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2. 666을 통한 인간과 사탄의 위치

by 에스겔

1.2.2.2.1. 666 고찰에 앞선 당부


인간의 권세를 말하려면 성경에 나와있는 666에 대해서 신약과 구약을 관통하는 해석이 필요하다. 666과 사단의 정체에 대해 말하는 구절들과 인간의 권세를 말하는 구절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666이 인간의 권세를 말한다고 하지만 666은 권세로 인해 교만해져 하나님의 자리를 탐낸 인간의 어그러진 탐욕과 연관된 것이다. 666은 짐승의 숫자인데 이것은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눈이 어둡고 듣는 귀가 둔하여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런 어둡고 듣는 귀가 둔한 부분들이 한두 가지 아니다. 이 책의 지면 전부를 사용하여 설명하더라도 여러분들이 이 부분을 이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여러분이 혼자 연구한다면 여러분의 평생을 바쳐서 연구해도 666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자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666을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여러분은 이해를 위해 서두르지 말고 성경을 연구하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주의하여 연구하기를 당부드린다. 결코 섣부르고 어리석은 결론을 조급하게 내리지 않기를 바란다(벧후 2:19~21). 그리고 거듭 당부할 것은 여러분이 혹시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666뿐 아니라 인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말 이해했다면 사도행전에 나오는 그리고 예수님의 행전인 4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과 사도들과 같은 삶을 여러분이 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이해하거나 믿지 못한 것이다.


40년 가르치고 그 뜻 알아

대한민국의 대표 영어강사 정철이 『죽은 영어 살리기』에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다. 자신의 영어학습법 중 가장 탁월한 것이 영어 어순감각이다. 그것을 자신은 40년 이상을 가르쳤다. 그런데 “자신이 40년을 가르치고 나서야 ‘영어는 기자회견 식 어순으로 되어있다’는 자신의 가르침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했다. 자신의 가르침에 있어서 어순감각이 얼마나 탁월한 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정철은 자신의 어순감각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다른 언어(중국어, 일본어 등)들까지도 같은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는 툴들을 만들어냈다. 진정한 이해는 적절한 운용과 그 응용까지도 가능케 한다.



1.2.2.2.2. 인본주의의 극한 666


666은 인본주의의 극치를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의 끝을 말하기도 한다. 6이라는 숫자는 수비학(數祕學, numerology)에서 인간을 나타낸다. 저자는 수비학을 한계 안에 갇힌 학문이며 문제가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성경의 모든 숫자에 이를 대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의 비유와 상징은 획일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문맥상 통일성을 보이고 계속해서 같은 숫자가 반복될 때에는 성경 안에서의 용례에 비추어 숫자에 상징적 의미를 제한적으로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666은 6이 세 번 연속해서 쓰인다. 세 번 연속하여 쓴 것은 강조를 뜻한다. 이것은 인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중심주의를 말하며 육신적인 것의 극치를 말한다. 666의 해석에 대해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은 다음의 성경들을 연구한 결과이다.



1.2.2.2.3. 666이 등장하는 성경의 6 본문


666을 성경에서 검색해 보면 표면적으로 4 곳에 등장한다. 정확하게는 6곳이다. 두 곳은 거의 대부분의 성경독자들에게 숨겨져 있다. 그 이유는 자세히 관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 눈을 열어주셔야 볼 수 있다.

5 곳은 인본주의의 극치 인간탐욕의 극치를 나타낸다. 이는 육신적인 것의 극치요, 그것은 사탄적인 것의 극치와도 맞닿아 있다. 사탄이 스스로 하나님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나 인간이 자신의 보좌를 쌓고 자신의 교만의 탑을 쌓는 것이나 서로 같은 것이다.


1. 열왕기상 10:14


14일 년 동안 솔로몬에게 들어오는 금의 무게가 육백육십육 달란트였다. (열왕기상 10:14, 바른)


2. 왕상 10:18-20


18왕이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그것을 순금으로 입혔는데,

19그 보좌에는 계단이 여섯 개 있었고 보좌 뒤쪽으로 둥근 머리가 붙어 있었으며 팔걸이가 앉는 자리 양편에 달려있었고 사자 두 마리가 팔걸이들 옆에서 있었으며,

20또 사자 열두 마리여섯 개의 계단 양편에 서 있었는데, 이 같은 것은 어느 왕국에서도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3. 역대하 9:13,


13일 년 동안 솔로몬에게 들어오는 금의 무게가 육백육십육 달란트였다.


