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들풀, 인사드립니다♤

(10월 7일, 막내형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by 들풀

저는 추석 다음 날인 10월 7일, 제 바로 위 형님을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이제 겨우 열흘이 지났지만, 그 시간이 영원처럼 아득하다가도 어제처럼 낯섭니다. 전화를 걸려다가 형의 부재를 확인하고, 낮게 흐느끼곤 합니다. 세 마지기 논밭을 일구던 가난한 시골살림에 우리는 여덟 남매였습니다. 할머니는 끔찍하게 손자를 귀여워하셨지요. 상가나 혼가에 다녀와 담배쌈지에서 꺼내 주시던 그 알싸한 사탕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누님들과 형님들은 국민학교를 마치자마자 도회지로 돈벌러 떠났습니다.


저와 막내형은 여섯 살 터울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형은 6학년이었지요. 중학교를 졸업한 형은 교도관이 되었습니다. 내가 산에서 소 먹이러 가서, 동무들과 망개싸움을 하다가 댕강 다리가 부러졌을 때 “똥술을 먹이면 낫는다.”는 아버지를 말리고 접골원으로 데려간 것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해준 것도, 대학 등록금이 없을 때 결혼반지를 팔아 마련해준 것도 형님 부부였습니다. 그런 형님이 2년 전 폐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저 기도하고 눈물짓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전화 통화 중에 나는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이 형님을 낫게 해주신다면, 형님이 장로로 있는 형님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그때 유한양행에서 개발한 표적치료제 ‘렉나자’를 복용하며 회복의 기적이 있었고, 그 무렵 나는 형님 부부를 제차에 모시고 함께 교회에 다니며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병은 다시 찾아왔습니다. 백혈병이 오고, 뇌까지 전이되었지요. 추석 전날, 열이 나서 응급실에 입원했다는 형수님의 전화를 받고, 나는 급히 달려갔습니다. 형님은 크게 숨을 쉬다가 차츰 잦아들더니, 풀잎의 이슬이 햇빛에 스러지듯 평화롭게 떠나셨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이 허허로움을 글로 달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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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의 서러운 가난, 동무들의 치기어린 장난과 웃음, 그리고 살아가면서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글의 원천으로 삼고 있습니다. 따로 글쓰기를 배운 적은 없고, 국민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의 지도 아래 문집을 엮으며 동시와 산문을 처음 썼습니다. 직장 사이트와 오마이뉴스 ‘사는 이야기’에 백여 편의 글을 올렸지만, 여전히 제 머리는 둔하고 손은 느립니다. 법원에서 가사조사관과 개인회생위원으로 근무하며 수많은 사람의 사연을 마주했습니다. 그들의 눈물과 한숨,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삶은 언제나 부서지고, 다시 피어나는 들풀 같다는 것을요. 퇴직 후에는 법원상담위원으로 봉사하며 여전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예순 여섯의 나이에 사회복지대학원에 다니고 있구요.


저는 이곳 브런치에서 세대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어른을 위한 어른동화, 어린 손녀들을 위한 가족동화, 그리고 세상살이의 온기를 담은 수필과 한뼘소설을 함께 엮겠습니다. 삶의 고단함을 보듬고 갈등을 풀어내며, 부드러운 눈길로 우리네 민초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겠습니다.

오늘 밤에는 형님이 꿈에 나타나 “막내야, 브런치 작가 축하해. 잘했어.”

라고 말씀해주시면, 나는 젖은 눈으로 “고마워요, 형님.” 하고 대답하겠지요.

아침이 밝으면 다시 글을 적을 겁니다. 첫 글이라 많이 주억거렸습니다.

(2025. 10. 16. 들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