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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Apr 07. 2017

고민하던 날들, 좀 괜찮은 풍경

Bali_Indonesia

다리가 퉁퉁 부었다. 

6시간 동안 화장실 한번 안 가고 꼼짝하지 못한 몸의 반응. 몸의 경직보단 그동안 마음의 경직이 더 신경 쓰였다. 이렇듯 마음이 퉁퉁 부어 오른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셈이었다. 내게 일상을 보통의 것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은 마음 어디가 탱탱하게 부어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일상의 무료를 일상의 특별함으로 달래기엔 능력이 충분치 않았다. 어느 커피숍이나 똑같아 보이는 아메리카노의 미묘한 맛의 차이쯤으로, 내 안에 분명 살아 숨 쉬는 방랑욕을 눌러 놓기에는 힘이 달렸다.

긴 여행이 끝나고 지난 4년간 내 심상 풍경은 몽유병환자처럼 현실도 꿈도 아닌 중간계에서 일상을 허우적거렸다. 여행자도 아닌 그렇다고 남들처럼 일상에 뿌리내리지도 못하는 겨울철새쯤. 낮엔 옅은 페르소나 뒤에 본질을 감췄고, 밤엔 니오타니(Neoteny; 생물학적 성장이 끝난 뒤 의식의 성정과 배움의 욕구를 채워 나가는 상태)의 삶을 살았다. 배움은 나를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었다.

안갯속 같은 시간 너머를 예단하는 것만큼 미래를 선명하게 하는 방법도 없다. 화이트아웃 같은 ‘지금과 여기’에서 손을 내뻗고 조심스레 미래로 다가서야 했다. 서툰 걸음은 타인의 불안한 시선과 맞닿았다. 비틀거리며 큰 흐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 그래서 조금은 안타까움 내지는 불편한 시선이 담겨 있는 눈빛. 일상의 순응과 저항 사이 어디쯤에 내 삶이 촛불처럼 흔들거렸다. 그런 사이 처음처럼 쉬울 수도 있고, 처음처럼 어려울 수도 있는 여행을 나 몰래 조금씩 계획하고 있었나 보다. 타인들 틈에 섞여 동상이몽하는 숨바꼭질은 몇 년간 계속됐다.

타인의 이해가 중요한 게 아니란 사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진실, 타인의 말과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진리. 내가 붙잡고 사는 ‘지금, 여기’와 ‘꾸준함’ 그리고 ‘치열함’ 정도면… 그래서 터벅거려도 가벼운 길. 사실 몽상 같은 이런 일상을 꿈꾸고 산다는 건 조금은 외로운 짓이다. 사람냄새 나풀거리는 좁은 골목길을 만나면 함박웃음 지울 수 있는 아주 들뜬 기쁨이 누구에게나 동감을 불러오지 못한다는 이유쯤.


발리 꾸따 해변에서


심드렁하게 영화 몇 편을 돌려 보니 어느새 착륙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나왔다. 구멍 난 검은 도화지 밑에서 빛이 새어 나오듯 초롱초롱 거리는 발리의 야경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좁은 비행기 좌석에 앉아 긴 여행을 떠나는 마음이 과거처럼 비장하진 않았다. 경험이란 그래서 중요하면서 설렘을 반토막 내기도 한다. 

성큼 공항 심사대 앞에 섰다. 손쉽게 여권에 도장을 받고, 입국장에 나오니 역시나 택시기사들이 여행의 시작을 조심성 없게 알려준다. 떠다니는 냄새와 바람의 질감이 달라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조금은 시간이 달리 흐를 것만 같은 환상. 짧은 몽상에 이제야 집에 온 것 같은 편안함에 안도한다.

그 길로 발리 꾸따의 8000원짜리 숙소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눅눅한 침대와 샤워기의 이슬비 같은 수압. 무엇을 쓰고, 무엇을 찍을지 고민하던 많은 날들치곤 남루하지만 괜찮은 풍경이다. 게다가 방안 분위기는 안온하기까지 하다.

긴 여정 치고는 별달리 준비한 게 없었다. 숙소도 그 흔한 맛집도, 가야 할 곳도, 인도네시아 발리가 어떤 곳인지 경험자의 말을 귀동냥한 수준이다.

그래서 더 심난 아니 ‘심쿵’한 밤인가 보다.



_Photo Info

Leica M-P(typ240) + Summilux-M 1:1.4 / 50mm ASPH
2017, Kuta Bali ⓒ Kim Dong Woo
CopyRight. 2017. Kim Dong Woo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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