4. 대하 9:17-19


17또 왕이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그것을 순금으로 입혔는데,

18그 보좌에는 층계가 여섯 개 있었고, 금 발판이 보좌에 붙어 있었으며, 앉는 자리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들 곁에는 사자 두 마리가 서 있었다.

19또 사자 열두 마리가 여섯 층계 양쪽에 서 있었는데, 이와 같은 것은 어느 왕국에서도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5. 요한계시록 13:18,


18여기에 지혜가 있으니 지각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숫자를 세어보아라. 그것은 사람의 숫자이니 육백육십육이다.


나머지 1 곳은 포로 귀환 때 돌아온 아도니감 자손의 숫자다. 이것은 그냥 백성들의 숫자를 기록한 것이지 문맥상 별 다른 뜻이 없다.


6. 에스라 2:13,


아도니감 자손이 육백육십육 명이며, (에스라 2:13, 바른)




1.1.1.1.4. 666에 관한 성경적 고찰들에 대한 기록 나열


열왕기상 10장

왕상 10장을 살펴보고 666 관련된 수들에 대해 각주를 달아보았다.

이렇게 개인이 성경을 연구한 후 그 내용을 저장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록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중요한 내용들도 우리 머릿속에서 지워진다. 특히 평소 성경연구의 분량이 많은 목회자나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은 많은 분량을 연구한 만큼 뒤에 자신이 연구한 것도 잊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성경 연구하면서 기록하는 습관은 아침에 세수를 하고 저녁에 발을 씻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고 익숙해져야 할 요소다.

심지어 성경을 처음 연구할 때나 연구가 서툴러 잘못된 해석을 하는 경우들이 있을지라도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들이 주석이나 다른 이들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 훨씬 크다. 왜냐하면 실수를 통한 피드백을 통해 해석의 오류를 줄이고 정확한 해석을 하는 능력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기록이 필수다. 다음은 필자의 연구 기록을 여과 없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다른 이에게 잘 설명하기 위한 군더더기도 없이 본인이 나중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연구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그 이후 설교나 성경공부 모임 인도를 위해서 준비하는 설교안이나 성경공부 인도 안은 따로 작성하면 된다. 개인적인 기억을 위한 것과 다른 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것은 그 글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설교 안은 많이들 작성을 한다. 그런데 개인 성경 연구 결과물을 정리하는 것은 드문 것 같다. 여기 참고 안을 올린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해도 된다는 것을 보고 따라 해보기 바란다.


왕상 10:1-29/바른

1 스바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인한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어려운 문제들로 그를 시험하려고 왔다. 2 여왕이 매우 많은 수행원들을 데리고, 향유와 매우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의 마음에 있던 모든 것을 솔로몬에게 물어보았다. 3 솔로몬이 여왕의 모든 말에 대해 그 여자에게 설명하였으니, 왕이 몰라서 그 여자에게 설명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4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가 건축한 궁전을 보고, 5 또 그의 식탁의 음식과 그의 신하들의 좌석과, 그 종들이 서 있는 것과 그들의 의복과 그의 술관원들과 그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1] 6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내 나라에서 왕이 하신 일과 왕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 그대로입니다. 7 내가 와서 내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내가 그 말들을 믿지 못하였으나 오히려 내게 보고된 것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니, 왕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었던 소문보다 뛰어납니다. 8 왕의 사람들이 복이 있고 왕의 신하들이 복이 있습니다. 이는 이들이 항상 왕 앞에서 왕의 지혜를 듣기 때문입니다. 9 여호와 왕의 하나님을 송축합니다. 여호와께서 왕을 기뻐하셔서 이스라엘의 보좌 위에 두시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영원히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왕으로 세우셔서 공평과 정의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10 그리고 스바 여왕이 금 백이십[2] 달란트와

