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의 한뼘소설 2.
1. 용이 아재
우리동네에는 아주 작은 이발관이 있었습니다. 이발기계(바리깡)에는 때가 덕지덕지 끼었고, 프라스틱 빗도 그 잇 사이 사이에 이물질이 잔뜩 끼어서 머리를 빗으려면 손톱이나 꼬챙이로 후벼 파고서야 겨우 빗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발용 의자는 나무로 만들었는데, 나같은 어린 아이들이 머리를 깎을 때는 판자를 받치고 그 위에 앉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구색은 갖춘다고 포마드 기름을 바른 신사 사진을 역시 뿌옇게 빛이 바랜 거울 위에다 조악하게 붙여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발관 주인을 <용이 아재>라고 불렀는데, 그의 정확한 성이나 이름이 무엇인지는 우리같은 아이들은 몰랐습니다.
우리마을은 상주 주씨 집성촌인데도 각성바지인 그가 우리마을에 살게된 연유를 모르는데, 마을어른들이 '불쌍하다'며 마을회관 한쪽 구석에다 이발관 건물을 짓게 해준 것을 보면 전혀 남은 아닌 듯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일년동안 용이 아재에게 머리를 깎고, 여름철에는 보리쌀 한 말, 가을걷이 후에는 쌀 한 말을 식구들의 머리 깎는 삯으로 주었습니다. 그런 용이 아재의 이발관에 가는 것을 우리는 참으로 싫어했습니다. 입은 비뚤어졌고 얼굴도 많이 일그러졌는데, 말을 하는 것 조차 무척 힘들어보였습니다.
"수~수야! 머어, 머리 까~까끄러 와았나?"
"예, 아재! 머리를 짧게 쫌 깎아 주이소."
아재는 말이 끝나면 침이 주르르 흘러내려 나는 잽싸게 아재의 반대쪽으로 몸을 돌립니다.
아재는 비틀어진 손으로 보자기를 집어 내 몸통에다 감고 빨래집게를 채웁니다. 그리고는 바리깡 질을 두어번 하다가 머리를 퉁 칩니다.
"머리에 새~새똥 쪼, 쫌 봐라. 쌔~쌔가리(서캐)는 와 이리 많~ 많노?"
아재는 다시 한번 머리를 꽁 쥐어박고는 바리깡과 가위질을 계속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그렇게 비틀어진 손인데도 가위질과 바리깡 질을 참으로 환상적으로 잘하는 것입니다.
2. 용이 아재, 숙희 아지매
아재 나이가 서른이 넘었던 그해 겨울, 동회를 다녀오신 아버지는 "용이를 장가보내기로 했다."며 우리는 메밀묵 한 말을 해야한다고 엄니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을 잔치이니 정월하고도 대보름으로 기일을 정하고 마을 사람들은 떡이며, 막걸리며, 찌짐을 각각 추렴을 해서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용이 아재는 생전 처음으로 말쑥한 양복을 입고 마을회관 공터의 식장에 나타났습니다.
결혼식이 있던 날, 우리는 참으로 신이 났습니다. 살금살금 회관 고방에 숨어들어 돼지고기가 들어간 잡채를 두손으로 가득 집어 입에다 쑤셔 넣을 수도 있었고, 운이 좋으면 명태 부침개 몇 조각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고방을 율이 엄니가 지키고 있어서 손으로 훠이 쫓는 시늉을 하지만 우리에게 살짝 떡쪼가리를 쥐어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잔치가 벌어지는 마당 주위를 돌아다니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용이 아재, 장개 간단다."
"머선(무슨) 음석 했더노?"
"돼지 봉알 삶더라."
"쪼옴 주더나?"
"쪼매이 주더라!"
"마 싰더나(맛 있더나)?"
"맛 없더라!"
"찌, 찌, 찌렁내(지린내) 나더라!"
참으로 살 판이 난 날입니다. 드디어 신부가 들어섭니다.
"꼬꼬 재배!"
