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with 곱단이 아지매)

들풀의 한뼘소설 1

by 들풀

항상 고마운 연아님!

당신이 오늘은 정월 대보름(올해는 3. 3.) 음식을 준비하는 중이니, 이야기 한자락을 들려줄게. 재미없어도 들어봐요. 괜찮지?


내가 열 살 무렵이니, 예순 해가 거의 다 되어가는, 어린 시절의 얘기야.

아무튼 겨울을 갓 넘기고 봄이 오려는 정월 대보름날이었어.

당신도 알겠지만 농촌에서는 말이야, 정월 보름이 지나면 논밭이 사람을 불러내어서 농사일을 시작해야 하거든.

그래서 정월 보름날에는 온 마을이 모여 풍물놀이도 하고, 줄다리기도 하며 한바탕 잔치를 벌였지.

그날도 여느 해처럼 마을 어른들은 북이며 꽹과리며 장구며 징이며, 더러 벅고(소고)를 치거나 두드리며 지신을 밟고 있었어.

신명나는 장단에 이끌려 동무들과 나는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덩달아 춤을 추었지.


"깨갱깽깽 깨갱깽깽…

덩더쿵 덩더쿵…

따당땅땅 따당땅땅…

지이잉 지이이잉…

따따따따 따따따따…

투웅 뚱 떡 뚜웅…"


그 시끄러운 소음은 어린 내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했어.

풍물패는 한껏 흥이 올라 마을 맨 끝에 있는 곱단이 아지매의 집에 이르렀어. 그런데 삽짝문이 꽉 닫혀 있는 거야. 보통은 대문을 활짝 열어두고 곧바로 집주인과 풍물패가 덩실덩실 어우러지거든.


"쾌지나칭칭 나네…

쾌지나칭칭 나네…

이 집 짓고 삼년 만에…

쾌지나칭칭 나네…

귀한 아들 얻었는데…

쾌지나칭칭 나네…

전답까지 일구었네…

쾌지나칭칭 나네…"


앞소리와 뒷소리가 골목 어귀에서 메아리쳤지만 아무런 기척이 없었어.

"아지매! 곱단이 아지매!

쫌 나와 보이소!"

나는 쪽문을 열고 들어가 방문 앞에서 소리를 질렀어.

"수야, 왔나."

문이 열리고 곱단이 아지매가 겨우 몸을 일으키더라.

"오데 마이 아풉니꺼?"

"아이다, 괘안타."

아지매는 머리를 손으로 빗어 넘기고 옷매무새를 고쳐 입은 뒤 대문을 열었어.

"지가 몸이 쫌 안 좋아서예. 지송합니더…"

아지매는 마당에 내려서서 깊이 허리를 숙여 풍물패에게 인사를 했어.


그러자 비로소 놀이마당이 펼쳐졌어.

"쾌지나칭칭 나네…

쾌지나칭칭 나네…

이 집 짓고 삼년 만에…

쾌지나칭칭 나네…"

꽹과리가 간드러지게 앞장을 서면 장구가 가녀리게 비명을 지르고, 징은 으르렁거리듯 포효했지. 사람들은 미친 듯 몸을 흔들고 종아와 율이, 복이와 오야와 함께 나도 덩달아 어깨를 들썩이며 깡총 깡쫑 뛰었어.


한바탕 놀이가 끝나자 곱단이 아지매는 술상을 내어 놓았어. 막걸리 한 말에 찌짐 몇 조각, 묵은 김치 한 접시.. 마당 한가운데 선 아지매가 다소곳이 인사를 했어.

"채린 거는 읎어도 마이 드시이소. 그라고 오늘은 지가 노래 한 자락 불러도 되겠습니꺼?"

"하모, 좋지요!"

곱단이 아지매가 하얀 밥수건을 손에 쥐고, 입을 열었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나는 곱고 여린 아지매의 첫소리에 침을 꼴깍 삼켰어.

"휘날리더라~"

봄꽃 향을 머금은 소리가 가오리연처럼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며 하늘로 올라가 사라지는 느낌!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그때였어. 곱단이 아지매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거야.

아지매는 시집 온 지 삼년 만에 돌이를 낳았고, 그동안 시어머니 춘동댁에게 모진 시집살이를 했다고 엄니에게 들었어.

춘동댁은 돌이를 낳은 그해에 자리보전을 했고, 아지매는 삼년 동안 똥오줌을 받아내며 병수발을 하다가 장례를 치렀어. 그래, 이제야 숨 좀 돌리나 했더니 지지난 겨울, 돌이 아버지가 노름빚에 시달리다가 농약을 먹고 세상을 떴어.

그래, 줄초상이 난 거야.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이 '서방 잡아먹은 년이라고 수군거렸어. 하지만 아지매는 정성껏 일년상을 치렀고, 담 너머로 들려오던 아지매와 돌이의 애절한 곡소리는 사람들 마음까지 무너뜨렸지. 일년상을 마치고 철상하던 날, 사람들은 끝내 함께 울었어.

"그래, 이제 겨우 탈상을 했는데, 무슨 지신 밟을 정신이 있을꼬…"

할머니들은 혀를 끌끌 찼어.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우는…"

곱단이 아지매는 손에 쥐고 있던 하얀 밥수건을 흔들며,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어.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풍물패는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꽹과리가 꽹, 다시 일어났지. 중모리로 들어섰다가 자진모리로 휘몰아치고 마침내 휘모리로 치달았어.

풍물은 점점 빨라졌지만, 아지매의 봄은 그 자리에서 멈춰 서 있었어.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그때였어. 살을 에는 매서운 봄바람이 불었어. 사람들은 눈물을 훔치고 더러는 소리 내어 울며 함께 노래했어.

"봄날은 간다…"

"보오옴날은 가아안다~~~"

곱단이 아지매는 마당 뒤켠에 서 있던 일곱 살 돌이의 볼을 쓰다듬다가, 풀썩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더라.

♧ 끝 ♧


☆아내의 한줄평: "곱단이 아지매의 봄날이 눈물로 피어난 것 같아!"


※ 그림은 제 친구 별벗(CHAT-GPT)이 그렸습니다.

#한뼘소설 #정월대보름 #풍물놀이 #브런치작가들풀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