매우 많은 향유와 보석을 왕에게 주었는데,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준 것만큼 많은 향유가 다시는 들어오지 않았다. 11 또한 금을 실은 히람의 선박이 오빌로부터 매우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실어오니, 12 왕이 백단목으로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고, 노래하는 자들을 위하여 수금과 비파를 만들었는데, 백단목이 이같이 들어온 적이 없었고, 오늘날까지도 그와 같은 것들을 본 자가 없었다. 13 솔로몬 왕이 관례에 따라 줄 수 있는 것 외에도 스바 여왕이 자기 소원대로 요구하는 모든 것을 주니, 여왕이 신하들과 함께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14 일 년 동안 솔로몬에게 들어오는 금의 무게가 육백육십육 달란트였다. 15 그 외에도 상인들과 무역업자들과 아라비아의 모든 왕들과 그 나라의 총독들로부터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16 솔로몬 왕이 두드려 편 금으로 큰 방패 이백[3] 개를 만들었는데, 방패 하나에 금 육백[4] 세겔을 입혔고, 17 두드려 편 금으로 작은 방패 삼백[5] 개도 만들었는데, 방패 하나에 금 세 [6] 마네를 입혔고, 왕이 그것들을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다. 18 왕이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그것을 순금으로 입혔는데, 19 그 보좌에는 계단이 여섯 개 있었고 보좌 뒤쪽으로 둥근 머리가 붙어 있었으며 팔걸이가 앉는 자리 양편에 달려있었고 사자 두 마리가 팔걸이들 옆에서 있었으며, 20 또 사자 열두 마리가 여섯 개의 계단 양편에 서 있었는데, 이 같은 것은 어느 왕국에서도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21 솔로몬 왕이 마시는 그릇은 모두 금이었고,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모두 순금이었으며, 은으로 만든 것이 없었으니, 솔로몬 시대에는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22 왕이 히람의 배와 함께 다시스의 배를 바다에 두었으므로, 삼 [7]년에 한 번씩 다시스의 배가 금과 은과 상아와 원숭이와 공작을 실어 왔다. 23 솔로몬 왕의 부와 지혜가 세상의 모든 왕들보다 뛰어나니, 24 온 세상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속에 넣어 주신 지혜를 들으며 솔로몬의 얼굴을 보기 원하여, 25 각자 은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유와 말과 노새를 예물로 가져왔으니, 해마다 이런 일이 계속되었다. 26 솔로몬이 병거와 기마병들을 모으니, 그에게 병거 천사백 [8] 대와 기마병만 이천[9] 명이 있었는데, 그가 그들을 병거 성들과 왕이 있는 예루살렘에 배치하였다.[10] 27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처럼 흔하게 하고, 또 백향목을 쉐펠라의 시카모어나무처럼 풍부하게 하였다.[11] 28 솔로몬을 위해 이집트와 구에에서 말을 들여왔는데, 왕의 무역상들이 구에에서 값을 지불하고 사 왔다. 29 병거는 은 육백[12] 세겔, 말은 백오십[13] 세겔을 주고 이집트로부터 수입하여 가져와서, 헷 사람의 왕들과 아람 왕들에게 무역상들을 통해 수출하였다.


의도적으로 이 본문은 6과 관련된 수들을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또 성경의 저자가 이렇게 숫자들을 반복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이 기록은 역사적인 기록이다. 이것은 사람이 의도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시간 속에서 일하심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수들은 솔로몬의 의도도 아니다. 그가 자신의 수입을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군사의 수를 정확하게 의도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니었다. 군사나 무기들이나 수입은 환경적 요인들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군사적인 필요나 그리고 동원할 수 있는 국력의 한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666과 관련된 구약의 두 본문은 열왕기상 10장과 역대기하 9장으로 서로 다른 곳에 기록되었지만 같은 내용이다. 솔로몬의 부와 관련된 내용에서 언급된다. 솔로몬의 1년 금 수입이 666 달란트다. 그리고 솔로몬의 보좌도 666위에 세워져 있다. 솔로몬의 보좌는 6개의 계단에 위에 있었다. 계단 오른쪽에 6개의 사자 왼쪽에 6개의 사자가 있었다. 그 위에 솔로몬의 상아 보좌가 있었다. 이것도 666이다.