마을 어른인 사하 할배의 지시에 따라 신부가 공손히 신랑에게 두 번 절합니다. 사람들 틈에 끼어 신부를 보는데, 우리는 "헉" 놀라고 말았습니다. 긴 소매로 얼굴을 가렸는데도, 얼굴이 달덩이처럼 뽀얗고, 검은 눈썹에 훤칠하게 키도 커서 용이 아재가 더욱 작달막하게 보였습니다.
3. 허수가 태어나다
숙희 아지매는 어른들께 인사성도 밝고, 무엇보다 나를 좋아했습니다. 나는 틈틈이 아지매에게 놀러가서 <고전읽기>한 내용이랑 마을문고에서 빌려 읽은 <휘파람 부는 소년> <삼총사> <소공녀>등을 이야기해주면 아지매는 감홍시를 가져다주기도 했습니다. 내가 방에 있으면 아재는 "큼, 큼" 헛기침을 하다가 그래도 내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호롱불의 기름이 아깝다'며 불을 탁 꺼기도 했지요. 그런데 숙희 아지매의 배가 불러왔습니다.
마을어른들은 모두 숙희 아지매에게 치사를 하면서도 불안한 눈길을 거두지를 못했습니다. 용이 아재는 신이 났습니다. 여름철에는 모내기할 때 못줄을 잡아주기도 하고, 토끼 네마리와 염소 두마리, 검은 돼지 한마리, 닭 세마리도 사서 키웠습니다.
"기~, 기촌 아지매! 우, 우리 아들 나, 낳으모 이름은 희~ 희수(喜壽)라고 지을랍니더."
"와 그리 지을라 카는데?"
"건~, 건강하고 오, 오래 살라꼬예! 얌~얌생이(염소) 하고, 돼~돼지는 키워서 우~우리 아들 고~고등핵교 보낼람니더!"
드디어 희수가 태어났습니다. 용이 아재의 바램처럼 사내아이였는데, 눈이 엄마를 닮아서 똘망똘망하고, 피부도 여느 아이들보다 더 뽀얗게 윤기가 나서 우리는 숙희 아지매만 보면 달려가서 안고 있는 희수의 볼을 쓰다듬었습니다. 아이는 마을사람들의 정을 듬뿍 먹고 "쑥, 쑥" 자랐습니다.
"용아! 너거 아들 출생신고는 했나?"
희수가 쫄래 쫄래 병아리를 쫓는 것을 지켜보던 엄니가 입을 "헤" 벌리고, 아들의 뒤를 따라 춤추듯이 걷는 용이 아재에게 묻습니다.
"아~아~아지매! 구~구상아재한테 해 달라꼬 부~ 부탁을 했는데, 아~아지매가 한 분 알아봐 주이소!"
엄니는 6촌 시동생으로 동네이장을 하는 구상아재를 찾았습니다.
"아재(우리동네에서는 시동생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용이 아들 출생신고는 했능기요?"
"아지매(형수)! 큰일 났네! 깜빡 잊어뿌렀다.우짜꼬?" "지금이라도 퍼뜩 하소!"
면사무소에 간 구상아재는 과태료를 물지 않으려고 1년 6월이나 늦게, 그것도 이름을 <허수(虛守>라고 올리고 말았는데. 동네에서는 어느 누구도 희수가 허수가 된 사실을 몰랐습니다.
이발로 연명하는 용이 아재네는 형편이 어려워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이 되어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곰국과 소고기, 돼지고기 반찬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우호적이던 동네사람들도 '나쁜 년이 들어와서 용이아재 살림 거덜낸다.'고 수군대다가 더러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용이가 일곱살되던 해에 마을사람들의 눈총때문인지, 형편이 더 어려워진 탓인지 숙희 아지매는 더 이상 곰국을 끓이지 않았습니다.
☆ 길어서 2편으로 나누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들풀한뼘소설 #허수이야기 #동네이발관 #용이아재
※ 그림은 제 친구 별벗(CHAT-GPT)이 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