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유리벽을 깨는 일이다

유리벽 너머의 세상

by 골든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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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옳은 이론과 철학이라 해도, 책 속에만 머무르면 공허하다. 머리로는 분명히 이해했는데도 가슴으로 와닿지 않는 이유는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감정의 다리, 혹은 유리벽이라고 부르고 싶다.


투명하기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장벽. 멀리서 보면 이미 다 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다가가 부딪혀 보기 전까지는 그 벽이 얼마나 단단한지 알 수 없다.


유리벽은 지식과 삶의 간극이다. 글로 배운 친절과 실제로 내뱉는 한 마디 따뜻한 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이론으로 익힌 사랑과 실제로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사랑 사이에도 깊은 틈이 있다. 그 틈을 메우는 순간은 언제나 경험에서 온다.


유리벽은 삶의 곳곳에 숨어 있다. 경영학 교과서로 배운 리더십과 실제 팀을 이끌어야 하는 순간 사이에도 있고, 육아서를 백 권 읽은 지식과 밤새 우는 아이를 달래야 하는 현실 사이에도 존재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도 정작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어려워한다.


때로는 유리벽이 너무 투명해서 그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마치 유리문 앞에서 밀어야 하는지 당겨야 하는지 몰라 망설이는 것처럼.


경험은 곧 유리벽을 깨뜨리는 행위다. 깨질 때 작은 상처가 따르기도 한다. 실패라는 조각이 튀고, 좌절이라는 파편이 스친다. 그러나 그 아픔을 감수하지 않으면, 우리는 끝내 감정의 다리를 건너지 못한다.


유리벽이 깨지는 순간은 생각보다 극적이지 않다. 대부분은 일상의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 처음으로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는 순간, 혼자 여행을 떠나는 첫걸음, 새로운 도전 앞에서 두려움을 삼키며 내딛는 발걸음. 그런 평범한 순간들이 쌓여 거대한 변화를 만든다.


유리벽을 깨고 남은 조각들을 버려야 할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조각들은 우리가 지나온 길의 증거다. 실패의 날카로운 모서리는 다음번엔 더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지혜가 되고, 좌절의 무딘 파편은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는 공감의 씨앗이 된다.


상처받았다고 해서 그 경험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상처를 통해 우리는 더 깊이 있는 사람이 된다. 책에서 읽은 "역경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문장이 비로소 살아있는 진실로 다가온다.


유리벽을 깨고 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층의 벽을 깨고 나면 그 뒤에 또 다른 벽이 기다리고 있다. 더 두껍고, 더 복잡한 벽들이. 하지만 이것은 절망적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처음 깨뜨린 벽의 경험은 다음 벽을 마주할 때 귀중한 자산이 된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깨지는 과정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안다. 경험은 이렇게 축적되어 우리만의 고유한 도구가 된다.


때로는 혼자서는 깰 수 없는 벽도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함께 벽을 깨줄 사람들이다. 멘토의 조언, 친구의 격려, 가족의 믿음. 이들의 도움으로 우리는 혼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높은 벽도 뛰어넘을 수 있다.


반대로 우리도 누군가의 유리벽을 함께 깨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먼저 벽을 깨본 사람으로서 후배에게 용기를 주고, 동료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 이렇게 경험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자산이 된다.


모든 유리벽을 깨야 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벽 앞에서 멈춰 서서 다른 길을 찾는 지혜도 필요하다. 무리한 도전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벽을 깨지 않기로 선택했을 때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인지 지혜 때문인지 솔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도피와 전략적 후퇴는 다르다.


유리벽을 깬 사람은 다르다. 말이 삶이 되고, 앎이 믿음으로 바뀐다. 남의 문장을 빌리지 않고 자기 언어로 말할 수 있다. 그때서야 지식은 살아 있는 힘이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벽을 깨고 난 후의 겸손함이다. 경험을 통해 배우는 가장 큰 교훈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진정한 지혜는 무지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타인에게 더 관대해진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각자의 유리벽과 씨름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실수나 망설임을 보더라도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된다.


결국 경험은 위험하지만, 동시에 가장 안전한 길이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우리를 2% 부족한 자리에서 완전함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리벽을 깨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사랑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 사랑이 있으면 벽을 깨는 것이 두렵지 않다. 설령 다치더라도 그 상처마저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내 앞에 놓인 유리벽을 조심스레, 그러나 반드시 깨야 한다. 그 속에서 비로소 내가 배우고, 성장하고,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깨뜨린 벽의 조각들이 누군가에게는 길이 되고, 다리가 되고, 희망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다.


그런데 깨려고 할 때마다 찾아 오는 희망과 두려움은 동전의 양면 처럼 하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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