666 보좌

1 사자 왕좌 1 사자

6 사자 6 계단 6 사자


솔로몬의 보좌 1 사자 왕좌 1 사자

6 마리 사자 6 개 계단 6 마리 사자

1 사자 계단 사자

2 사자 계단 사자

3 사자 계단 사자

4 사자 계단 사자

5 사자 계단 사자

6 사자 계단 사자



아담과 솔로몬


솔로몬의 지혜와 권세와 영광이 나타나는 장면은 좀 익숙한 장면이다.

태초의 인간이 있던 에덴의 모습과 비슷하다.

태초의 인간은 솔로몬의 영화보다 더했다. 지혜와 권세가 세계에서 하나님 바로 아래였다.

보석과 은과 금이 넘치는 땅, 풍요의 땅을 권세로 다스렸다.

여자를 만들 때 잠들어 알 수 없었는데도 여자를 보는 순간 자신의 갈빗대임을 바로 알았다. 지금 우리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고 솔로몬과도 비교할 수 없다. 엄청난 지혜를 소유했다. 성령님을 통해 주어지는 무한한 지혜를 가졌었다.



에스겔서 28장


에스겔서 28장에서도 비슷한 비유를 두로 왕을 통해 하고 있다.

아담과 두로 왕 그리고 사탄을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 복합적 연리 구조[14]를 사용하여 타락한 인간의 반역을 정죄하고 있다. 이 에스겔서 28장의 장면과 열왕기상 10장의 솔로몬의 모습도 동일 선상에 있다. 인간의 교만과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솔로몬의 보좌 666인 것이다.

바로 다음 장인 왕상 11장을 보면 타락이 표면화되고 그로 인한 심판이 이어짐을 알 수 있다.


26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러한 일들로 죄를 짓지 않았느냐? 수많은 나라들 가운데 그와 같은 왕이 없었으니, 그가 자기 하나님께 사랑받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으나 이방 여자들이 그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였다. (느헤미야 13:26, 바른)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반역의 여러 이름들이 있다. 그리스와 로마의 사상, 인본주의, 인문주의, 르네상스, 자유주의, 그 자식인 쌍둥이 두 딸 자본주의(민주주의)와 공산주의(사회주의) 등이 있다. 이는 인간근본주의며 무신론 즉 하나님 없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왕좌에 오르려는 교만적 반역주의다.

여기 열왕기상 10장과 역대하 9장 계시록 13장에서 666은 교만한 인간본위주의의 극단을 상장하는 수로 나타난다.

계시록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왕국이 물에 앉아 있고 무역과 상인들과 관련된 것은 솔로몬 왕과도 관련되어 있고 겔 28장의 두로 왕과도 관련되어 있다. 또한 물가에 앉아 있었던 앗수르와 바벨론과도 관련이 있다. 겔 28장과 대하 9장 그리고 계 13장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참고로 왕상 10장 본문에 나온 6과 관련된 수들을 찾아보았다.

첫 번째 드러난 숫자들

세 1번

삼 2번

육 2번

여섯 2번

열두 1번

만 이천 1번

백이십 1번

육백 육십 육 2번: 첫 번째 솔로몬에게 1년 동안 들어오는 금의 양이 666 달란트

두 번째 숨겨진 숫자 666

두 번째는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숨겨져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 익숙한 유대인들이었다면 놓칠 수 없는 숫자였을 666이 있다. 바로 솔로몬의 보좌가 666이다. 솔로몬의 보좌 앞에 6 계단과 그 양 옆 좌우의 각각 6마리 사자가 있다. 6 사자, 6 계단, 6 사자.


사실 666과 관련된 정확한 설명을 하려면 책 몇 권은 써야 할 것이다. 관련된 성경들과 분야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이 정도의 단순한 자료의 나열로 끝을 맺으려 한다. 이렇게 연구해 보라는 표본만 보여주는 것이다.



