.
해석은 필요하지만, 해석을 빙자한 기형적인 유연성은 문제다.


법의 문구와 정신 사이에 균열이 생기면, 그 균열을 통해 특권이 흘러들어온다.
그것은 마치 고무줄로 탑을 쌓으려다 무너뜨리는 것과 같다.


사법 정의가 바로 서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법의 원칙을 다시 견고히 해야 한다. 문장의 뜻뿐 아니라 그 취지와 목적을 잊지 않아야 한다.
둘째, 해석과 적용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왜, 어떻게 판단했는지 기록되고 공개되어야 한다.
셋째, 권력에 대한 견제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독립된 감시와 내부 규범, 외부의 합리적 비판이 필요하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사람이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의 윤리와 책임의식이 바로잡혀야 한다.
법을 자기 편으로 구부리려는 욕망을 솎아낼 수 있어야 한다.


솎아낸다는 건 처벌이나 배제만을 뜻하지 않는다.
교육, 제도적 배치, 그리고 엄정한 내부 통제로 그 그릇을 바르게 세우는 일이다.


법을 고무줄처럼 쓴 자들을 솎아내는 과정은 가혹하게 보여도, 사실은 공동체의 치유 과정이다.


부패한 관행을 제거할 때마다 사회의 신뢰는 조금씩 회복된다.


작은 불신들이 하나둘 사라질 때, 법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마지막으로, 시민의 몫도 크다.


무관심은 고무줄을 더 쉽게 늘린다. 목소리를 내고 묻고 감시하는 시민이 있을 때 법은 제 역할을 한다.


사법 정의는 전문가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조금씩 책임져야 할 일이다.


고무줄은 운동할 때 유용하고, 포장할 때도 훌륭하다.


하지만 자리를 지키는 법의 역할까지 대신하게 해선 안 된다.


법을 곧게 세우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을 곧게 세우는 일이다.


내가 며칠 전에 속옷을 버렸다, 고무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서.

오늘에야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고무줄이 작동해야 하는 속옷이 있고, 고무줄이 작동해서는 안되는 법이 있다.


이걸 구분하지 못하는 자가 공직을 수행한다면 망국으로 가는 대로를 여는 셈 아닌가?


작가의 이전글경험은 유리벽을 깨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