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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 김동우 Jul 22. 2017

미얀마 기차 여행

Myanmar



좀 길다 싶은 여행엔 소소한 선물이 필요하다.

준비를 한 다곤 하지만 매번 현지인의 따뜻한 도움이 있어야 했고 길 위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친구의 손에 뭔가를 쥐여주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생기니 말이다. 마음을 마음에 쉬 보낼 수 있다면야 선물 따위야 필요 없겠지만, 사정은 매번 먹먹함에 어쩔 줄 몰라 하염없이 멀어지는 서로의 등을 마주하는 게 다였다.

한 번은 휴대전화기 뒤에 붙이는 전자파 차단 스티커를 준비해 갔는데 반응이 썩 괜찮았다. 이번 여행에선 폴라로이드 필름을 준비했다. 무겁지 않아 장기 여행에 부담이 없고 다른 선물보다 좀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여기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사진을 선물하는 건 모든 걸 다 준거란 믿음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필름을 손에 넣고 보니 한 번도 여행 중 사용해 본 적 없는 물건이어서 그런지 부피 계산을 잘못한 것 같았다. 이리저리 배낭 안에 공간을 잡아보려 했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그러다 필름을 두고 갈까도 잠시 고민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짐을 줄여 배낭 속에 필름을 욱여넣었다.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버스로 삔우린까지 간 다음 이곳에서 하루 묵고 열차를 타고 트레킹으로 유명한 시뽀로 가는 일정을 짰다. 삔우린을 출발해 덜컹덜컹 한참을 달리던 기차는 작은 역에서 숨을 고르며 승객들을 보내고 맞았다. 좌석 번호를 찾으며 두리번거리던 한 꼬마 승객이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꼬마와 내가 앉은 좌석은 4명이 마주 보는 자리였다. 꼬마가 자리를 잡자 옆 좌석 창문 밖에서 한 아저씨가 꼬마를 불러 뭐라 뭐라 이야기를 했다. 그때야 알았다. ‘꼬마는 일행이 없구나. 혼자서….’ 그리곤 아저씨는 나를 보고 알아듣지 못하는 미얀마 말을 쏟아냈다. 아이를 잘 좀 봐달라는 당부 같았다.

잠시 뒤, 앞뒤로 크게 한번 덜컹댄 기차가 서서히 바퀴를 굴린다. 그때쯤 난 기차 안에서 요깃거리를 파는 행상을 불러 옥수수 한 봉지를 달라고 했다. 옥수수는 따뜻했다. 봉지를 열어 보니 노랗게 익은 옥수수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달콤한 냄새가 풍기는 옥수수 하나를 꼬마에게 내밀었다. 꼬마는 재빠른 손으로 옥수수를 받아 능숙하게 옥수수 껍질을 벗겨 한입에 옥수수를 베어 물었다. 나도 꼬마를 보며 한 입 크게 옥수수를 물었다. 우린 옥수수를 입에서 떼지 못하고 서로를 보며 미소 지었다.

미얀마 기차는 빠르지 않은 속도로 적당히 흔들거리며 목가적 풍경에 운치를 더했다. 덩달아 엄마, 아빠 그리고 삶은 달걀과 함께했던 오래된 기차여행의 추억까지 또렷하게 만들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어 내기라도 한 걸까. 꼬마는 꼼꼼하게 매듭지어진 비닐봉지를 풀었다. 그 안에선 신기하게도 메추리알이 나왔다. 꼬마는 우리네 그것과 똑같이 생긴 메추리알 하나를 내밀었다.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메추리알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우린 서로를 보며 또 한 번 웃었다.

꼬마가 내릴 때쯤 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을 선물로 줬다. 하얀 필름 위에서 운명처럼 친구가 될 수밖에 없는 그 누구의 얼굴이 조금씩 생기를 얻는다. 꼬마는 필름을 허공에 하늘하늘 흔들며 점점 또렷해지는 본인의 얼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 그렇게 기억되길….”








Leica M-P(typ240) + Summicron-M /  28mm ASPH

2017, Gokteik, Myanmar ⓒ Kim Dong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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