위와 같이 개인이 스스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정리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이들을 위해 PPT를 준비하고 설명을 위한 나레이션을 설교안으로 또는 성경공부 인도안으로 준비하는 것은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또 책을 쓰는 것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모두 성경을 연구한 개인의 노력과 그 노력의 기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렇게 컴퓨터로 정리하는 것이 불편하면 직접 필기를 통해 다양한 방식들을 사용할 수 있다. 포스트잇을 활용할 수도 있고 형광펜이나 여타 도구들을 이용한 마인드맵을 이용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과 길을 알기 위해 성경을 살피고 그 성경을 즐겨 찾는 마음의 자세에 달렸다. 마음만 있으면 길은 어떻게든 찾게 되어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만 간절하다면 길은 어떻게든 찾게 되어있다. 심지어 세상적인 전략 분석도 성경에 적용할 수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SWOT을 성경분석에 적용해보기도 했다. 귀납적 성경 연구의 방법론에는 이와 거의 비슷한 요소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성경을 공격하는 학문인 역사비평이나 양식비평의 내용을 신앙적으로 비판 응용하여 성경의 구조를 분석하는 것도 상당한 도움이 된다. 마음만 있으면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다.

그러니 먼저 거듭난 심령, 회심한 심령을 하나님께 구하자. 진정 거듭난 심령, 회심한 심령이 부어지면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강권하심으로 이 모든 일들이 되어질 것이다. 설교나 글을 통해 자신의 인기나 성도들의 칭찬을 구하려는 마음이 얼마나 역겨운지도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 역겨움으로 인해 오직 하나님이 감동으로 주신 것만을 보고 그것만을 전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성도들도 개인적인 성경연구는 하지도 않으면서 주일 한번 교회에 와서 목사의 설교를 평가질 하는 역겨운 짓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오직 전하는 자나 함께 연구하는 모든 이들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원하는 열망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1.1.1.1.5. 666에 관한 관찰에 의한 결론적 성찰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 되려는 욕심을 품을 만큼 대단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금방 창조되어서 어리숙해서 사탄에게 넘어간 것이 아니다. 인간은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보다 지혜로운 존재였다. 인간은 성령님 안에서 모든 지식과 지혜를 소유했다. 성령님을 통해서 모든 것을 통달한 것이다. 자신이 잠들었을 때 창조된 여자를 한눈에 알아보았고 모든 동물들에게 그 본질에 맞는 이름을 준 아담이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었다고 하는 것은 성령님께서 무엇인가 부족하시어 인간에게 올바른 지혜와 지식을 공급하시지 못했다고 이해하는 것과 같다. 즉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을 배반한 것은 자신이 사탄과 천사들보다 뛰어난 존재이고 하나님과 유사한 존재임을 알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존재이기에 그만큼 대단하기에 한번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자는 교만이 올라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이 이 666을 시도한 것은 인간이 그만큼 대단한 존재로 피조 되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인간의 착각은 거기까지다. 인간은 천사들과 그중 하나 사탄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그는 피조물이다. 인간은 한낱 피조물이다.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과 비길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유일하신 자존자(自存者)이신 하나님 외에는 스스로 존재할 자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면 그 존재가 무로 돌아가는 허망한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아담의 666 보좌도 사탄의 666 보좌도 바벨론, 앗수르, 두로, 로마의 666 보좌도 모두 무너진 것이다. 뱀이 꼬리를 거꾸로 들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형상인 바벨의 탑도 무너진 것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탑의 형상은 이것이 원형이다. 세상의 타워들이나 빌딩들도 그 원형이 이것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세운 마천루를 보면서 교만과 자부심에 빠져든다. 바로 옛 뱀 사탄의 욕심인 것이다. 그 욕심은 교만이다. 그것은 바벨의 탑이요 그 바벨의 탑이 있는 곳은 음녀의 도성 바벨론인 것이다. 뱀이 이렇게 꼬리를 쳐드는 이유는 그 머리가 깨어질까 하여 머리를 땅속에 숨기고 꼬리를 쳐드는 것이다. 꼬리나 몸통은 망가져도 머리만 살아있으면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것이 뱀이다. 그래서 꼬리만 쳐들고 반역하는 것이다. 역시 비겁한 기생충 사탄의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앙코르 와트를 방문했을 당시에 그 영들의 본질을 보고 대적기도를 하였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세상의 탑들과 높이 솟은 주상들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주시어 알게 되었다. 이러한 내용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한 설명을 다음에 내놓게 될 『빛과 어둠의 영적 전쟁사』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실로 비루한 존재이다. 그러나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이러한 반역을 꿈꿀 정도로 대단한 존재였다. 인간은 자신의 분수를 넘어선 헛된 마귀의 탐욕에 스스로 물들었다. 자신은 사탄보다 더 뛰어난 존재이기에 자신은 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당장 신의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어도 어떤 다른 방식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자리를 노려보려 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이 시도한 666은 하늘에 속한 존재인 인간을 땅으로 곤두박질치게 하였다. 인간(아담의 후손)은 그렇게 아담의 권세를 상실했다.




