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해 전, 걸인 친구 성철이를 찾습니다
그래, 국민학교 3학년 11월의 늦가을이었어. 그날 바람은 쌩쌩 불고, 저녁 나절에는 오소소 소름이 돋았지. 나는 오후반 수업을 마치고 고전읽기를 한 뒤, 10리 길을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가고 있었어. 우리 동네 동구 밖에는 돌을 채곡 채곡 쌓아 올려 만든 ‘조섬’이 있었고, 그 경계엔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었지. 아부지는 옛날에 어른들로부터 마을 방풍림으로 조성했다고 들었다고 하셨는데, 그 나무들은 마을을 지키는 정령이 깃들어서 200년을 넘게 마을의 안녕을 지켜왔어. 마을 어른들은 가을걷이가 끝나면 그 중 몇 몇 나무에 새끼줄을 둘러 금줄을 치고 마을 제사를 지내면서, 액운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달라고 빌었어.
가을걷이를 끝낸 들녘에는 짚동들이 줄지어 서 있었어. 짚동 사이는 바람이 들지 않아 숨기에도 좋았고, 우리 또래들은 거기서 숨바꼭질을 하거나 짚단 몇 개를 깔고 누워 세상에서 제일 멋진 아지트를 만들곤 했지. 그런데 그날따라 어둠이 일찍 내려앉았어. 짐승 우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뒤엉켜서 기괴한 괴물이 산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것 같았어. 나는 논으로 들어가 짚동에서 짚단 세 단을 뽑아 들고, 그 중 하나에 불을 붙였어. ‘고전 읽기(1970년 쯤에 초등학생들이 심청전, 흥부전 등을 읽고 학교 대표로 나가 경시대회를 함)’를 마치면 늘 어둑한 길을 혼자 걸어가야 해서 나는 작은 성냥통을 늘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거든. 국민학교에서 무기 마을은 넓은 신작로라서 괜찮아. 무기동리를 벗어나서 우리마을까지는 좁은 오솔길이고 산에 접해 있어서 달도 없는 밤에는 더러 헛것을 보기도 했어. 특히 중간 쯤에는 ‘가장골’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는데, 옛날엔 시신을 가매장하던 곳이었지. 거길 지날 땐 언제나 숨이 막혔어. 그래서 짚단에 불을 붙여 들고 달리곤 했지. 그때 저 멀리 조섬숲 밖으로 엄니의 호롱불이 보이면 나는 온 힘을 다해 외쳤어.
“엄니, 어무이!”
“수야, 옴마 여기 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눈물이 핑 돌곤 했어. 아무튼, 그날도 짚불을 들고 길로 나오려는데 짚동 사이에서 인기척이 났어. 처음엔 짐승인가 싶어 겁이 났지만 불이 붙은 짚단을 휘휘 돌리며 조심스레 다가갔지.
“거기 누구 있어요?”
“…….”
내가 짚불을 가까이 비추자, 그곳에는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와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어.
“그냥 가.”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고, 아이의 목소리가 이어졌어.
“누구야? 아버지하고 자고 있는데, 왜 그래?”
서울말이었어. 나는 얼른 짚불을 흔들며 말했지.
“아이다, 집에 가다가 무서워서 짚불 붙일라꼬 왔다가 인기척이 나서 그런 기라.”
그리고는 냅다 집으로 뛰어왔어. 다음날 아침, 밥을 먹고 있는데 남루한 옷차림의 두 손님이 찾아왔어. 어른 하나, 아이 하나! ‘밥 쫌 주이소!’ 남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깡통을 내밀었지. 그래, 어젯밤 그 짚동 속 사람들이었어. 엄니는 말없이 먹던 밥과 반찬을 덜어 깡통에 담아주었어. 그들의 눈빛엔 감사와 부끄러움이 뒤섞여 있었지.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어.
“나는 어젯밤에 니를 만났는데, 알겠나? 니는 몇 살이고?”
“그래, 너였구나. 나는 열 살이야.”
그 아이 이름은 성철이었어. 할매가 쌀 한접시를 건네며 ‘아직 젊은데, 힘내라’고 하자 성철 아버지는 보퉁이에 쌀을 담으며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술만 마시다가 건강을 잃고는 이리 저리 떠돌다 걸인이 되어서 우리동네까지 오게 된 거래. 그는 1년을 떠돌아다니며 비럭질(구걸)을 했는데도 서툴러서 겨우 “밥 쫌 주이소” 외치는 게 전부라며 쓰개 웃었어. 그때만 해도 걸인들이 찾아오면 어른들은 밥과 반찬, 쌀이나 보릿쌀을 나눠줬어. 또 잔칫날이나 상가집에 그들이 오면 고기나 잡채까지 내주곤 했는데, 그게 사람 사는 도리라 했거든.
어쨌든 그 때는 구걸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만은 아니었어. 귀동댁 자야 누나의 잔칫날 아침, 그들은 동네 초입에 있는 조섬 밖에서 깡통을 두드리며 각설이타령을 부르면서 동네로 들어 왔어.
“어얼 씨구 씨구 들어가안다, 저얼 씨구 씨구 들어가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어~어 품바가 잘도 헌다.
밥은 바빠서 못 먹고 떡은 떫어서 못 먹소,
죽은 죽어도 못 먹고 술은 술이 술이 잘 넘어간다.
어허이 품바가 잘도 헌다, 어허이 품바가 잘도 헌다.
품바허고 잘도 헌다. 품바허고 잘도헌다…”
그 노랫소리가 참 신명 났어. 잔칫집에 늘어선 손님(더러 거지라고도 했지만 걸뱅이, 거렁뱅이라고도 했음)에게 고기와 잡채, 막걸리를 동이째 내어 주었어. 왁짜지껄, 우당탕탕 시끄러워야 잔치집 분위기가 났거든. 나는 과자를 고방에 있는 서촌아지매에게 얻어서 성철이 손에 쥐어 주었어. 그 후로 나는 성철이와 친구가 되었어. 나는 종종 저녁 나절이면 고구마나 감홍시 등 먹을 것을 싸서 짚동 사이로 찾아가곤 했지.
그런데 11월의 마지막 날, 성철이가 머물던 짚동 자리에 가보니 짚단만 동그마니 깔려 있고 아무도 없었어. 나는 짚단 위에 앉아 한참을 흐느껴 울었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에 오는데, 엄니가 “니 성철이한테 갔다 왔제? 성철이 아부지가 아침에 와서 ‘이제 몸도 좀 회복되었고, 성철이 장래를 위해서 다시 서울에 가서 날품팔이라도 하겠다.’며 인사를 하고 떠났다.“는 거야. 그러고 이제 60년이 흘렀어. 이제 성철이를 봐도 서로 알아보지도 못하겠지만, 나는 열 살의 성철이가 무척 보고 싶어. 지금도 가끔 고향의 조섬 숲을 넘어 동네에 들어서면 조섬숲 어딘가에 있던 성철이 패거리가 깡통을 두드리며, “밥 쫌 주이소.”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2025. 10. 18. 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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