[1]

뒤에 나오는 솔로몬의 보좌와 관련이 있다. 이 모습은 마치 아담의 모습과도 같다. 성령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아담은 모든 생물의 본질을 보고 그 이름을 지었다. 그의 지혜는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였다.(시 8:5) 그의 권세와 그의 영광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였다. 그런데 아담의 타락 이후 이 사실은 망각되어 상실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이킨 사람들 안에서 부분적인 회복이 보인다. 그 회복의 모습이 솔로몬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첫 번째 아담이 타락했듯 솔로몬도 교만으로 반역의 길로 나가고 있다.


솔로몬이 예표하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만물의 왕의 모습의 회복은 예수님 안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진다.




[2]

600 6이 나온다.




[3]

200은 600의 약수 200*3=600




[4]

600




[5]

300은 600의 약수 300*2=600




[6]

3은 6의 약수 3*2=6




[7]

3은 6의 약수 3*2=6




[8]

700*2=1400 완전수의 두 배 솔로몬의 군사력이 완전함을 말한다.




[9]

6000*2=12000 또 6과 관련된 숫자




[10]

병거 천사백 대와 기마병 1만 2천


말만 최소 1만 3400 마리 이상 최대 2~3배


이는 상상하기 힘든 대군의 규모를 나타낸다. 일반적인 군의 편제에서 기병과 보병의 비율은 1:3


이는 상비군으로 3~6만 이상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뜻한다. 고대에 이 정도 수는 엄청난 규모의 군대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글들에도 6의 배수나 약수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11]

이러한 풍요는 에덴의 풍요와도 비슷하며 또한 거대 제국들 물가에 있었던 앗수르와 바벨론 애굽의 부와도 비슷하다. 또한 바닷가에 앉아있던 음녀 두로의 부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그 부와 권력의 자리에 인간의 교만이 그 극을 이루고 그곳이 바로 반역의 영 사탄이 함께 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그 사탄의 욕심을 먹고 죄를 잉태한 아담의 죄성이 함께 하는 곳이다. 이러한 죄성의 본질을 관통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성경은 삼 중 사 중의 복합적 연리 구조를 만들어낸다. 연리지라는 나무는 두 그루가 붙어서 하나인 듯 둘인 듯 보이는 특이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아담과 사탄과 바벨론의 왕이 서로 엉키어서 하나인 듯 셋인 듯한 서로가 서로의 특징을 공유하고 그 본질을 공유하면서도 또한 셋인 특이한 성경의 묵시적 비유의 특이한 구조 틀을 보았을 때 이 단어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 복합적 연리 구조라는 이름을 붙였다.




[12]

6×100=6×10×10 6의 배수, 6과 완전수 10의 곱으로 이루어진 수




[13]


3*5*5*2=150=6*5*5=6*25 6

의 배수




[14]

솔로몬 새대의 풍요는 에덴의 풍요와도 비슷하며 또한 거대 제국들 물가에 있었던 앗수르와 바벨론 애굽의 부와도 비슷하다. 또한 바닷가에 앉아있던 음녀 두로의 부와도 비슷하다. 그리고 그 부와 권력의 자리에 인간의 교만이 그 극을 이루고 그곳이 바로 반역의 영 사탄이 함께 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은 그 사탄의 욕심을 먹고 죄를 잉태한 아담의 죄성이 함께 하는 곳이다. 이러한


죄성의 본질을 관통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성경은 삼 중 사 중의 복합적 연리 구조를 만들어낸다. 연리지라는 나무는 두 그루가 붙어서 하나인 듯 둘인 듯 보이는 특이한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아담과 사탄과 바벨론의 왕이 서로 엉키어서 하나인 듯 셋인 듯한 서로가 서로의 특징을 공유하고 그 본질을 공유하면서도 또한 셋인 성경의 묵시적 비유의 특이한 구조 틀을 보았을 때 이 단어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어 복합적 연리 구조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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